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틈/시인의 세상보기-시민민주주의 시대의 풀뿌리
문틈/시인의 세상보기-시민민주주의 시대의 풀뿌리
  • 문틈/시인
  • 승인 2011.10.09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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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스스로가 자신의 권력자가 되는 ‘혁명’의 시대가 오고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지도자를 뽑을 때 제비뽑기로 했다. 언뜻 생각하면 민주주의의 발상지답지 않은 대표자 선출방법 같지만 진짜 민주주의는 이런 제비뽑기식 선출에 있다는 견해도 있다. 오늘처럼 투표를 통해 선출된 지도자는 ‘선출된 권력’이라고 자만하여 독단이나 독재로 흐르기 쉽다. 대의민주주의의 폐해다.

그러나 제비뽑기로 뽑힌 자는 ‘내가 제일 잘 나가’서가 아니라 그저 우연에 의해서 자기가 선택되었을 뿐이라는 인식 아래 낮은 자세로 직에 임하게 된다. 대통령, 국회의원을 비롯 구의회의원까지 결코 일반 민초보다 더 똑똑해서 뽑힌 것이 아니라는 확실한 자리매김으로 제비뽑기가 이상적일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리스는 부정 무능한 지도자를 국외 추방할 경우에는 조개껍질 투표를 통해 정했다. 진짜 민주주의 같지 않은가.

사실 선출된 권력은 뽑힌 이후엔 국민 위에 곧 군림하려 들기 쉽다. 민초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른다. 말로는 국민을 섬긴다 하면서도 정보를 독점하고 세금을 낭비하며 마구잡이로 정책을 펼친다. 그래도 투표형식으로 민의를 맡겼으니 국민은 다음 선거 때까지는 어쩔 수가 없다.

전봉준 장군이 동학혁명으로 위세를 떨쳤을 때 부패한 권력을 바로잡기 위해 한때 행정시스템에 시민참여의 ‘집강소’를 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은 온갖 시민단체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려 한다.

작고한 노무현 대통령은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했는데 그것은 권력이 시민사회로 넘어갔다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노무현 정부에선 유독 시민단체 출신들이 눈에 띠게 한 자리씩 꿰찼었다.

그런데 지금은 투표로도 시민단체로도 국민의 바람을 다 담아내지 못한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등장하면서 국내외 뉴스들은 실시간으로 공유될 뿐만 아니라 일반 민초들이 누구나 동등한 자격으로 이슈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제 선출된 권력이 민의를 독점하는 시대가 아니라 시민들이 함께 권력을 나누어 갖는 시대가 왔다는 이야기다. 대의민주주의에 커다란 변화가 오고 있는 징조다. 그 하나의 예가 최근 정치권 바깥에 있는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갑자기 차기 대선후보로 붕 뜬 사태가 잘 말해준다.

정당이나 언론은 이런 초유의 현상에 경악하고 있다. 이를 두고 기존 정당정치의 불신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이제 대의민주주의를 넘어서 시민이 직접적인 방법으로 대리자를 선택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것은 앞서 말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일상화되면서 말단 행정단위인 면에서 정부에 이르기까지 시민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권력을 직접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시민은 더 이상 풀뿌리로 땅 속에 쳐박혀 있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이 현상은 선출된 권력이나 자생 시민단체들이 더 이상 민의를 독점적으로 대변할 수 없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정부나 시민단체를 제쳐두고 시민들이 직접 인터넷을 통해서 불만과 의견을 표출하고 모은다. 시민 누구나 동등한 자격으로 권력에 감놔라 배놔라 할 수 있게 된 세상이 되었다. 바야흐로 시민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권력이 대의민주주의의 정부 조직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민 각자가 나누어 갖게 된다는 것은 우리가 처음 접해보는 놀라운 변화다. 시민이 직접 권력에 참여하는 시민민주주의 시대에 정부, 정당, 언론, 시민단체가 누려온 지금까지의 권력 시스템과 행사 방법에 일대 전환이 불가피해졌다.

내년에 국회의원선거와 대선이 있다. 내년의 선거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여론표출과 선택에 의해서 대통령이나 선량들이 뽑힐 가능성이 크다. 시민들이 각자 ‘권력자의 입장'에서 말 그대로 국민을 섬기는 ‘머슴’을 선택하는 선거가 될 것이라는 말이다.

시민이 민의를 대변하는 선량을 뽑는 선거가 아니라 시민 자신이 권력자로서 권력을 심부름시키는 공복을 선택하는 의미를 띠게 될 것이다. 고대 그리스가 시도했던 직접민주주의의 형태가 오늘 한국에서 인터넷을 통한 시민민주주의의 형태로 발화되는 장면을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

시민 스스로가 자신의 권력자가 되는 ‘혁명’의 시대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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