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장학회 보도 방송3사, 물타기로 정치혐오 유도
정수장학회 보도 방송3사, 물타기로 정치혐오 유도
  • 정인서 기자
  • 승인 2012.10.23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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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언론노조, 여야공방으로 몰아가는 구태의연한 태도 지적

남북정상회담 NLL 포기발언 논란과 정수장학회 지분매각 모의에 대한 국내 언론의 보도는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지난 13일 <한겨레>의 단독보도로 촉발된 정수장학회 지분매각과 MBC 경영진과 박근혜 후보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정수장학회 최필립 이사장의 비밀회동에 대한 보도가 방송3사 등이 여야공방이라는 틀로 몰아가는 구태의연한 태도를 보였다는 지적이다.

<전국언론노조>는 지난 13일 <한겨레>의 단독보도로 촉발된 정수장학회 지분매각 추진은, 퇴출 위기에 몰린 MBC 경영진과 박근혜 후보의 최측근으로 역시 사퇴요구에 직면한 정수장학회 최필립 이사장이 비밀회동을 갖고 정수장학회가 가진 MBC와 부산일보의 지분을 팔아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점에서 단연 주목거리였다고 밝혔다.

즉 이번 정수장학회 문제는, 김재철 MBC 사장과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이 강탈한 장물을 팔아 대선 최대격전지인 부산경남 지역에서 박근혜 후보의 선거운동에 도움이 줄 기부사업을 펼침으로써 대선에 부당하게 개입하려 하고, 언론을 특정정당과 지역기업의 보호장치쯤으로 생각하는 저열한 언론관을 보여준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언론노조의 분석에 따르면 방송3사 중 이를 지적하며 정면으로 다룬 곳은 없었다고 밝혔다. 그나마 KBS가 13일 보도에서 한겨레 보도와 부산일보 지부장의 발언을 빌어 이를 다루는 듯 보였으나 이후 보도에서는 다른 방송사와 같이 여야간 공방으로 처리했다.

방송3사, 프레임에 갇힌 보도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

언론노조가 방송3사의 정수장학회 지분매각 모의 보도를 첫 번째 모니터링의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이 보도가 방송사 경영진들에 의한 뉴스의 사유화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자 방법적으로도 교묘한 프레임을 작동시키고 있는 사건이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먼저 지난 13일부터 19일까지 방송3사의 보도량을 보면, MBC가 16꼭지, KBS가 8꼭지, 그리고 SBS가 6꼭지를 다뤘다. 기사의 중요도를 반영하는 보도 순서도 대체로 2번째에서 5번째 사이에서 다뤄졌다. 요일별로는 처음 이슈가 제기된 주말보다 시청률이 높은 평일인 월.화.수요일에 보도량이 많았고, 주요한 이유는 MBC가 이 때 집중편성을 한 탓으로 분석했다.

MBC, 정치적 피해자로 포장하는 진영논리 부각

언론노조는 MBC가 사안의 본질을 덮으려 동원한 프레임은 도청의혹 제기와 팩트 왜곡, 그리고 피해자 논리 등 3가지로 정리했다. MBC는 보도 첫 날인 13일부터 한겨레의 ‘도청의혹’을 전면에 내세우다 배재정 의원의 통화내역 폭로 이후에는 ‘도둑촬영’을 주장하면서 불법성을 강조하는 데 주력했다.

이 과정에서 부일장학회 강탈을 인정한 판결, 부산일보 주식에 대한 처분금지 가처분 인용으로 주식매각이 불가능한 점, 최 이사장의 부산일보 매각 양해각서(MOU) 체결 발언, 유족들의 반환촉구 기자회견 등 중요한 사실관계들은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정수장학회의 언론사 지분이 강탈된 것임에도 “민주당은 또 정수장학회 지분매각 문제를 놓고 박정희 정권의 장물이라는 논리로 박근혜 후보를 겨냥했습니다”라는 표현으로 마치 정략적 주장인양 호도했고 그 이후에는 강탈, 장물이란 언급조차 사라졌다는 것이다.

반면, MBC는 도청을 기정사실화하고 팩트를 왜곡했다. 총 16꼭지 중 9꼭지에서 도청의혹을 주장했고 2꼭지의 도촬 주장까지 합치면 11꼭지가 한겨레와 민주통합당의 불법성을 주장하는 데 사용됐다. 13일부터 17일까지 총 7꼭지에서 한겨레를 특정하며 도청 공격을 해댔다. 반면, KBS와 SBS는 도청의혹 관련 보도가 없었고, 새누리당의 발언을 인용한 도둑촬영 주장 보도를 KBS 1꼭지, SBS 2꼭지를 내보냈다.

특히 부산경남지역 반값등록금과 이진숙 본부장의 ‘박근혜에게 도움을’ 발언에서는 팩트를 조작하는 무리수까지 보였다. 한겨레가 공개한 대화록을 보면, 최 이사장은 “아까 부산·경남만 학생 수 몇 명인지 찾아놓으라 했는데, 그걸 하게 되면 이 본부장 이야기한 대로 이자가 200억 정도 나오게 되면 그거 가지고 충분히 전원 반값 등록금을 해줄 수 있을 거 같애”라고 밝혔다.

200억원으로는 전국대학생 전원의 반값등록금 지원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또한 이진숙 본부장의 발언 역시 ‘정치적 임팩트’라는 앞의 발언과 연결하면 MBC의 주장과는 정반대의 뜻이 된다. 여기에는 한겨레의 정수장학회 보도가 친권력적인 MBC 경영진을 공격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에서 시작된 듯한 아우라를 만들어내고 자신을 야당으로부터 부당하게 공격받는 정치적 피해자로 포장하려는 MBC 경영진의 논리가 깔려 있다.

18일 "회동 직전 최필립 이사장 '개인수첩' 사라졌다"  보도에서 추리소설에나 나옴직한 어법이 난무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이유도 이런 피해자 논리를 강조해야 했기 때문이다.

“MBC는 반사회적인 범죄인 도청의혹에 엄정 대응하고 지배구조 개선작업을 악용하려는 세력이 누구인지 밝혀내기 위해 해당기사를 보도한 기자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습니다.”(MBC 뉴스데스크, 10월15일, 2번째 꼭지 중에서)

“해당기사를 쓴 한겨레 신문기자는 불법녹취인줄 알면서 교묘히 왜곡보도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정치적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10월16일 뉴스데스크 <정수장학회, 비밀회동 가능한가?‥교묘한 왜곡보도> 중 마지막 멘트)

KBS, 사실관계와 쟁점 정리한 첫 보도 그러나 다시 공방의 틀에 갇혀

언론노조는 13일 KBS <뉴스9>는 방송3사 보도 중 정수장학회 지분매각 협의와 부산일보 매각설에 관한 사실관계와 쟁점을 충실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 새누리당의 DLL 대화록 공개 요구와 민주당의 정수장학회 대선용 선심매각 주장을 여야 간 공방 수준으로 다루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17일에는 박근혜 후보와 정수장학회 간의 관계를 조명하는 검증보도를 내놓았으나 결론이 없는 평면적인 사실의 나열 보도를 벗어나지는 못했다고 분석했다.

SBS는 13일 첫 보도에서 사실관계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정수장학회 지분매각과 관련된 관계자들의 입장을 나열하는 보도를 냈다. 이 보도를 처음 접하는 시청자는 무슨 사건이 터졌는지, 무엇이 쟁점인지를 알 수 없는 불편한 보도였고, 이후에도 여야 간 공방이 점점 증폭되고 있다는 보도 기조를 견지했다. 사건의 개요를 당사자들의 입장 발표에서 유추해야 하기 때문에 이 사안의 중대성을 가늠할 수도 없고 관심도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단히 불친절하고 사안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작용한 보도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KBS와 SBS가 이 기간 정수장학회와 관련해 보도한 총 14꼭지 중 ‘여야공방’ 프레임을 사용한 것은 무려 10꼭지(71%)에 달한다.

프레임 보도, 입장중계 보도를 극복하고 사안별 검증보도가 이루어져야

언론노조는 프레임에 맞춘 왜곡․조작 보도도 큰 문제이지만 무비판적이고 기계적으로 각 입장을 중계하는 식의 보도 역시, 사안이 갖는 중대성이나 진위 여부를 모호하게 하고 당사자간 갈등이나 여야 정쟁으로만 비춰지게 해 국민의 정치적 혐오증이나 무관심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지적했다.

이미 경마식 선거보도로 비판받아온 언론이 이제는 후보들의 입장이나 발언을 그대로 중계하는 전령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라는 비판이다. 대선국면에서 중대사안들을 묶어서 여야간 공방으로 처리하는 프레임이 갖는 문제는, 지도자 선택에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함으로써 국민의 알권리가 훼손되고 민주주의 발전에 근본적인 장애가 된다고 밝혔다.

방송도 기계적 균형이란 소극적인 프레임에서 벗어나 중요사안은 분리해서 하나하나 그 내용을 검증하고 따져야 한다. 그것이 기자가 전령이 아니라 진정한 저널리스트로 바로서는 길이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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