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무르익어가는 우리 액션영화!
@[베를린] 무르익어가는 우리 액션영화!
  • 김영주
  • 승인 2013.02.07 17: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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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으로 시작해서 액션으로 끝난다. 스토리의 짜임새가 상당히 탄탄하고, 캐릭터들의 인간적 색깔도 잘 깔려들어 있지만, 거칠고 강렬한 액션이 이 영화의 모든 걸 이끌어간다. 우리 영화의 액션에 [아저씨]가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 주었다면, 이 영화는 더욱 무르익어 농염(?)해졌다.( 마지막 갈대밭 액션에, 상투적인 옛 잔재가 아직도 조금 남아있지만. ) 유승완 감독의 영화에 그리 열광하지 않았다. 그러나 [부당거래]에선 달랐다. 액션에 많은 집착을 갖고 다양하게 시도하면서, 몇몇 멋진 장면을 보여주긴 했지만 대체론 인공조미료가 들쩍지근했다. 그러나 이번엔 많이 감흥했고, 5층 숙소에서 떨어지는 장면에선 잠시 숨이 멎었다.



액션의 매력이야 그 누가 이소룡의 황홀한 무술을 따라잡겠나! 그보다야 못하지만, 성룡과 이연걸이 있었고 옹박이 있었다. 서양영화는 척 노리스 · 쟝 끌로드 반담 · 스티븐 시걸처럼 찌질한 액션을 겨우 이어가고 있었는데, 제이슨 스타뎀이 나타나면서 일약 볼 만한 액션배우들이 떠오른다. [007]의 다니엘 크레이그 · [13구역]의 다비드 벨과 시릴 라파엘리가 그들이요, 여기에 (무술실력인지 촬영기법인지 잘 모르겠지만) [셜록 홈즈]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본 씨리즈]의 맷 데이먼의 ‘끊어치기 무술’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우리 영화 [아저씨]에서 원빈이 그 ‘끊어치기 무술’을 보여주었다. 와우! 멋졌다. 이번 [베를린]에서도 하정우가 훨씬 거칠고 파워풀하게 그 ‘끊어치기 무술’을 보여주었다.( 이 무술이 궁금해서 여기저기 찾아보았더니, 정두홍 무술감독이 ‘격권’이라고 했다. 격권? 인터넷을 뒤져도, 더 이상 알 수가 없다. )

우리나라엔 고유 무술이라는 태견을 비롯해서 태권도 유도 검도 합기도가 있다. 그런 무술도장이 동네마다 한두 군데가 있었던 그런 나라에서, [아저씨]이전까진 영화 속 액션이 참 찌질했다. 초등시절, 박노식 장동휘 김희라가 휩쓸던 [팔도사나이] [명동의 부르스] [홍콩의 왼손잡이] [용팔이]에 열광했지만, 돌이켜 보면 참 유치했다.( 박노식이 감독으로 만들어낸 5부작 씨리즈 [인간사표를 써라] [집행유예] [왜?] [자크를 채워라] [지프]는 그 당시 파격한 쎈세이션을 일으켰다. 다른 영화와 사뭇 달랐다. 난 이 영화들로 박노식을 왕년에 한 시절 날렸던 액션배우로만 여기지 않는다. ) 70시절부터는 순전히 홍콩 무협영화 흉내내기나 한소룡의 이소룡 짝퉁싸구려액션 정도에서 머물렀다. [쉬리]가 액션에서 좀 돋보이는 점이 있긴 했지만 획기적이라고 할 순 없다. 그렇게 답답하던 우리 액션, [달콤한 인생]에서 이병헌이 룸싸롱액션 몇 초?, [무방비 도시]에서 김명민이 시장골목액션 1분?, 잠깐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그렇게 감질나지 않고 화끈하게 ‘각진 액션’을 [아저씨]가 보여주었다. 그 ‘각진 끊어치기 액션’이 이번 [베를린]에서 무르익었다. 훨씬 파월풀하고 거칠어서 화끈하게 리얼했다. 아직 인공조미료 맛이 남아 있지만, 이 정도면 대단한 거다.

이 영화의 매력이 액션에만 그치지 않는다. 스토리 라인과 사건의 맥락이 선명하게 잡혀있다. 그러면서도 남한과 북한을 선악의 어느 쪽으로 몰아세우지 않고, 어느 조직에서나 있을 법한 음모구조나 갈등을 소재로 해서 캐릭터들을 생생하게 그려가고 있다. 단연코 하정우가 돋보인다. 한석규와 유승범도 잘 하지만, 항상 보여주던 그 모습이다. 하정우는 [황해]에서 “무심한 듯이 무덤덤하게 빈둥거리다가 돌연히 들개 같은 눈빛을 돋우며 으르렁거리면 영화가 활활 불타오른다.”고 했다. 바로 앞의 [범죄들의 전성시대]에선 그 반 토막도 보여주지 못했으나, 이 영화에선 그 외로운 늑대의 모습을 더욱 강렬하게 폭발하고 있다. 완전히 물이 올랐다. ‘하정우 전성시대’다. 이렇게 독보적인 그의 역할에 비하면, 전지현은 그 조연쯤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난 그렇지 않다. 그의 외로운 늑대 캐릭터는 이미 [황해]에서 맛보았기 때문에 놀라진 않았다. 그러나 전지현의 슬픈 캐릭터는 처음이다. 이 영화가 인터넷에 떠오를 때, 호기심의 포인트는 나에겐 하정우가 아니라 ‘전지현’이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감동했다.

<예고편>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66564&videoId=40030&t__nil_VideoList=thumbnail

그녀의 영화를 반은 보았고 반은 보지 않아서, 그녀를 망라해서 말할 순 없다. 난 그녀가 연기를 못한다고 생각한 적도 없지만 감동한 적도 없다. 그러나 [데이지]꽃처럼 청순하고 단아한 모습이 참 잘 어울리고 너무나 좋아서 가슴 깊이 담아 오래오래 간직하고 있다.( 그 이미지를 내가 얼마나 소중하게 간직하는지, 다른 영화에서 전혀 다르게 나와도 그 이미지를 결코 해치지 못한다. 알랑 들롱[르 갱]의 여자처럼, 그녀는 화장한 얼굴보다 화장끼 없는 얼굴이 훨씬 예쁘다. ) 그런데 [도둑들]이 순전히 대중재미를 위한 오락영화인데도, 난 그녀에게서 좋은 연기력을 느꼈다. “찰지게 내뱉는 ‘쌍스런 욕설과 싸가지 비속어’가 맛깔나게 어우러지니, 하얀 비단결 같은 미모와 몸맵시에 흑장미 가시의 매운 맛이 아려온다. ‘엽기적인 그녀'라는 애벌레가 ‘매혹적인 미친 년'이라는 나비로 우화羽化한 그녀에게 박수!!!” 그녀에게 저절로 찬탄했다. [베를린]에선 [도둑들]과 전혀 다른 캐릭터이다. 그녀가 이 캐릭터를 잘 그려낼까? “잘 할 수 있을 꺼야!” 과연? 두근거렸다.



“고럼...어캅네까? 접대도 명령인데...” 무심한 남편에게 싸늘히 돌아서며 쓸쓸하게 드러눕는다. 어두운 그림자가 그녀의 가녀린 어깨를 넘어서 처연한 눈망울에 어린 물빛을 적신다. 창가에 날리는 눈발마저 무정하다. 연정희, 가슴이 먹먹하다. “온실에서 곱게 자란 사람일 텐데, 그런 일을 경험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런 표정을 지어낼 수 있을까?” 연정희를 더 이야기하고 싶지만, 오히려 군더더기이다. [도둑들]에서 그녀를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김혜수에게 바스트만 딸리는 게 아니라 연기력도 딸린다. 그래도 이번 영화에선 전지현이 훨씬 돋보인다. 그건 그녀가 연기를 더 잘해서라기보다는, 이 영화가 순전한 오락영화이기 때문이겠고, 그녀가 예니콜이라는 가장 화려한 캐릭터를 맡았고 그에 딱 걸맞았기 때문일 꺼다.” 말을 바꾸겠다. “그녀는 김혜수에게 아직도 바스트는 딸리지만 연기력은 딸리지 않는다. 장차엔 연기력이 김혜수보다 더 깊어질 수도 있겠다.” 이젠 그녀의 미모와 이미지에 반하는 게 아니라 그녀의 연기력에 반할 것만 같다. 말괄량이 [엽기적인 그녀]가, 청순하고 단아한 [데이지]꽃에서 [도둑들]의 매혹적인 흑장미로, 그리고 처연하게 쓸쓸한 연정희 . . . ( 연정희의 그 표정에 너무나 감동해서, 집에 돌아와 그 표정에 버금갈 만한 장면을 떠올려 보았다. 세 장면이 떠올랐다. [친구]에서 장동건이 손으로 얼굴을 두 손으로 쓸어 가다듬으면서 “하와이?! 니~가 가라!” / [색, 계]에서 양조위가 그렁그렁한 눈동자에 탕웨이 얼굴을 담아 넣으며 텅 빈 나락으로 빠져드는 황홀경 / [은교]에서 김고은이 새하얀 침대에서 시트자락을 살짝 움켜쥐며 씽긋 눈웃음치는 교태. )

런닝타임이 2시간이지만, 액션이 잘 받쳐주어서 긴장감과 긴박감을 놓치지 않는다. 그러나 마무리 갈대밭 장면이 액션 뿐만 아니라 내용과 전개가 좀 상투적이었다. 그 배경을 갈대밭으로 할 게 아니라, 후진 골목아지트나 무슨 창고 같은데서 더욱 짜임새 있고 화끈하게 밀어붙였더라면, 거의 완벽했을 텐데, 제작비가 좀 딸렸나? 총알을 너무 낭비한다. 화끈하지만 절제가 필요하다.

* 대중재미 A+, * 영화기술 A0, * 감독의 관점과 내공 : 민주파 A0.

* 세 항목이 모두 A학점인 경우가 그리 많지 않고 야한 장면도 없으니, 가족과 함께 보시길. 1000만 관객을 넘을 법한데, 강적 [다이 하드5] [신세계] 박찬욱의 [스토커]가 뒤따라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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