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부의 차별없이 재판해야
빈부의 차별없이 재판해야
  • 박석무 다산연구소장
  • 승인 2012.08.20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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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석무 다산연구소장

우리나라의 법원과 검찰, 언제부터인가 100% 신뢰를 못 받은 지 오래입니다. 세간에는 무전유죄(無錢有罪), 유전무죄(有錢無罪)라는 용어가 두루 퍼져 진실인 것으로 행세하는 것도 법원과 검찰이 신뢰받지 못한다는 다른 표현이자 수모당하는 징표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법을 지키고 법을 공정하게 집행하는 일이야말로 인류가 야만에서 문명의 세계로 발을 디뎌놓는 첫 단계 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이런 점에서 많은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공정한 수사와 공정한 재판이 그렇게도 간절히 염원하는 국민의 바램이건만, 억울한 재판이니, 불공정한 수사와 재판이라는 비난만 많을 뿐, 그런 점에서 만족하는 사람은 별로 찾아보기 힘듭니다.

요즘 한창 재벌들의 불법행위에 대한 재판의 결과로 세상이 떠들썩합니다. 수백억, 수천억원의 배임·횡령으로 고객과 국민에게 엄청난 손실을 끼친 재벌총수들에 대한 재판에 언제나 세인의 주목이 쏠렸으나 결과는 늘 솜방망이 처벌로, 고작 집행유예에 오래지 않아 사면을 받는 특혜가 판을 쳤을 뿐, 국민의 가슴에 시원하다는 판결이 나온 적이 많지 않았습니다. 천문학적인 경제사범은 집행유예나 사면으로 아무런 부끄럼 없이 천하를 호령하면서 살아가고, 힘없고 가난한 서민들은 소액의 범죄에도 중형을 받아 오랜 감옥생활을 해야 한다면 어디서 사회정의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다산 정약용은 오래 전에 『목민심서』형전(刑典)의 「단옥(斷獄)」조항에서 수사와 재판의 공정성을 강조하고, 빈부의 격차 때문에 재판의 결과가 차이나는 문제를 심각하게 논의하였습니다. “부자죄인이 탐욕스런 관리를 만나면 혹 뇌물을 주어 요행스럽게 죄를 면할 수도 있지만, 청렴한 관리를 만나면 더러는 그가 혐의를 받을까 염려하여 지은 죄 이상으로 억울한 형벌을 받을 수도 있다. 무릇 수사나 재판을 맡은 사람은 백성의 빈부를 의식하지 말고 한결같이 공정하게만 일을 처리해야 한다 [富民遇貪吏 或行賂 以幸免 遇廉官 或避嫌 以橫罹 凡按獄者 忘民之貧富 一出於公正 斯可矣]” 이 얼마나 멋지고 정당한 주장인가요.

그동안 재벌총수들에 대한 재판은 세상이 알고 있듯이, 너무 공정하지 못한때가 많았습니다. 다산도 부자들에 대한 재판의 어려움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참으로 돈 많은 부자는 뇌물을 통해 죄에서 벗어날 수도 있었는데, 어떤 경우 지나치게 청렴한 재판관을 만나, 부자에게는 가벼운 형벌을 내린다는 혐의가 두려워 지은 죄 이상의 중벌을 내리는 것도 다산은 분명히 경계했습니다. 그래서 다산은 분명하게 선언했습니다. 범죄자가 부자냐, 가난한 사람이냐를 결코 논하지 말고 공평하게 보고 죄의 경중에 따라서만 공정한 판결을 내리라고 했습니다.

재벌들에 대한 재판이 계속 이어진다는 보도 내용이 있습니다. 그동안의 집행유예나 사면의 관행에서 벗어나 ‘일출어공정(一出於公正)’이라는 구절에 합당하게, 법과 법관의 양심에 따라 재판해 주기만 바라고 바랍니다. 이번의 실형선고와 법정구속은 그런대로 괜찮은 재판인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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