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에서 느껴 울다
요양원에서 느껴 울다
  • 문틈 시인
  • 승인 2012.08.27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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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3년째 요양원에 계신다. 수년 전 중풍을 맞은 데다 약간의 치매현상이 겹쳐 거의 누워 지내신다. 몸도 전혀 못 움직이고 말도 자유스럽지 않아 겨우 어쩌다 단문 한 마디를 할 따름이다. 올해 우리 나이로 여든여덟. 늘 자리보전하고 지내다보니 온몸의 근육도 다 빠지고 이제는 환자복 사이로 뼈만 앙상하게 드러나 보인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 출입도 하시고 정정했는데 어느 날 잠자리에서 일어나시다가 엉덩방아를 찧어 골반에 금이 간 후로는 영 몸이 성치 못하더니 결국 이런저런 병이 덮쳐와 요양원 신세를 지고 계신다.

엊그제는 갑자기 요로염이 생겨 열이 높아지고 혈압이 뚝 떨어져 가족들이 모두 긴장했었는데 의료진의 응급조치가 없었더라면 우리 곁을 떠나실 뻔했다. 여든 다섯 되는 어머니가 이틀에 한 번꼴로 간식을 만들어다 드리고, 가까이 사는 사위와 자식들이 자주 문안을 가고 있어 지금까지 실낱같은 목숨을 붙들고 계신다.

아버지의 인생이 저물어가는 모습을 뵈러 갈 때마다 큰 바람에 쓰러진 고목 가지에 잎이 듬성듬성 돋아있는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아버지를 뵙고 돌아오는 걸음은 언제나 천근만근 무겁기만 하다. 요양원 침대에 쓸쓸히 홀로 누워 있는 아버지를 뒤에 두고 나는 비바람 치는 세상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일평생 험한 세상을 건너느라 고단한 삶을 살았던 아버지, 홍수 끝에 물이 불어나 떠내려갈 위험에 처한 개미떼를 구하시던 아버지, 나는 한 걸음 뗄 때마다 가족을 건사하느라 온몸으로 풍진세상을 헤쳐 온 아버지의 일생이 눈에 밟혀 한참 하늘을 쳐다본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십계명의 한 계명이 이제야 크게 들린다.

그러나 해는 저물고 곧 밤이 올 것이다. 나는 아버지께 진심을 담아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훌륭한 인생을 사신 거예요.” 아버지는 금방이라도 우실 듯 삐죽삐죽 눈물을 비치신다. 그러나 정작 소리죽여 울음을 터뜨린 사람은 나였다. 마치 지금 아버지가 누워 계신 그 자리에 내가 있고 침대 곁 플라스틱 의자에 아버지가 앉아 있는 것처럼. 내게는 정말 그랬던 날들이 있었다. 그 덕분에 나는 아직 살아 있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위대하다. 이 말에 어떤 토도 달면 안된다.

요양원에는 이백 명도 훨씬 넘은 어르신들이 머리가 하얗게 새고 거동이 몹시 불편한 채로 한 방에 다섯 분씩 침대에 드러누워 있다.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슬픔 같은 것이 목울대를 넘어간다. 누구는 그렇게 사는 것이 불쌍타며 삶의 질 운운하기도 한다. 요양원에서 세상 떠날 때까지 노환에 시달리며 사는 삶에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투다. 정말 그럴까.

늙으신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쉰 넘은 아들이 때때옷을 입고 춤을 추어 드렸다는 고사도 있는 것을. 아버지가 하루하루 그저 연명할 뿐일지라도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로부터 크나큰 위로를 받는다. 삶이 고달프더라도 형제끼리 우애하며 당신처럼 삶을 성실하게 살라는 무언의 말씀을 듣는다.
아버지가 이 세상에 살아계시는 것만으로 우리들은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 나를 사랑한다는 말 대신 내 손을 그러쥐는 갈퀴 같은 아버지의 손에 아직 희미한 힘이 남아 있음을 내 어찌 감사하지 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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