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모두 다 한명숙·김용민 책임이라고?
이게 모두 다 한명숙·김용민 책임이라고?
  • 류정민 기자
  • 승인 2012.04.17 1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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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 프레임’에 농락당한 19대 총선…총선분석 ‘언론 편향성’이 빠졌다!

“평화시장 한 평 옷가게에서, 새벽 기사식당에서, 시골장터 좌판에서 그분들의 절절한 삶의 애환을 잊을 수 없습니다. 민생의 아픔을 다시 확인하고 우리의 할 일을 다짐했습니다. 반드시 잃어버린 서민의 웃음을 되찾는데 저의 온 힘을 쏟겠습니다. 저는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지만, 당원의 한 사람으로 2012년 정권교체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할 것입니다.”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결국 물러났다. 노무현재단 이사장 시절부터 검찰의 ‘표적 수사’ 논란 속에 두 번이나 무죄를 받았던 인물, 정치검찰의 탄압을 이겨냈다는 이미지는 그를 민주통합당 대표로 만들어 놓은 배경이었다.
한명숙 대표는 1월 15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의원 투표, 현장 투표, 모바일 투표 모두 1위를 차지하며 총선과 대선 정국을 돌파할 당 대표로 선출됐다. 그러나 그의 역할은 불과 3개월을 넘지 못했다.

민주통합당은 19대 총선에서 127석의 의석을 얻었다. 18대 총선 당시 통합민주당이 81석을 얻은 것과 비교하면 46석이 늘어난 셈이다. 그러나 누구도 민주당의 ‘승리’라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 승리는커녕 패배, 심지어 참패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18대 총선과는 기대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야권 지지층은 새누리당이 152석으로 원내 과반 의석을 달성한 결과를 보며 충격에 빠졌다. 그 자리를 민주당이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오히려 여당이 승리하는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충격이라는 두 글자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야당 지지층, 특히 민주당을 통해 정권교체를 기대했던 이들에게 19대 총선은 충격을 넘어 상실감을 안겨준 선거였다. 야당의 통렬한 반성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기대수위를 충족시키지 못한 야당의 수장은 어떤 형태로든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었고, 한명숙 대표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한명숙 대표는 “이번 총선민심은 이명박 정권에 대한 심판이었다. 이 심판에 공감하는 수 많은 시민들을 투표장으로 모시지 못한 책임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있다”면서 “이 모든 부족함은 대표인 저의 책임”이라고 밝혔다. 총선 패배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다 짊어지고 가겠다는 뜻을 전한 셈이다.

한명숙 대표가 물러나는 것은 정치적으로 타당한 결정이다. 시간을 끌면 자리에 연연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기에 즉각 사퇴 의사를 전하는 모습은 의미가 있다.
민주당의 패배를 제대로 분석하고 원인을 규명해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문제는 재발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의 처절한 반성이 뒤따라야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한명숙 대표의 ‘온화한 리더십’은 총선 정국의 ‘야전사령관형 리더십’에 대한 기대와는 거리가 있었다. 때로는 가혹하게, 때로는 과감하게 결단하는 모습이 필요했지만, 그는 대화와 타협으로 이해를 이끌어가는 모습을 시도했다.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신속한 의사결정과는 거리가 있었고 때로는 좌고우면하는 모습으로 비치기도 했다.

김용민 교수 막말 파문 당시의 모습이 그랬다. 안고 가거나 후보직 사퇴를 권유하는 결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분명하면서도 신속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논란이 점차 확산되고 선거에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이어지는 동안 민주통합당은 ‘당론’을 정하지 못했고, 뒤늦게 어정쩡한 입장 발표로 정리하는 모습이었다.
한명숙 대표가 총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제1야당 대표라는 점에서 정치적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모든 게 다 한명숙 대표 책임이라는 식으로 몰아간다거나 심지어 김용민 교수의 막말이 민주당 패배의 결정적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합리적인 근거에 의한 분석이라기보다는 ‘책임회피성’ 주장일 수도 있다.

냉정히 지난 시간을 복기할 필요가 있다. 민주통합당은 거대한 고깃덩어리와 같은 존재였다. 의회권력을 차지할 가능성이 커지자 여기저기에서 물어뜯고 제몫을 챙기고자 했으며, 정치적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민주당 내부의 각 계파는 자기 몫의 공천을 챙기고자 목소리를 드높였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하나 같이 공천이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그들에게 공천이 어떻게 잘못됐느냐고 물어보면 친노의 문제, 486의 문제, 심지어 특정 여대의 문제를 얘기했다. 그러나 진짜로 특정 그룹에만 편파적인 공천이었느냐고 물어보면 뚜렷한 근거를 대지는 못했다.
친노와 486 역시 공천에 불만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구 민주계 쪽이건, 시민통합당 쪽이건, 친노 쪽이건, 486그룹 쪽이건, 한국노총 쪽이건, 각 대선주자 진영 쪽이건 불만 기류를 관통하는 공통점은 있었다.

바로 우리 사람을 더 챙겨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불만의 목소리였다. 겉으로는 민주당 공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자기 쪽 사람을 심고자 노력했다는 얘기다. 이게 모두 다 한명숙 대표 책임이라고 주장하기 전에 민주당의 각 그룹은 자신들이 공천 과정에서 어떤 모습을 보였고, 어떻게 제 몫을 챙기려 했는지 되돌아보기 바란다.
당 대표가 책임을 면할 수는 없겠지만, 그에게 모든 책임을 부담시키고 자신들의 문제는 감추려는 태도는 너무 속이 뻔히 보이는 모습이라는 얘기다. 김용민 교수의 막말 논란이 총선 패배의 결정적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김용민 교수의 막말 논란이 총선에 악영향을 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정말로 유권자들이 도덕성 문제 때문에 민주당에 등을 돌린 것이라면 설명이 안 되는 측면이 있다. ‘제수 성폭행’ 논란을 빚은 친박근혜계 포항 국회의원 후보나 논문 표절로 궁지에 몰렸던 부산의 여당 국회의원 후보가 당당하게 당선되는 상황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 ‘조중동 프레임’이 숨겨져 있다.

이번 총선 결과와 관련해 언론이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지만, 결정적인 변수인 ‘언론 편향성’에 대해 언급하는 이들은 별로 없다. 균형감각은커녕 이중잣대로 얼룩진 총선보도는 이미 새누리당 쪽에 한 참 기운 보도 편향성을 보여줬다.
김용민 교수의 막말 문제는 집중 부각한 반면 친박근혜계 포항 후보의 ‘제수 성폭행’ 문제는 그런 사건이 있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무덤덤’하게 보도하는 게 과연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도였을까.
조중동 프레임은 이명박 정권 심판 선거를 김용민 심판 선거로 둔갑시켰다. 조중동이 의제를 설정하면 정권 편향적인 방송사들이 저녁 뉴스를 통해 그 흐름을 따라가는 방식, 새누리당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보도를 이어갔다는 얘기다. 야권의 악재는 부풀려지고 여권의 악재는 축소되는 행태가 계속 이어졌다.

김용민 후보의 막말 사건이 없었다면 선거는 정말로 야권의 승리와 여권의 패배로 끝이 났을까. 보수언론은 야권에 치명타를 날릴 의제를 설정하고자 또 다른 먹잇감을 찾아내지 않았을까.
조중동이 야권에 치명타를 날릴 사건을 찾아내 ‘편향 보도’를 쏟아내면 저녁에는 방송사들이 이를 확대재생산하는 모습이 이어지지 않았겠는가. 정권에 편향적인 언론의 현실을 외면한 채 이게 모두 다 한명숙 김용민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한계가 뚜렷한 분석일 수밖에 없다.

이번 총선은 ‘조중동 프레임’에 농락당한 선거라는 얘기다.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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