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가장 반가운 일
오늘 가장 반가운 일
  • 문틈/시인
  • 승인 2013.04.02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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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뒷산에 올랐다. 지난 겨울은 유독 추운데다 눈이 오는 날이 잦아 몇 번 등산을 하지 못했는데 그동안 웅크리고 지냈던 몸도 풀 겸 산에 갔다. 이제 봄도 되었으니 자주 오를 참이다.
산에는 나처럼 새봄에 산행을 시작한 사람들이 나무 숲 사이로 드문드문 보였다. 봄빛을 알리는 연한 녹색이 산 전체를 감돌고 있었다. 나무숲의 상큼한 냄새가 맑은 공기에 흩날리고 있었다. 나는 코를 벌룸거리며 산내음 나는 연두빛 공기를 내 몸 속으로 길게 들이마셨다.

뒷산에 오르는 내 걸음에는 늘 그렇듯이 코스가 정해져 있다. 산봉우리를 넘어 반대쪽 하산 길을 내려가 넓게 조성된 공터를 한 바퀴 돌고는 다시 정상을 넘어와 처음 올랐던 길로 내려오는 길이다. 산과의 스킨십이다. 소요 시간이 한 시간쯤 걸리는데다 산의 오르내리막을 즐길 수 있다. 산길에는 상수리나무, 아카시아, 굴참나무, 잣나무 등속이 우거져 있어 마을과 동떨어진 숲 속의 고요한 시간을 음미할 수 있다.
산길에서 긴 꼬리를 치켜들고 나무를 타는 청설모 한 마리를 보았다. 산비둘기, 참새, 그리고 날개에 자주색과 푸른빛이 알록달록한 작은 새들도 보았다. 새들은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다니며 재잘거리고 있었다. 새들의 지저귐 소리는 아무리 들어도 시끄럽지 않다. 폭포소리, 바람소리, 파도소리, 빗소리... 이런 자연의 외침소리가 아무리 거세도 시끄럽지 않은 것처럼. 새도 그런 자연의 소리여서 귀에 낭랑하게 들리는가 보다.

산행을 마치고 산길을 내려오는데 갑자기 숲 속에서 꿩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산의 모든 골짜기마다에 들릴 것 같은 커다란 목청. 나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반가웠다. 지금은 아직 3월 초봄. 벌써 꿩이 울 리가 없는데 어찌된 일일까.
작년에는 늦은 5월에야 처음으로 꿩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한참 생각을 해보았다. 지난해 꿩이 우는 소리를 들으려고 매일 산행을 했던 일, 그때 꿩과 내가 매일 교감을 했던 일.

그나저나 꿩은 눈이 많이 온 지난 겨울 먹을거리도 없었을 이 산에서 어찌 지냈을까.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갑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꿩의 안부 인사에 진한 감동을 먹었다. 꿩은 딱 한 번 울고는 더 이상 소리하지 않았다. 아마도 다른 등산객들은 꿩 소리를 들었다고 해도 무심코 넘겼을 것이다. 오직 나한테만 들으라고 소리친 것이었을테니.
나는 집으로 돌아와 이 굿 뉴스를 가족들에게 알렸다. 뒷산에 봄기운이 나돌고 꿩이 뒷산에 살아 있으며 내게 봄 인사를 했다고. 올 봄에도 꿩과 나의 교감이 계속될 것 같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참 신기한 일이다. 나를 잊지 않고 꿩이 알은 체를 하다니.

그 작은 산 어디에 몸 둘 데가 있었을까. 산의 어딘가에 한겨울 지낼 은신처라도 있었던가. 그런 것들은 내사 모르는 일. 이런 것이 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자연의 비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만일 저녁 9시 뉴스를 진행하는 앵커라면 이런 뉴스를 전하고 싶다. 뒷산에 사는 꿩이 안면이 있는 마을 사람에게 올봄 처음으로 울음소리를 냈다고. 그러자 냉큼 산 전체에 봄이 왔다고.
그런 뉴스가 저자의 악취나는 뉴스를 매일 전해서 시청자의 귀를 더럽히는 것보다 천배 만배 좋은 일이 아닐까. 오늘 이 기쁨을 한 사람의 독자와 나눌 수 있다면 나의 행복은 몇 배로 더 커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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