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그해 오월의 처절한 슬픔과 분노에 씻김굿!
@[26년] 그해 오월의 처절한 슬픔과 분노에 씻김굿!
  • 김영주
  • 승인 2012.12.06 0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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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5.18이야?” 그해 오월이 싫거나 켕기는 사람들이 하는 말일 게다. 그러나 나처럼 깊은 죄책감으로 시달리는 사람들이나 그 원흉과 동조자들에게 분노하는 사람들에겐, 그해 오월의 참극이 이토록 무심하게 잊혀져 가는 게 너무나 원통하다. 그러나 그 동안 [블러디 썬데이] [화려한 휴가] [오월애]에서 오월의 슬픔과 분노 그리고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을 통렬하게 이야기했고, [황산벌] [평양성] [위험한 상견례]에서 이 땅의 최고 악마인 ‘경상도 이기주의’를 신랄하게 비난했기에, 이젠 그만하련다.

 

몇 년 전에 ‘전두환 암살작전’을 소재로 한 만화가 있다는 풍문을 들었다. 나도 80년대 시절에 그를 사뭇 증오해서 그를 암살하려고 바로 턱 앞까지 접근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던 꿈을 꾼 적이 있었기에, 그 만화에 호기심이 부쩍 일었다. “아니, 어떻게 이런 걸 만화로 그릴 생각을 했나?” 그 자체가 충격이어서 처음엔 긴장을 바짝 당겼다. 그런데 그림체가 싱겁고 허전하며 스토리 전개에 리얼러티가 많이 떨어져서 조금 보다가 실망하여 덮어버렸다. 영화를 본 뒤에 다시 보았다. 그런데 중반부를 넘어서니 점점 흥미진진해졌고 후반부에선 긴장감이 바짝 돋아올랐다. 전반부는 영화가 더 좋고, 후반부는 만화가 더 좋았다. 특히 전두환 경호대장 마실장이 그해 오월에 공수부대 군인으로서 지은 죄악을 자기합리화하면서 전두환의 충견으로 변신해가는 모습이 참 그럴 듯했다.( 보수꼴통들도 자기들이 이 땅에 지은 죄악을 그런 심정으로 자기합리화하면서, 그 죄악의 꿀단지를 꽉 보듬고서 전라도를 “종자가 나쁜 놈들! 빨갱이! 홍어X!”이라며 그토록 길길이 날뛰며 파르르르 떨고 있겠지? “고마 해라, 거~ 꿀단지 깨것다! 너그들, 너무 마~이 무었다 아이가!” )

<강풀 만화[26년]> http://cartoon.media.daum.net/webtoon/view/kangfull26

이 땅에서 아직도 버젓이 떵떵거리며 설치는 죄악의 뿌리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무모하지만 의롭게 박치기하는 암살작전이 관객과 독자에게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더구나 그해 오월에 광주 한 가운데에서 그 핏빛 소용돌이를 경험했던 나에겐, 그해 오월을 소재로 이렇게 대중적인 카타르시스를 풀어내며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작품이 등장하였다는 게 무엇보다도 고맙다. 그 처절한 슬픔과 분노의 씻김굿을 치른 듯했다. 강풀작가님 조근현감독님,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이 영화에 사람들이 많이 모일까 조마조마했는데, 아침 9시30분 조조영화 매표화면에 가득 찬 관객좌석을 보고 깜짝 놀랐다. 60년대 시절부터 매니아로 영화관을 들락거렸지만, 조조영화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적은 처음이다. 눈대중으로만 좌석의 2/3를 넘어섰다. 휴일도 아닌데 설마? 두근거리며 영화관 안으로 들어섰다. 우와 놀랍고 기뻤다. 여기 광주만 이럴까? 그리곤 마침내 개봉 6일차인 12월 4일 오후까지 100만 명을 돌파했다. “만세! 그래 이대로 확 몰려들어서 대선 선거날까지 500만 명을 달성해라. 그래서 그 악마의 뿌리를 향한 분노를 투표로 보여다오.”

<예고편>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43688&videoId=39268

두 주인공, 사격선수 한혜진과 깡패 진구도 멋진 모습과 연기를 보여주었다. 한혜진, TV드라마에선 그저 그랬는데, 힐링캠프에서 깜찍하고 센스 있으면서 소박하게 대담을 이끌어가는 솜씨가 참 좋았다. 진구, 그 동안 여기저기에서 깡다구 있는 반항아 캐릭터를 보여주었지만 항상 조금 부족해서 아쉬웠는데, 이번엔 눈가의 상처가 카리스마를 더하면서 표정연기도 좋았고 막무가내 깡다구 액션도 화끈했다. 이번 이 영화의 캐릭터와 연기로 그녀와 그에게 화악 끌려들었다. 특히 한혜진이 공기총으로 압축공기를 ‘하나 둘 셋’ 카운트하며 호흡을 가다듬고 사격하는 장면은, 정말이지 오금을 바짝 조이는 압권이었다. 그 호흡의 숨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전두환으로 분장한 장광의 그 악랄함과 이 암살사건 주모자인 이경영의 사무친 분노가 좀 더 가열차지 못한 것 같아 조금 아쉽지만 무난하게 잘 한 셈이다. 마실장과 경찰반장을 비롯한 조연들도 모두 좋았다.

초반 도입부 광주학살의 잔혹한 장면을 ‘크로키 애니메이션’으로 처리한 게, 관객들에게 그리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그 슬픔과 분노를 잘 그려냈다는 점에서 아주 좋았다.( 그림체와 그림솜씨가 조금 아쉬웠지만 ) 그런데 공수부대가 시민들에게 총을 쏘는 장면에서 그 사격신호가 천인공노天人共怒하게도 애국가였는데, 왜 그 소름끼치는 ‘애국가 총격신호’를 넣지 않았을까? 관객들에게 더 드라마틱한 분노를 일으킬 수 있었을 텐데, 몰랐나? 아쉬운 점은 또 있다. 이 암살사건의 주모자를 대기업총수가 아니라 자그마한 중견기업사장쯤으로 하는 게 좀 더 리얼러티가 있겠고, 교통순경캐릭터를 만화원본대로 가는 게 더 나았겠다. 전라도 사투리가 억지스러워서 많이 거슬린다. 언제나 전라도 토박이사투리를 만날 수 있을까! 글고 재미를 북돋우려고 깡패들이 등장하는데, 광주항쟁에 깡패들의 흔적은 한 터럭도 없었다. 그 당시 그들이 어디서 무얼했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깡패보스가 전두환세력의 끄나풀 노릇을 했다는 뒷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다. 그렇잖아도 광주항쟁을 북한간첩이 선동했네 어찌했네 함서 악다구니를 부리는 놈들이 있는데, 혹시나 관객들 중엔 광주항쟁에 깡패들이 활약한 걸로 오해하지 않을까 은근히 염려된다. 깡패는 설사 개인적으론 멋진 놈일 수는 있지만, 그가 노는 물이 나쁘니까 결국 나쁜 놈일 수밖에 없다. 이 만화와 영화에서 깡패를 빼고 이끌어갈 순 없었을까? 많이 아쉽다.

* 대중재미 A0, * 영화기술 B+, * 감독의 관점과 내공 : 사회파 A0.

[남영동1985]를 일부러 보지 않았다. 그 고문모습을 차마 두 눈을 뜨고 볼 수도 없거니와, 보고나서 심하게 앓아누울 것만 같아서 보질 못했다. 하늘에 계신 김근태님과 고생하신 정지영 감독님, 정말 죄송합니다. 정권교체로 그 한을 풀어드려야 할 터인데, 보수꼴통들이 아직도 떵떵거리며 설치는 세상, 쌍욕이 절로 쏟아집니다.

하늘이시여, 이 땅을 굽어 살피소서!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정녕 이 기도뿐이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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