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대의원은 "며느리도 몰라"
민주당 대의원은 "며느리도 몰라"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6.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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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지구당 대의원은 같은 당인 우리도 모른다" 공당의 대의원이 누구인지 국민은 물론 당내부에서조차 공개되지 않고 있다면 과연 '민주 정당'이라할 수 있을까. 집권 여당인 민주당이 공직선거 후보를 선출하는 권한을 가진 대의원 명단을 공개하지 않아 비난을 사고 있다.

이 때문에 내년 지방선거 출마를 벼르고 있는 예비후보 캠프에서는 대의원 명단확보에 열을 올리는가 하면, 당에 연줄이 없거나 정당정치경험이 없는 입지자는 채 명단입수를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실정이다.

'예선=본선'의 공식이 통용돼온 민주당 텃밭에서 지역민들은 누군지도 모르는 소수 대의원들에게 언제까지 단체장후보 선출권한을 맡겨야만 할까. 그들의 명단 공개는 물론 차제에 대의원제도 자체를 뜯어 고쳐 정당공천 개혁을 이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비공개 실태>
일반은 물론 당내에서도 쉬쉬

대의원명단은 당내에서도 '첩보전'을 벌여야만 손에 넣을 수 있을 정도다. 오죽했으면 민주당광주시지부(지부장 정동채)조차 6개 지구당 대의원명단을 1년이 되도록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정지부장 취임당시 시지부에서는 각 지구당에 대의원명단을 보내줄 것을 통보했다.

그러나 각 지구당은 난색을 표했다. "지구당 대의원은 지구당 위원장이 선정했다. 시지부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데, 무관한 리스트를 달라고 하니까 기분 나쁘다"는 반응을 보이더라는 것이다.
시지부 관계자는 "중앙당에서 확보하라는 지침이 있어 요청을 했지만 대부분 거절당했다"며 "오히려 그쪽에서 불쾌하게 생각할 정도다"며 대의원얘기는 꺼내지도 말라는 식으로 쉬쉬했다.

지구당끼리도 명단교류가 안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광주 어떤 지구당도 공식적으로 6개지구당 전체 명단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시장후보를 뽑는 시지부 대의원들 명단은 더욱 구하기가 어렵다. 시지부 대의원은 현직 단체장과 시구의원 등 당연직과 각 지구당에서 추천하는 50명이상(현재는 20명)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광주시지부의 경우 명단의 일반 공개여부는 일일이 6개 지구당위원장 눈치를 봐야한다. 당연히 지구당에서는 이를 달갑지 않게 받아들인다. 자신들 대의원명단 노출을 꺼리기 때문이다. 지구당 대의원은 100명 이상, 광주시지부대의원은 현재 250여명이다.

<공개못하는 이유 뭔가-'사당'인가, '공당'인가>
지구당 위원장 맘대로 선출 '친위조직'
자기사람 노출될까 전전긍긍

민주당 당헌 당규에 대의원명단을 공개하지 말아야 한다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도 비공개를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민주당은 후보등록과 동시에 후보자들에게 명단을 공개한다고 답하고 있다. 또 일반 비공개 이유에 대해서는 후보선출이 당내행사이기 때문에 공개권한이 없다는 입장이다. 궁색한 답변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당내 행사'이기 때문에 일반에 공개할 수 없다는 논리는 스스로 '공당'이기를 포기한 처사라고 밖에 보기 힘든 답변이다. 당비를 제외하고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당-그것도 집권여당-이 '당내행사'이기 때문에 국민에게 공개를 못하겠다는 것은 스스로 '사당'임을 인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명단을 공개하지 못하는 속사정은 딴 데 있다. 한마디로 대의원들이 지구당위원장의 '친위조직'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대의원을 어떻게 뽑느냐는 질문에 "지구당 위원장 맘이다"고 했다.
결국, 위원장 맘대로 자신에게 충성하는 당원을 심어놨으니, 명단 공개로 곧 '자기사람'이 노출될까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대의원이 당헌에 맞게 구성돼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민주당 당헌 제66조는 지구당 및 시도지부 대의원에는 여성당원이 30%이상, 40세 이하의 당원이 20%이상 포함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대의원 구성은 당헌과 맞지 않는 경우가 허다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광주시지부 관계자는 "수십년 동안 야당을 해왔기 때문에 지구당 당원들이 대부분 나이가 많다"며 "대의원 역시 40~50대 이상으로 연령이 높다"고 털어놨다. 또 "직능단체 대표성도 없고 분야별 전문가도 없다"며 "이는 지구당위원장이 맘대로 뽑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새로 교체하려고 해도 자청해서 들어오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대부분 50대이상 고령 당헌 위배
대의원정치·조문정치 부작용 초래

대의원은 공직선거 후보만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당의 최고의결기관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조직표상에서나 가능하다. 실제로 2년마다 개최하도록 규정된 지구당 대의원대회나 시도지부 대의원대회는 단 한 번도 열린 적이 없다.

이에 대해 광주시지부는 "대의원대회는 위원장 선출이나 중요한 문제가 있을 때 개최한다"면서 "그러나 대의원대회 권한의 3분의 2를 상무위원회에 위임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상무위에서 대체하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같은 답변 또한 대의원의 본질적 역할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민의를 수렴해 당의 주요 사안을 의결해야 할 대의원이 실은 당직이나 공직선거 후보를 뽑는 '투표인'역할밖에 못하고 있는 셈이다. 선출방식마저 지구당위원장이 '맘대로' 뽑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지구당 위원장의 의중에 따라 거수기 노릇만 할 수도 있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의원제도 문제가 자꾸 거론되는 것은 광주전남의 특수한 정치환경과 깊은 관계가 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이 지역은 텃밭이기 때문에 예선전 승리가 본선 승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대의원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하고, 대의원 선출방식도 민의를 폭넓게 수렴할 수 있도록 개선돼야 한다"고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당직자들이 많다.

특히 '상향식 민주주의'를 운운하면서 대의원을 비공개하고 있는 현실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지적을 자초한다. 당헌에 규정된 대의원의 권한을 보장하지 못하는데다 당 내부에서조차 대의원들이 어떻게 분포돼 있는지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당내 민주화'를 떠들어 대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는 지적에 귀 기울여야 한다.

'조문정치', '대의원 관리' 등 이른바 '대의원 정치'가 등장한 것도 대의원제도의 문제점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민의를 폭넓게 반영하기는 커녕 민의를 왜곡하거나, 역량이나 자질과는 상관없이 대의원만 잘 관리한 정치인이 성공하는 풍토에서 정치란 '로비'나 '처세'의 다른 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바꿔야 하나>
"명단 공개 못하면 당내 민주화 없다"
선출방식도 당원들이 직접 뽑아야

대의원은 반드시 공개돼야 한다. 이른바 '정당정치'를 표방하는 나라에서 "대의원 명단을 공개하라"는 여론이 나오는 것 자체가 정치의 후진성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오재일 전남대교수는 "기본적으로 민주정당이라고 하면서 왜 공개를 안 하느냐"며 "이런 저런 비민주성때문에 최소한 정당으로조차 인정받지 못한다"고 언급 자체를 회피했다. 한마디로 정치학자가 공당, 그것도 집권여당의 대의원 명단 공개여부와 관련 논평을 한다는 것 자체가 우습다는 것이다.

송선태 광주시의회 전문위원도 대의원 명단은 반드시 공개돼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대의원들을 선임하는 방법이 지구당위원장의 단독권한이어서 결국은 친위조직화하는 것 아니냐"며 "과열경쟁 타락불법선거를 막겠다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상향식 공천을 하겠다고 하면서도 대의원을 통한 선의의 경쟁을 봉쇄한다면 그게 무슨 민주적인 후보자 선출방법이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대의원이 지금처럼 지구당위원장의 명령전달체계를 확립하는 수단이 된 상황에서는 당내민주화는 요원할 것이다"며 "대의원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등 텃밭에서 용기있게 실천하지 못하면 집권여당은 물론 공당으로서의 올바른 모습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민주당내에서도 이같은 지적은 상당한 공감을 얻고 있다. 지난 5월 29일 천용택 전남도지부장은 도내 지구당 사무국장·연락소장 연석회의에서 대의원제도 등을 언급하며 "합리적 후보공천 방안을 중앙당에 강력 건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그는 대의원 선출방식과 관련, 미국의 '예비선거(프라이머리)'방식을 도입할 것을 검토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4·26 재·보선 참패 원인중에는 공천 잘못도 원인이 됐다는 중앙당의 지적이 있다"면서 "내년 지방선거는 정권재창출을 위해 매우 중요한 선거이기 때문에 후보공천도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을 지명하는 것은 대의원들로 이들을 뽑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시된다. 예비 선거는 민주ㆍ공화 양당의 당원들이 참여해 전당 대회에 나갈 대의원을 뽑는 절차로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 2월에서 6월까지 무려 4개월에 걸쳐 치러진다. 지구당위원장이 자기사람으로 채우고, 그나마 공개도 않는 한국식 대의원제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셈이다.

민주당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의원의 수를 4배수 정도로 대폭 늘릴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광주시지부는 현재 250여명에서 1천여명, 전남도지부는 3천여명으로 대의원이 늘게 된다. 매표를 방지하고 유권자의 민의폭을 확대해 수렴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에 앞서 반드시 전제돼야 할 것이 바로 대의원 명단 공개와 당원에 의한 대의원 선출이다.

이와관련, 김정구 동신대교수는 "대의원 숫자를 늘려 직능대표나 시민단체 대표도 포함시켜야 한다"며 "대의원 역시 공개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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