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묘한 나노세계 밝혀낸 원자현미경의 마술
오묘한 나노세계 밝혀낸 원자현미경의 마술
  • 이재의 나노바이오연구센터 소장
  • 승인 2012.10.26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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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파장 뛰어 넘자 나노세계 성큼 열려
원자배열 인공조작 가능 새로운 시대 도래

▲이재의 나노바이오연구센터 소장
나노현미경이 발명되지 않았다면 아직도 나노 세계는 단지 학자들의 이론 수준에만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나노기술이 실생활에 이용될 수 있게 된 것은 현미경의 발달 덕택이다. 나노 입자는 우리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다. 광학현미경로도 나노세게를 들여다 볼 수는 없다. 빛의 파장이 문제다.

광학현미경은 빛의 파장을 이용해서 물체를 본다. 가시광선의 파장은 300~800나노미터다. 보통 100나노 이하를 나노 세계라고 하는데 나노 입자의 크기가 빛의 파장보다 훨씬 작기 때문이다. 가시광선 파장이 자신보다 훨씬 작은 300나노미터 이하 크기의 물질을 인식할 수 없는 이유다.

‘가시광선’에서는 나노를 볼 수 없다

나노 세계는 좀체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광학현미경의 한계를 넘어 설 수 있는 전자현미경의 발달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자현미경은 높은 전압으로 전자를 가속시켜 가속전압에 의해 정해지는 파장의 분해 능력을 이용한다. 가령 100kV로 가속된 전자의 파장은 원자의 지름보다 작은 3.9×10⁻³나노미터다. 원자보다 작은 전자파장이 있어야 비로소 나노 입자의 모양을 관찰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최초로 전자현미경을 발명한 사람은 1930년대 중반 독일 에른스트 루스카다. 그는 전자가 입자지만 빛과 같이 파동을 가진다는 점에 착안해서 전자현미경을 발명했다. 하지만 그 시기에는 아직 나노세계라는 개념도 형성되지 않았고, 전자현미경의 성능도 나노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하지 못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야 마침내 나노미터까지 관찰할 수 있는 ‘투과전자현미경’이 등장했다. 최초로 관찰된 나노세계는 오묘하고 아름다웠다. 대부분의 물질이 나노세계에서는 일정한 규칙에 따라 정교하게 배열돼 있었다. 사람의 살갗 피부를 나노현미경으로 관찰하면 세포 속에 들어있는 DNA의 나선형 구조가 일정한 구조를 이루며 뚜렷하게 관찰된다.

투과전자현미경의 원리는 복잡하다. 가속 전압을 이용해 전자총의 전자빔을 발사한다. 전자빔은 필라멘트와 전자기렌즈, 집광렌즈를 통과해 관찰하고자 하는 나노 시료에 도달한다. 미세한 시료를 투과한 전자빔은 신호검출기와 비디오 증폭기, 대물렌즈, 투영렌즈를 차례로 거쳐 형광스크린에 반사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컴퓨터 화면에 관찰하고자 하는 나노 물질이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최초의 나노현미경인 투과전자현미경은 한계가 많았다. 반드시 진공상태가 필요했다. 시료도 아주 얇게 나노 크기의 두께로 만들어야 비로소 관찰이 가능했다. 진공 상태를 유지하기도 쉽지 않았지만 시료를 나노 크기의 두께로 만들기는 정말 어려웠다. 물질 하나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잘 훈련된 전문가가 며칠씩 준비해야 겨우 가능했다. 비용도 꽤 많이 들었다.

원자 사이 흐르는 전류로 거리 측정

1981년 스위스 IBM연구소 하인리히 로러와 게르트 비니히가 ‘주사터널링 현미경(STM)’을 발명했다. 이 게 사실상 본격적인 나노현미경으로 불려지는 것은 바로 그런 한계를 극복했기 때문이다. 가까이 있는 원자들 간에는 서로 밀치는 힘이 작용한다. 이를 터널링 전류라 한다. 그 전류의 힘을 측정하여 원자 사이의 거리를 관찰하는 원리였다.

마치 두 개의 자석이 서로 가까워질수록 그 힘이 급격하게 커지는 것과 유사하다. 탐침의 끝을 뾰족하게 만들어 관찰하고자 하는 나노 시료 표면에 가까이 가져간다. 거리가 아주 가까워지면 탐침 끝의 원자와 시료 표면의 원자 사이에 터널링 전류가 흐른다. 터널링 전류는 물리적으로 서로 떨어져 있는 원자 사이에 전자가 교환되면서 흐르는 전류다. 이 전류는 두 원자 사이의 거리를 보여주는 신호다.

또한 거리에 따라 매우 민감하게 변화한다. 주사터널링 현미경은 날카로운 원자 크기의 바늘로 나노 시료의 표면을 스치듯 더듬으며 지나간다. 이때 바늘의 높이를 컴퓨터가 읽어 내서 스크린에 비춰준다. 이렇게 간접적으로 만들어진 영상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렇게 얻어진 영상은 원자의 배치, 원자 주위의 전자 분포까지도 정확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STM도 역시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전류가 흐르지 않는 절연체는 관찰할 수 없었다. 여전히 진공 상태도 필요하다. 또한 공기나 산소 분자가 탐침 끝에 붙거나 시료 표면에 흡착되면 관찰이 어렵다.

‘원자힘 현미경(AFM)’은 STM의 이런 한계를 극복했다. 기본 원리는 STM과 유사하다. 하지만 원자 사이에 흐르는 ‘전류’를 측정하는 게 아니라 ‘밀치는 힘’을 측정한다는 점이 다르다. 원자 사이에 밀치는 힘은 모든 물체에서 측정 가능하다. 원자 사이의 거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지렛대 끝에 붙어 있는 탐침이 아주 작게 흔들리는 양을 레이저로 측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세라믹 같이 전기가 통하지 않은 물체는 물론, 공기나 수분을 함유하는 생체 시료도 쉽게 관찰할 수 있게 됐다. 드디어 혈액의 적혈구 같은 생체 시료도 그대로 관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STM과 달리 시료를 말리거나 나노 두께로 얇게 처리하지 않고, 생생한 상태 그대로 손쉽게 관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원자 하나하나를 움직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AFM의 진정한 위력은 다른 곳에 있었다. ‘관찰’을 넘어서서 원자를 ‘조작’할 수 있는 마력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과학자들조차 뒤늦게야 눈치 챘다. AFM 탐침을 시료 표면 원자에 접근시키고 일정한 전류를 보내면, 원자를 탐침 끝에 달라붙게 하거나 떨어뜨릴 수 있었다. 이 원리를 이용해 원자 하나하나를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 낸 것이다. 원자로 글씨를 쓰거나 디자인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놀라운 변화다. 이제 나노 입자는 단순히 관찰 대상이 아니었다.

원자크기의 회로나 기계를 만들 수 있는 기초 재료가 된 것이다. AFM은 단순히 미세한 물질의 크기나 모양을 관찰하는 수준을 뛰어넘었다. 나노 물질을 조작하고 재배열할 수 있게 됨으로써 성질이 완전히 바뀐 전혀 새로운 물질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런 이유로 AFM은 ‘나노공정장비’로 인정받고 있다. AFM의 발명은 관찰을 위주로 한 ‘나노과학’이 원자의 배열을 조작 통제할 수 있게 되는 상황, 즉 ‘나노기술’로 한걸음 나아갈 수 있게 나노세계의 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비로소 인간은 원자를 하나씩 모아서 나노소자를 만들 수 있게 됐다. AFM이 열어놓은 기술적 진보는 앞으로 어떻게 이용될지 인류문명에 미칠 파장을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물질의 근본 구성 원리를 인간이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뒤바꿀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이런 기술이 실생활에 널리 사용될 만큼 충분히 발달한 상태는 아니다.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나노 크기의 글씨를 쓴달지, 나노 황소의 모양 같은 것을 만들어서 보여주는 정도다.

하지만 이런 기술이 더욱 발달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지금까지는 주로 큰 물체를 나노크기의 입자로 쪼개는데 기술적인 관심이 집중됐다. 나노 크기의 반도체로 알려진 낸드플래시 메모리도 기본적으로는 큰 물체를 아주 작게 쪼개서 조립한 것이다. 이 경우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고 어느 정도까지 쪼개다보면 더 작게 쪼갤 수 없는 한계에 부닥친다. 또한 여기에 필요한 정밀한 장비는 만들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너무 비싸기 때문에 경제성이 떨어진다.

그러나 원자의 배열을 바꿔 ‘바닥으로부터 쌓아올리는 방식’으로 반도체를 제조할 수 있다면 훨씬 고용량의 메모리를 적은 비용으로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생명의 암호를 간직한 DNA구조는 물론 세포 안에 있는 원자배열도 나노 세계에서는 인위적으로 어렵지 않게 바꿀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성질이 전혀 다른 또 다른 생명체의 탄생도 점쳐진다. 나노 수준에서 물질을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넓고 심대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지금 미래사회를 내다보는 과학자들과 정책 당국자들은 이런 놀라운 기술을 어떤 식으로 사용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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