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한 일을 다 알고 있다
네가 한 일을 다 알고 있다
  • 문틈 시인
  • 승인 2012.09.20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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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현관문을 열고 밖에 나서는 순간부터 나는 카메라에 찍힌다. 내가 움직이는 행로의 곳곳을 지키고 있는 CCTV가 나를 촬영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천정에 붙은 볼록한 카메라의 눈이 나를 찍기 시작하고, 바깥으로 나서면 아파트 단지내 여기저기에 설치된 몇 대의 CCTV 카메라가 나를 촬영한다.

그뿐이 아니다. 자동차가 다니는 큰 길에 나서도 마찬가지다. 도로의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가 나의 움직임을 쉴새없이 찍고, 버스터미널, 기차역은 물론이고, 버스를 타면 버스 안에서, 현금자동인출기에서 내가 돈을 인출하는 모습까지도 촬영한다. 마켓, 백화점, 은행, 호텔, 주민센터, 도서관, 지하철, 어디나 할것없이 내가 가는 곳마다 카메라들이 지키고 있다가 나를 녹화한다.

조지 오웰의 ‘1984’라는 소설에 나오는 빅 브라더가 오늘 한국에 출현하여 매순간 나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는 셈이다. 설사 감시 카메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고 해도 용 빼는 재주가 없다. 가령 감시카메라가 없는 곳에서 데이트하려고 공원으로 간다고 치자. 공원 어딘가에도 감시카메라가 작동하고 있다.

뭐, CCTV가 없는 산이나 강 같은 곳으로 가면 감시카메라로부터 벗어난다고? 하지만 내게 휴대폰이 있으니 실시간으로 위치주척을 당할 수 있다. 그러면 택시를 타고 돌아다니면 안 찍힌다고? 택시엔 블랙박스가 있어서 내가 운전기사에게 건네는 말 한 마디도 녹음된다. 나의 움직임은 마치 범죄인을 추적하듯 매일, 매시간, 매분 여지없이 영상으로, 위치로, 소리로 포착되고 있다.

어느 오피스텔에 사무실이 있는 지인이 하는 말이 자기 사무실 빌딩엔 1백개가 넘는 CCTV가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지하주차장에서부터 층층마다, 모퉁이마다 CCTV가 돌아가고, 이를 경비실에서 스크린으로 경비요원들이 지켜보고 있다고 한다. 지인이 짜장면을 시켜먹고 빈 그릇을 복도에 내놓는 장면, 손님이 자기 사무실을 방문하는 모습도 찍힌다고 한다.

이러고 보면 우리가 사는 도시는 시네마천국이 아니라 CCTV천국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아니다, 천국이 아니라 CCTV와 위치추적, 블랙박스라는 전자감시망으로 둘러싸여 있는 창살없는 감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이렇게 우리는 매일 감시받는 도시에 살게 되었을까. ‘CCTV가 작동하고 있습니다’라고 겁을 주는 안내문구를 볼 때마다 나는 마치 내가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으면 무슨 범죄라도 저지를 사람처럼 느껴진다. 하긴 도둑 하나를 경비 열이 못 지킨다는 말대로 소수의 범죄자들을 막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저렇게 수많은 경비(전자장치)들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전자감시망이 곳곳을 지키고 있는데도 범죄는 날로 더 기승을 떨고 있으니 이를 어쩌면 좋을 것인가. CCTV의 눈길이 못 미치는 곳들이 있어서 더 많은 카메라가 필요하다는 것일까.

일설에 의하면 사람이 일생을 마치고 죽어 저승에 가면 내가 일생 동안 세상에 살면서 행해온 온갖 모습들이 녹화되어 있어서 그것을 되돌려 보고, 그 꼼짝없는 증거들에 따라 천국행과 지옥행이 결정된다고 한다. 혹시 지상에서 내가 한 일들이 수많은 CCTV들에 녹화되었다가 매일 천국으로 전송되는 것은 아닐까. CCTV가 국민 개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녹화하는 그런 시대, 그런 도시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저 먹고 사느라 정신없이 왔다갔다 하는 보통 사람들을 날마다 CCTV는 감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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