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공동체와 윤리(6)
삶과 공동체와 윤리(6)
  • 이홍길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상임대표
  • 승인 2012.04.12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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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길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상임대표
전통시대에는 물론 권위주의 정권하에서도 전통의 공동체적 가치가 유령처럼 등장하여 시민사회적 가치를 퇴색시키면서 권위주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던 시절이 있었다.

가족 구성원이면서 국가 구성원인 국민들이 부모에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자는데 막무가내 반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간의 우리들은 망국의 설움 속에 살았고 각가지의 이산의 아픔들을 겪었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제고되는 충․효의 정치적 함의를 따질 겨를이 없었고 더욱이 일반대중은 두말 할 나위가 없었다.

충․효를 제고하면서 인류사회의 미사여구를 망라하여 소위 ‘국민교육헌장’을 만들어 각급학교에서 암송시키면서도 헌장 내용에 정의를 배제시켰던 권위주의 권력은 전통 공동체의 미덕을 현대적으로 분장시켜 국민들의 의식을 마비시켜 나아갔다.

그런 와중에 대통령은 옛 군주의 위신을 둘러쓰고 ‘임금은 부끄러움이 없다’는 격언을 증명하듯이 황음무도함을 일삼다가 옛날식으로 말하자면 측근에 의해 시해를 당하기도 하였다. 오늘 식으로 말하자면 응징되었다고 할까 처단되었다고 할까 표현하기가 손쉽지 않다.

각설하고 비합리적인 전근대 공동체의 가치는 근대화의 완결을 위해서 시민사회적 가치에 자리를 내어주거나 파괴되어야 할 족쇄와 같은 것이었다. 선진국들에 비해서 근대화가 지연된 한국의 낙후는 저개발의 당연한 결과로 인식되어, 전통으로 부터의 탈피로 이해되는 사회생활의 합리화과정과 개인화과정은 보다 철저하게 완결되어야 할 과제로 여겨졌다.

근대화 될수록 선진화 되고 선진화 될수록 건강하고 행복한 삶들이 이루어 질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와 같은 근대화의 일반적 추세에 편승한 쿠데타정권은 조국 근대화를 내세워 과거 중국 장개석정권이 집행한 ‘신생활운동’을 본받아 새마을운동을 전개하였다.

"좋아졌네 좋아졌어 몰라보게 좋아졌어" 하면서 새벽종이 울렸으니 일하러 나가자고 온 국민을 독려했던 귀착점은 결국 유신체제였고 그 내용은 긴급조치로 표현된 인권의 제약과 유린이었다. 변형된 한국판 군대화였는데, 변형의 아픔을 제하고도 도시생활의 과도한 합리화와 개인화가 가져오는 소외들은 사람들 간의 소통을 어렵게 만들었다.

60년대에 인구에 회자되던 군중속의 고독이라던지 삶의 권태감을 주절거릴 때에는 그런대로 여유들이 있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만연한 신자유주의는 지구촌 규모의 금융자본들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서민들의 삶을 유린하는 것을 방조, 99%의 피폐한 서민과 1%의 부유층으로 양극화되는 현실 속에 자유민주주의에서 민주는 실종되고 가진 자들을 위한 자유지상주의만 낙락장송처럼 더욱 의연해가니 백성들의 아픔과 허기만이 백설이 분분하듯 통한의 개벽세상을 열어가는 성 싶다.

삶은 지식인이나 계몽된 엘리트만 대표하는 것이 아니고 1%의 유산자가 대표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냥의 사람들이 대표하고 나타내는 것이 삶이다. 근대화되면서 인민들의 빈곤화가 가속하는 마당에 인간다운 삶을 지탱하고 탈환하기 위해서는 습관처럼 불렀던 근대화 찬가를 거두고, 그처럼 떨쳐내고자 했던 공동체의 가치들을 다시 수습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가공할 수준의 전인민의 채무자화. 전통의 공동체 속에서 우리들의 최소한의 일상을 보장받았던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나 새로운 가능성으로 우리들을 꼬드긴다. 그러나 과거는 흘러가서 전통가치가 그대로 민주주의 시대인 현대의 동력이 될 수는 없다. 합리화와 개인화가 인간회복이라는 새로운 함의를 제고하면서 합당한 민주적 공동체를 모색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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