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슬을 구하기 위해 쏘다니는 사람들
벼슬을 구하기 위해 쏘다니는 사람들
  • 강명관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승인 2013.01.1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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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명관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분경(奔競)이란 말이 있다. 『경국대전주해(經國大典註解)』에 의하면, ‘분추경리(奔趨競利)의 준말’이란다. ‘분추’란 급한 걸음으로 달려가는 것이고, ‘경리’는 이익을 다툰다는 뜻이다. 합쳐서 말하자면 뭔가 이익을 노리고 분주히 쏘다니는 것을 말한다.

이익을 노리고 분주히 쏘다니는 것이야 사람이면 대부분 다 그렇고 말할 수도 있다. 농사꾼이 새벽에 일어나 바쁜 걸음으로 논밭으로 달려 나가는 것이나, 장사꾼이 이문을 보자고 먼 길을 분주히 떠나는 것도 분경이라 할 수 없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건전한 행동’이라면 굳이 『경국대전』이란 근엄한 법전에 실어 금지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사실 분경은 불법적인 행동을 지칭한다. 곧 인사권을 쥐고 있는 권세가를 찾아가 엽관운동(獵官運動, 뇌물과 청탁으로 관직을 사고파는 일)을 하는 것을 분경이라고 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청탁죄’, 곤장 100대, 3,000리 밖 유배형

『경국대전』 형전(刑典) 금제(禁制)의 ‘분경’ 조는 “분경하는 자는 장 1백 대, 유삼천리(流三千里)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분경하는 자’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지적해 두었다. 곧 ‘이조·병조의 제장(諸將)과 당상관, 이방(吏房)·병방(兵房)의 승지, 사헌부·사간원의 판결사(判決事)의 집에 동성(同姓) 8촌, 이성(異姓)·처친(妻親)의 6촌, 결혼한 집안, 이웃 사람이 아니면서 출입하는 자’가 분경하는 자이다.

이 규정을 자세히 설명하려 들면 한없이 복잡해질 것이니, 간단하게 정리해 보자. 요컨대 가까운 친척이거나 이웃 사람이 아닌 사람은 이조와 병조, 승정원의 이방·병방 승지와 같은 인사권을 쥔 사람의 집에 출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이 법을 어길 경우, 곤장 1백 대에 3천 리 밖 귀양이다. 아주 강력한 처벌 규정이다.

하지만 벼슬에 목을 매고 살았던 조선의 양반들이 분경을 하지 않을 리 없다. 1670년에 녹슨 『경국대전』의 조항을 현실에 맞게 고친 것은, 분경이 예삿일이 된 저간의 사정을 반영한 것이다. 새로 고친 규정은 이러하다. 동성(同姓) 6촌 이내, 이성(異姓) 4촌 이내, 결혼한 관계가 있는 집안사람이 아니면, 도목대정(都目大政)의 날짜가 정해진 뒤 이조와 병조의 당상관의 집에 출입을 금지한다는.

또 도목대정 이후 서경(署經)하기 전까지 사헌부와 사간원의 관원의 집에도 출입이 금지되었다. 도목대정이란 12월의 대규모 인사를 말한다. 곧 인사 날짜가 정해지면, 인사 담당자인 이조·병조 당상관의 집에 출입할 수 없었고,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이조·병조에서 뽑은 임명 예정자의 적격 여부를 심사하는 과정(곧 署經이다)에 들어가면, 당연히 사헌부·사간원 관원의 집에 출입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인사청탁·뒷거래…이제 그만

이렇게 법을 만들고, 고치고 했지만, 분경이 없어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18세기를 지나 19세기 세도정권이 들어서면 권세가를 찾아다니며 한 자리를 부탁하는 분경은 양반들의 문화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19세기 세도정권이 성립하자, 분경은 곧 매관매직이 되었다.

그 버릇은 나라가 망할 때까지 고쳐지지 않았다. 세월이 흘렀다 해서, 딴 세상이 되었다 해서 분경의 더러운 습관이 없어진 것도 아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자신의 직장에서 어떤 형태의 분경이 있는지 생각해 보시면 아마 짐작 가는 바가 아마 있을 것이다.

정초부터 하필 분경을 말하는 것은 지난 대선 때 목도한 풍경 때문이다.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이 대선 때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고 나섰다. 혹자는 텔레비전에 얼굴을 비치기도 하였다. 누구를 지지하건 그것은 개인의 정치적 자유다. 하지만 그들 중 어떤 이에 대해서는 분경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쓴웃음을 지었다.

곧 새 정부가 꾸려질 것이다. 분경하는 사람 치고 맑고 곧은 사람은 없다. 유능한 사람도 없다. 그 사람은 오직 자신에게 주어질 권력만을 누리려 할 것이다. 분경 없는 정부를 보고 싶다.

※ 서경(署經) : 임금이 새로 관리를 임명할 때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그 인선(人選)에 동의하여 신임관(新任官)의 고신(告身)에 서명하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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