나이 드는 것의 즐거움
나이 드는 것의 즐거움
  • 문틈/시인
  • 승인 2013.04.24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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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때가 있다. 싹 틀 때가 있고 꽃이 필 때가 있으며 열매를 맺을 때가 있다. 이런 말은 어릴 적부터 자주 들어왔다. 그런데 그 말이 실감이 나는 요즘이다.
어릴 적에는 나이 든 사람을 보면 군내가 나고 꼰대 같아서 별로 달갑지 않았다. 어른 말을 들으면 잔소리로 들려 멀리 하고 싶고 꼴통보수로 보였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그런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고 얕은 것이었는지를 깨닫는다. 세대별로 다 각기 다른 진보와 성취와 보람이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지금 나는 완전한 백수다. 뭐 글을 쓰며 살고 있으니 딱히 백수라고까지 할 것은 없을지 모르겠다. 늘상 책을 끼고 살고 있으니 건달 서생이라고 하는 편이 더 맞을 성싶기도 하고. 다만 치열한 삶의 전장에서 한 발 물러나 세상 돌아가는 것을 외야에 앉아 바라보고 있으니 나 나름대로는 조금은 멀리 보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3루수가 도루하려다 포수와 3루 사이에 갇히는 모양을 보고 잔머리 굴리려다가 너무 성급한 인생 플레이를 했어, 하고 혀를 차기도 한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나이 드는 것도 커다란 즐거움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싶다.
대단한 발견이랄 것은 아니지만 세상 물욕, 명예욕, 권력욕을 벗어나 ‘저것들이 하는 모양’을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는 것도 썩 괜찮다는 말이다.
질풍노도의 시절이 있었던가. 당신이 아니면 난 살 가치가 없다고, 밤을 새워 세계문학전집을 읽으며 인생이 무엇인가를 고민해보던 때, 자살도 멋진 삶이 될 것 같던 경주말 같은 시절. 그렇다고 지나간 옛날을 회상하지는 않는다. 지금도 미래에 대한 도전으로 열정을 일으킨다.
하고 싶은 것이 아직도 많다. 나무들 이름도 알고 싶고, 책도 몇 권 내고 싶고, 무엇보다 시골로 내려가 흙집을 짓고 귀거래사를 읊으며 텃밭을 가꾸며 살고 싶다. 이런 미래를 상상하면 내 나이가 몇인지도 까맣게 잊는다.
이 같은 소박한 희망은 물욕, 권력욕, 명예욕과는 하등 상관이 없다. 혹자는 그렇게 살면 무슨 낙이 있겠느냐고 되묻는다. 그동안 비바람 풍진 속에서 정신없이 살아왔으니 이제는 누구 말대로 멈추어서 바라보고도 싶은가보다.
그렇다고 젊은 사람들에게 지금 내가 희망하는 소박함을 권하고 싶지 않다. 젊은 시절은 ‘힐링’이 필요한 때가 아니라 넘어지고 무릎이 깨지고 주저앉고 절망하고 또 일어서고 하는 때다. 그 시절에는 ‘힐링’ 운운하는 책 따위는 창밖으로 내던져야 한다.
다 때가 있다. 꽃필 때가 있고 질 때가 있다. 만물은 때를 맞추어 생성된다. 그것이 우주의 대법칙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20, 30대가 전혀 그립지 않다. 부럽지도 않다. 설령 그때로 돌아가게 해준다 해도 사절이다.
그동안 내가 걸어온 구불구불한 벼랑길이 아름답고 소중하고 그렇다. 그러니까 지금의 내 나이, 내 삶, 내 시야가 이대로 온전히 좋다는 말이다.
누구한테도 간섭받지 않고 오직 내 양식과 양심이 명하는 대로 느린 발걸음을 옮기며 행하며 바라보는 이 즐거움을 방해받지 않고 싶을 따름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다만 햇볕을 가리지 말아달라고 한 저 디오게네스의 마음을 나는 짐작할 것도 같다.
나이 드는 것을 하나도 서러워 말라. 야코 죽지도 말라. 그대로 즐기면서 사노라면 족하다. 인생을 즐기지 않는다면 어쩔 것인가.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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