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추[혹성탈출] 대중재미 · 영화기술 · 삶의 숙성, 모두 A+.
@강추[혹성탈출] 대중재미 · 영화기술 · 삶의 숙성, 모두 A+.
  • 김영주
  • 승인 2011.08.26 13: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명한 영화의 앞이야기(프리퀼)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스타워즈 : 에피소드]이래로 부쩍 눈에 띈다. 이번 [혹성탈출]도 찰톤 헤스톤이 주연했던 [혹성탈출](1968)의 앞이야기이다. ‘진화의 시작’이라는 제목으로, 원숭이가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보여준다.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SF공상영화가 아니라, 머지않아 곧 일어날 법한 21세기 버전이다. 앞이야기를 소재로 삼는 게, 그 앞 영화에 얽매어서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앞 작품보다 소재의 신선함도 떨어지거니와 더 좋은 작품이 되기도 어렵다. 앞 작품이 상영된 지 워낙 오래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앞 작품보다도 이 영화가 훨씬 더 뛰어나 보인다.( 초등시절, 양림동 오거리 골목길, 시멘트 담벼락에 붙은 그 포스터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



탄탄한 시나리오에 현실적인 리얼러티가 짜임새 있게 자리잡아서 정말이지 실감난다. 그게 핏빛 낭자하게 잔혹하고 처참한 공포감이 아니라, 밤의 도둑처럼 검은 그림자가 발끝으로 스멀스멀 기어드는 듯한 으스스하게 음산한 공포감이다. 스토리 라인이 뻔한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긴박감이 넘친다. 초반에는 그저 평범한 일상생활처럼 보이다가 점점 긴장감을 높여간다. 중반을 넘어서면서 스산하게 불길한 공포감이 스멀스멀 다가오더니, 그리곤 마침내 그 불길함은 생생한 현실로 폭발하고 만다. 그 공포감이 밀려오는 가속도가 아주 좋다. 그 속도감을 이토록 훌륭하게 잘 연출해낸 감독의 실력이 대단하다. 그리곤 마지막 마무리가 모골이 송연하게 섬뜩하다. 비행기 항공노선이 지구촌을 온통 뒤덮어가는 장면이 겉으론 평범해 보이지만, 이 영화 내내 이어지는 음산한 공포감을 한꺼번에 압축하여 새로운 차원의 공포감으로 밀려온다. 엄습하는 그 검은 그림자가 이 영화로 끝나는 게 아니라. 우리 집 앞마당에까지 먹구름처럼 몰려들겠다는 두려움에 몸서리가 돋았다. 인류의 멸망을 막연하게 예감하기도 하고 막연하게 설마 하기도 했는데, “아! 인류가 그리 머지않아 이렇게 멸망하겠구나!”하는 절감이 바짝 다가왔다. 충격이었다.

[반지제왕]을 만든 피터 잭슨 감독의 [킹콩]에서 킹콩의 몸짓과 표정 그리고 공룡과의 싸움 장면이 너무나도 실감났는데, 그 디지털 그래픽 스튜디오인 ‘웨타 디지털’이 모션 캡처로 섬세하게 잡아낸 동작액션은 물론이고 주름과 털 하나하나 그리고 그 눈빛이나 표정마저 생생하게 그려내어 거의 완벽한 원숭이들을 만들어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기술문명이 초래한 자멸의 수렁에 몸서리치면서도, 그 기술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이를 어찌 해야 할까? 이 영화의 후반에서 보여주는 인간과 원숭이의 전쟁도 박진감 넘치고 화끈하다. 대중재미 A+, 영화기술 A+.
 
<예고편>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58481&videoId=31614&t__nil_VideoList=thumbnail 

여러분은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생각하세요? ‘만물의 암세포’라고 생각하세요? 공자 맹자 소크라테스 플라톤 · · · 은 만물의 영장 쪽이고, 노자 장자 루소 · · · 는 만물의 암세포 쪽인 것 같다.( 예수교나 불교처럼 애매한 경우도 있지만, 결론은 만물의 영장 쪽이 대부분인데, 20세기 후반부터 만물의 암세포 쪽이 많아지고 있는 듯하다. ) 난 만물의 암세포 쪽이다. 그래서 한 시절 “나와 가까운 사람 100명 빼고, 나머진 화성으로 이민 보내고 싶다.”는 ‘치졸한 망상’을 했던 적이 있다. 요 몇 년 사이 다시 생각해 보니 “나까지 포함해서 인간이라는 종자 자체가 없어져야, 지구가 그나마 온전하겠다.”는 생각이 부쩍 든다.

이 영화도 만물의 암세포 쪽이다. 그런데 문제점은 이런 인간들을 누르고 등장하는 원숭이 세상이 인간보다 더 심각한 암세포가 될 것 같다는 점이다. 치졸한 망상이 다시 떠오른다. “이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게 푸른 지구를, 어떻게 하면 암세포 없는 세상으로 만들 수 있을까?” 아휴~! 나오느니 한숨뿐이다. 내가 무얼 할 수 있겠나! “죽지 않을 바에야, 세상사에 관심을 최대한 줄이고, 내 소비량을 최대한 줄이면서, 내가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이 걸어가는 쪽을 느릿느릿 뒤따라가야겠다.”

내 치졸한 망상이나 궁여지책이 무엇이든지, 지금 우리 인간들이 지구에게 너무 잘못하고 있는 건 분명하다. 이에 [아마존의 눈물] [북극의 눈물] [아프리카의 눈물]처럼 애틋한 계몽다큐도 중요하고, 이 영화처럼 충격적인 드라마도 중요하겠다. 이런 작품들이 쌓이고 쌓여서, 인류가 자멸하기 전에 각성하고 또 각성하여 그 한 방울의 눈물들이 모이고 모여 개울이 되고 시내가 되고 언젠가는 강물처럼 도도하게 흘러넘칠 날을 기다리며, 지구의 다른 생명체를 소중하고 감사하게 여기는 세상이 되도록 노력하고 노력할 일이다. “이대론 안 된다.”는 일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 푸른 지구를 온전히 지켜내는 일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사람이 많아지길 갈망한다.

‘인간이 쌓은 오만방자한 바벨탑’을 음산한 공포감으로 섬뜩하게 그려낸 이 영화로, 그런 사람이 한껏 많아지길 기대하면서 이 지구촌의 모든 인간들 남녀노소에게 적극 강추합니다. 아주 재미있으면서도 삶의 숙성도 높습니다. 공화파 B0 · 민주파 A+ · 사회파 A0. 대중재미 · 영화기술 · 삶의 숙성 삼박자를, 이렇게 모두 잘 갖춘 영화가 그리 흔치 않습니다. 2~3년에 한 편?, 5년에 한 편? 아무튼 [배트맨, 다크 나이트]이래로 처음 인 듯하다. 온 가족이 함께 ‘영화관’에서 보시기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