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가는 세상이 아름답다-1-
함께가는 세상이 아름답다-1-
  • 박재범 기자
  • 승인 2011.09.01 16: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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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는 능력입니다. 장애는 아름답습니다”
장애인의 오랜 동반자 - 광주 ‘실로암사람들’
경제와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현 세태 속에 자신의 손과 마음을 덜어 이웃과 함께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공동체’이다. 경쟁이 ‘미덕’으로 추앙받고 있는 시대에 이웃을 살피고 삶의 가치와 양식을 새롭게 창조해가려는 ‘공동체’.

일회적인 행사의 대표적인 연말 불우이웃돕기 같은 일시적인 봉사활동이 아닌 집단 속에서 상생하고 공동체 문화를 내실 있게 살찌우는 ‘공동체’를 찾아 우리의 대안사회를 꿈꾸는 미래의 보고서를 작성해본다. -편집자 주-

▲선교활동으로 시작한 ‘실로암사람들’ 에서 복지와 인권 찾기까지
우리나라 전체인구의 10%인 약 500만 명의 장애인이 있다. 여기에 산업재해와 교통사고, 공해 등의 사회환경으로 인해 그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듯 장애인의 수는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지만 장애인들은 대부분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차별 속에서 살고 있다.

이런 장애인들을 위해 36년 전 탄생한 ‘실로암사람들’이 있다. 지난 1976년 장애인을 대상으로 사랑과 봉사, 섬김과 나눔의 기독교 정신으로 선교활동을 펼치기 위해 ‘실로암 사람들’의 모태인 ‘불우 형제단’이 창립된 것이다.

실로암사람들의 기본 정신은 기독교의 ‘삼위일체’에서 유래된 ‘생명, 풍성, 사랑’의 비전이 들어있다.

현재 광주, 전남지역 장애인 1,500여명이 가입돼있으며, 36년이란 역사로 인해 전국 각지에 100여 명의 장애인이 가입돼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들을 위해 약 500여명의 후원자와 자원봉사자가 활동 중이다.

▲장애인의 인권 찾기 나서
실로암사람들은 단순한 선교를 뛰어넘어 장애인의 인권신장과 자립 및 복지를 도모하고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실현을 통해 지역사회와 국가의 발전은 물론 인류평화에 기여가 목적인 복지와 인권으로 지난 2001년 다시 태어났다.

생명운동을 하는 단체로 조금 구체화하자면, 장애인에 대한 선교와 인권 복지의 세가지의 면을 동시에 추구한다. 처음 출발은 비록 장애인 선교단체로 출발했지만, 선교활동 중 장애인들의 현실이 열악해 ‘복지’라고 하는 일을 더했다.

김용목(49) 대표는 “단지 선교사업을 하다 보니 복지의 필요성이 있어서 관련된 일을 일부 감당하기 시작했다”며 “지난 2001년대 접어들어 전국적으로 ‘장애인차별운동법제정운동’ 등의 장애인운동이 일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장애인인권에 대한 부분에 관심을 두고 구체적으로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2001년도 광주에 ‘장애인이동권연대’가 만들어졌다. 당시 광주에는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타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는 또 “장애인들이 방안이나 시설에서만 살 수만 없어 뭔가 지역사회 안에서 본인들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지역사회로 나와야 했다”며 “이때부터 실로암사람들이 장애인의 이동보장을 위해 싸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실로암사람들은 지역 장애인운동의 한 중앙에 서있다. 장애인의 기본권쟁취 운동에 있어서 모든 열의를 쏟고 있다. 이 때문에 실로암사람들이 진보적인 운동권 단체라고 오해를 받고 있지만 이 모든 게 장애인의 인권을 위함이다.

이때부터 실로암사람들의 취지인 선교와 복지와 인권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게 됐다.

▲육체적 재활은 물론 정신적 재활까지
실로암사람들에는 ‘실로암재활원’을 비롯해 ‘가정상담소’, 여성장애인가정폭력피해자 보호시설인 ‘새날’, ‘무진장애인장학회’, ‘오방장애인자립생활센터’, ‘아하장애인가족지원센터’ 등 장애인의 육체적인 재활부터 정신재활까지 사회생활에 필요한 전반적인 것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지난해 7월 실로암사람들은 장애인들의 교육요람으로 거듭날 실로암장애인평생교육원을 광주 남구 주월동에 열었다.

이곳에는 현재 실로암사람들 부설기관인 장애인야학 꿈을 나누는 사람들, 실로암장애인재활치료센터, 아하장애인가족지원센터 등 세 기관이 입주했다.

그동안 비장애인들을 위한 교육, 문화, 여가 등 평생교육시설은 있었지만 장애인들이 이용할 평생교육시설이 전무한 상황에서 장애인평생교육원 개소는 반가운 단비라는 평가를 당시 받았다.

이제 실로암장애인평생교육원은 장애인들도 비장애인과 함께 언제 어디서나 균등한 교육을 제공받을 수 있게 됨은 물론 장애인의 사회통합 실현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활동을 펼치게 된 것이다.

특히, “‘홀’로 삶을 세우며, ‘더’불어 사람들의 희망 이야기”란 이름의 ‘홀더’를 설립해 청각장애 학생들을 위한 복지와 인권의 장을 만들어 노력 중이다.

설립 5년째를 맞은 홀더는 청각장애 학생들이 모여 생활하는 그룹홈 3곳과 공부방이 있다. 지난 2005년 인화학교의 성폭력이란 불미스러운 일로인해 광주시민들 중 모든 책임은 어른들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학생들의 상처를 보듬어 주고자 십시일반 후원을 해줘 학생들이 모여 공부할 수 있는 공부방을 마련하게 됐다.

벌써 이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게 되면서 취업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취업의 벽에 부딪히게 돼 두려움을 갖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실로암사람들에서는 지난 8월 ‘제2회 홀더 후원의 밤’을 열었다. 공연 수익금으로는 작게나마 사회적기업을 창업해 학생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실로암사람들은 현재 행정의 지원도 받고 있지만 대부분 시민들의 후원으로 살림을 꾸려나간다. 현재 500여명의 후원자가 있지만 살림이 빠듯한 실정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장애인인권운동을 펼치고 있는 김용목 대표
실로암사람들을 이끌어가는 김용옥 대표는 신체장애인이다. 그는 어려서 고열에 시달렸다. 그 후 다리에 마비가 왔다.

소아마비가 되어버린 그는 어른이 되기도 전에 자신 앞에 놓인 장애의 고민 때문에 어린 시절에 느껴야 할 기쁨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신앙으로 마음을 다잡던 어느 날. 성경에서 요한복음9장 중에 ‘너를 통해서 찾고자 하는 것이 있다’의 예수님의 말씀을 접한 것이다. 그는 변화되기 시작했다.

장애를 인정하자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가를 깨달았고 또 앞으로의 꿈과 계획도 섰다.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고 참된 것일까’를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심정과 일체한 실로암사람들과 함께했다. 그곳에는 하반신마비자도 있고 시각장애자와 청각장애자도 있고 정신지체인도 있었다. 그는 실로암사람들에게 되도록이면 의존적인 삶을 살려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고 했다.

마음만 먹으면 장애로 머물러 있지 않고 얼마든지 보통사람처럼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냉정했다. 장애자에게도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들이 자유롭게 빛나고 있다는 것을 현실은 거부하고 있었다. 사회와 가정은 장애를 지녔다는 이유하나로 외면하고 차별했다.

장애자를 위한 사회구조는 그가 어릴 때나 지금이나 별로 나아진 게 없었다. 여전히 장애자는 비장애인처럼 계단을 쉽게 오르고 내리지 못했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없고 농아인은 수화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아 마음의 표현을 전달하고 받는 데에 있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또 취업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재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취업을 받아들이는 곳이 없어 경제적으로도 자립을 할 수 가 없다. 장애인들이 어떤 형태로든 자발적으로 순응하려면 거기에 따르는 충분한 교육과 시설이 필요로 했다.

김 대표는 “전문가들은 장애인 입장에 서지 않고 전문가들의 입장에서 장애인들을 진단하고 판단하여 결론을 내린다”며 “때문에 장애인에게 꼭 필요한 교육과 시설이 아직도 미흡하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언제까지 장애인이 이런 사회 구조 속에서 포기하는 삶을 살수는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는 여러 방면으로 장애인이 사회의 일원으로 자립하여 당당히 살아갈 수 있도록 시민단체와 힘썼다.
그것의 대표적인 예가 교육감실을 점거 농성하여 광주광역시교육청에 장애인교육여건개선을 요구하여 특수교육지원센터설치및 전담인력배치와 유,초,중,고특수학교와 학급에 대한 치료교사및 직업교사배치등17개항을 합의하는데 성공했다.

김 대표는 “실로암사람들과 함께하면서 다른 장애인 문제를 풀고 일하다보니 제 안에 산재되어 있는 장애에 대한 고민이 저절로 해결됐다”며 “그래서인지 인간적으로 좀더 성숙해지면서 가족이나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지고 넓어졌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이것이 참으로 의미 있고 행복하고 기쁘다”며 “앞으로도 장애인을 위한 문제들을 끊임없이 제시하며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긴장을 늦추지 않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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