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미제라블] 넘치는 노래, 무너지는 감동
@[레 미제라블] 넘치는 노래, 무너지는 감동
  • 김영주
  • 승인 2012.12.27 06: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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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시절 읽은 동화책[쟝발짱], 빵 한 조각을 훔친 잘못으로 평생을 쫓기며 살아가는 쟝발짱은 불쌍하게만 여겼고, 끈질기게 뒤쫓는 경찰 쟈베르는 지독하게 나쁘게만 여기며, 선과 악의 굴레에 갇혀서 보았다. 스물이 저물어가는 시절에 만난 [레 미제라블]은 19세기 초반 프랑스의 사회상을 유심히 보게 되었고 열혈청년을 비롯한 서민들이 내뿜는 혁명의 열정을 알게 되었다. 대학 데모가 격렬하던 80시절에 만난 영화인지라 그 시대상의 역사적 의미가 오버랩되어서 자못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마흔에 접어든 시절에 만난 [레 미제라블]은 쟝발짱보다는 쟈베르에게 더 깊이 빨려들었다. 이번엔 뮤지컬 영화로 만났다.



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민주파와 사회파의 중간쯤에 서 있기 때문에, 보수파 관점으로 만든 영화를 삐딱하게 바라보곤 한다. 그런데 [다크 나이트]와 [킹스 스피치]는 매우 감동했고 그 내공에 A++라는 특급 점수를 주었다. 특히 [킹스 스피치]는 노블레스 오브리제를 몸소 실천하는 ‘훌륭한 보수’를 영화로나마 만나게 되어서, 보수파 문화를 삐딱하게 보던 습관을 많이 반성하도록 해 주었다. 그리곤 그 영화이야기 제목을 “보수파 영화중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잡았다. 보수파영화제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2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최다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킹스 스피치]는 작품상 · 각본상 · 감독상 · 남우주연상 4관왕을 차지했다. [아바타]나 [호빗]처럼 요란뻑쩍하지 않고 이토록 잔잔한 영화로 큰 상을 4개나 휩쓸었다는 게 더욱 훌륭하다.

그 톰 후퍼 감독이 이번엔 뮤지컬[레 미제라블]을 영화로 만들어내려는 야심을 드러냈다. 대가다운 선택에 가슴까지 두근거렸다. 그런데 “보수파감독이 [레 미제라블]이라는 사회파 소재를 다룬다?” 갸웃, 의아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지그시 누르며 다시 한 번 그를 만났다. ‘잘 만든 영화’이다. 배우들도 연기력이 탄탄한 호화캐스팅이다. 휴 잭맨(쟝발짱) 러셀 크로(쟈베르) 앤 해서웨이(팡틴) 아만다 사이프리드(코제트) 헬레나 본햄 카터(테나르디에 부인). 영상과 무대가 매우 훌륭하고, 분장과 의상도 매우 좋다. 특히 첫 장면에서 죄수들이 범선을 끌어당기며 부르는 합창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파리 시내의 높은 바리케이트에 올라서서 혁명의 열정을 외치는 합창은, 이 영화의 최고 압권이다.

<예고편>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67256&videoId=39579&t__nil_VideoList=thumbnail

그러나 ‘매우 잘 만든 영화’라고 말하진 못하겠다. 배우들이 연기하면서 직접 노래를 부르는 ‘라이브 녹음’을 시도했다. 난 목소리에 자기만의 독특한 음색과 개성이 잘 살아나는 창법을 좋아하기 때문에, 자기 음색과 개성이 잘 살아나지 않는 벨칸토 창법의 성악전문가 노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앤 해서웨이의 ‘I dreamed a dream’은 곡도 좋고 가사도 좋고 음색과 연기가 잘 어우러졌다. 인터넷 동영상으로 만난 다른 가수들의 노래보다 훨씬 좋았다. 그녀와 휴 잭맨의 노래솜씨에 놀랐고, 러셀 크로의 굵직하게 낮은 음색도 좋았다. 배우들이 연기도 잘하면서 자기 음색을 잘 살려내어 부르는 노래실력에 상당히 놀랬지만, 문제점은 노래에 높은 음과 넓은 톤을 폭발적으로 내질러서 화끈하게 확 차고 나가야 하는데 그러하질 못하고 감정적 음색으로 어중간한 가성을 가다듬어 마무리짓고 만다는 것이다. 배우의 연기력이 담긴 ‘라이브 음색’도 중요하지만, 노래가 감동을 확 끌어내야 하는 경우는 효과음을 쓰든 립씽크를 쓰든 높은 음과 넓은 톤을 화끈하게 토해내야 했다. 중요한 대목에서 화끈한 감동을 잡아 끌어올리지 못하니까, 뮤지컬로서 재미가 제대로 살아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영화 자체도 겉돌게 된다. 영상 무대 분장 의상이 매우 좋은 영화인데, 안타깝다.

문제점은 또 있다. 내가 오페라를 별로 즐기지 않으며 싫어하기까지 하는 건, 음색과 개성을 느끼기 어려운 벨칸토 창법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질구레하고 사소한 대화까지 노래가락에 실어서 주고받는 모습이 어색하고 억지스러움을 넘어서서 닭살이 오글오글 돋아나는 위선까지 느껴지기 때문이다. 뮤지컬도 오페라의 이런 모습을 닮을수록 싫어하고 벗어날수록 좋아한다. 이 영화는 160분이라는 긴 시간을 자질구레하고 사소한 대화까지 샅샅이 99% 노래로 가득 가득 채워 넣느라고, 드라마틱한 흐름을 긴박하게 살려내지 못하고 스토리를 서둘러 이끌어 가면서 억지로 꿰맞춘 듯해서 리얼러티가 뚝 떨어지면서 긴장감이나 긴박감을 살려내지 못하고 때론 답답하기까지 했다. 감동이나 슬픔이나 분노가 올라오다가 어정쩡하게 겉돌면서 지루해진다. 자질구레한 노래들을 없애고 노래 분량을 50%로 낮추어서 그 나머지 시간으로 스토리의 드라마틱한 흐름을 살려냈어야 했고, 배우들이 확 치고나가지 못하는 부분을 효과음이나 립씽크를 쓰거나 중창 백코러스나 대규모 합창으로 뒷받침해서 감동을 이끌어내야 했다.

이렇게 스토리에 리얼러티가 떨어져 답답하고 지루해지면서, 쟝발짱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서양종교의 홍보물처럼 보일 정도로 유치해지고, 감독의 관점까지 보수파와 사회파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서, 원작 소설을 만나고픈 갈증이 바짝 타올랐다. 대중을 유명배우들의 호화캐스팅으로 홀리고 뮤지컬이라는 예술적 허영으로 부추기고, 그걸 매우 좋은 영상 무대 분장 의상으로 보상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대규모 합창장면 말고는 지루하고 답답해 할 것이다. * 대중재미 B0, * 영화기술 A+, * 감독의 관점과 내공 : ??? 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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