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샅길에 대한 그리움
고샅길에 대한 그리움
  • 문틈 시인
  • 승인 2012.09.14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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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에서 오래 살아서인지 이제는 대도시가 좀 지겹게 느껴진다. 대도시의 수혜를 받고 살아왔으면서 무슨 소리냐 할지 모르지만 몇 걸음 물러나서 생각해보면 딴은 이해가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특히 내가 사는 고층아파트나 고속도로 같은 것들에 적이 불편한 심기다. 그 높이와 속도를 강조한 직선들이 눈을 찌른다.

뭐랄까, 가뭇없는 직선을 보면 흡사 못으로 유리창을 그을 때 나는 소리를 들을 때처럼 머리에 쥐가 나는 듯 오싹한 느낌이 든다. 저녁 아홉시 뉴스에서는 이따금 몇조 몇천억 원을 들여 몇 년간 공사한 끝에 터널을 뚫고 서울서 어디까지 가는데 20분을 단축한 새 고속도로가 건설되었다는 뉴스가 나온다. 세상에, 20분을 당기려고 산에 구멍을 내고 다리를 놓고 땅을 파고 했다는 것이다. 이러다가 우리나라 산들이 온통 숭숭 구멍이 날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대도시의 직선이라는 것에 이젠 질릴 대로 질린 사람이다. 하늘 높이 곧게 선 고층빌딩의 직선, 쭉 내뻗은 도로의 직선이 정신적으로 압박감을 준다. 심하게 말하면 일평생 직선에 시달려왔다고나 할까. 직선은 내 식대로 말하면 반자연적이다. 세상 어디에 처음부터 직선이 생겨나 있었던가.

산, 강, 바다, 땅, 하늘, 어느 것 하나 직선으로 된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직선은 인간이 발견한 문명이다. 초고층 60층 아파트에 사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고향 길에 승용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내달리며 뿌듯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마구 치솟고 쭉 내뻗은 직선은 도무지 여유와 너그러움과 배려가 없어 보인다.

뒤떨어질세라 네 발이냐, 내 발이냐, 선두를 쫓아가야 하는 비정한 도시인의 군상을 직선은 여지없이 상징하고 있다. 나도 그 직선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숨 가쁘게 내달려왔다. 그랬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는 인생을 살아온 것만 같다. 그저 숨 막히게 달려온 기억뿐이다.

직선이 채찍질하는 대로 죽어라 내달려온 삶의 끝에서 과연 내가 무엇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마침내 시골로 이사 갈 생각을 하고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는 중이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어떤 평론가 친구가 그것은 본원으로 돌아가려는 인간의 본능과도 같은 것으로 자기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거든다. 바로 그것이 원초적 인간회복이라느니 어쩌니 하면서.

옛날 시골에서 살던 어린 시절 마을 뒤쪽으로는 고샅이 있었고, 이리 저리 고샅길의 구부러진 길을 돌아가면 무엇이 있을지 늘 궁금했던 기억이 있다. 구부러진 그 다음 길엔 무엇이 있을까. 그런데 도시의 고층이나 고속도로는 한눈에 그 끝이 보여서 저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따위는 생각할 틈이 없다.

그냥 훤히 보이는 시원한 직선이 지배하는 도시문명이 공포를 내뿜는 킹콩처럼 버티고 있다. 곡선이 사라져버린 현대문명의 도시. 그것을 아무리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고 해도 나는 더 이상 속지 않으련다.

도시문명에 괴롭힘을 당한 나는 이제 귀거래사를 읊고자 곡선을 찾아가려는 것이다. 추석에 민족 대이동을 하는 것은 내가 보건대 도시의 직선에 시달린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가서 잠시 곡선의 위로를 받으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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