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벌] [평양성] 전라도 경상도 북조선!
[황산벌] [평양성] 전라도 경상도 북조선!
  • 김영주
  • 승인 2011.01.31 0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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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은 [황산벌] [라디오 스타] [왕의 남자]로 쭈욱 오르막길을 걷다가, [즐거운 인생] [님은 먼 곳에]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 내리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그래선지 그는 “[평양성]을 흥행하지 못하면 상업영화에서 은퇴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대중재미가 B+쯤 되니까 흥행하지 못할 바도 없지만, [황산벌]맛이 변함없이 그대로 이어지는지라 식상할 수도 있겠다. 백제와 신라의 싸움에서 신라와 고구려의 싸움으로 바뀌었다는 것 말고는, 영화를 끌고 가는 스타일이나 분위기가 거의 그대로이고 작품수준도 엇비슷하다. 둘 중에 하나만 보면 되지, 둘 다 볼 껀 없겠다. 그러하매 [황산벌]과 [평양성]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낱낱이 비교해서 말하는 건, 쟁쟁한 논평이라기보다는 잡다한 수다이리라.

[라디오 스타]말고는 그의 작품을 그리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못 만든 영화도 아니고 재미없지도 않으며, 서민에 깊은 애정이 있고 독특한 기발함도 있는데, 왜 그럴까? 여기저기에서 허전하고 구멍나고 부족하다. 대중재미 · 영화기술 · 삶의 숙성, 모든 게 어중간하다. 그래도 [황산벌]에 300만 관객이 모인 것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예민하면서도 쉬이 터놓고 말하지 못하는 ‘전라도와 경상도’의 갈등을 앞세워서 패러디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라도와 경상도 그 어느 쪽에서도 쌍심지 세우지 않을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며 씁쓸하면서도 통쾌하게 웃겨주기 때문인 것 같다.( 전라도 사투리와 욕설이 질펀하긴 하지만 많이 어색했다. 전라도 말맛을 제대로 표현해내는 감독이 왜 이리도 없을까? 영화나 드라마에 가짜 전라도 말이 너무 짜증난다. 언젠가는 자세하게 이야기해 보련다. ) [왕의 남자]는 연산군에 얽힌 아기자기한 재미가 없지 않았지만, 이준기의 여성스런 미소와 맵시가 1000만 관객에 1등공신이라고 본다. 그럼에도 난 그의 영화들에 반하지는 못했다.

<예고편>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54533&videoId=29653

[황산벌]과 [평양성]이 겉으로 말하는 키워드는 ‘전쟁반대’이다. 그러나 속으로 말하고 싶은 키워드는 전라도 · 경상도 · 북조선의 갈등이다. 우리나라에는 전라도와 경상도 · 남한과 북한 · 종교와 종교라는 거대한 ‘집단 이기주의’가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고, 그 위에 학맥과 학벌 · 정당과 정당이라는 ‘집단 이기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지금 우리 세상은 ‘극렬한 경쟁’ 속에 자기 이익을 위한 ‘집단 이기주의’가 자심하다. 개인 이기주의는 자신의 끊임없는 성찰을 거듭하면 얼마쯤 개선할 수가 있지만, ‘집단 이기주의’가 한 번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면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막을 수 없다. 그 집단 이기주의로 혜택을 보는 세력이 세상의 주도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대체 방법이 없다. 인간이라는 종자 자체가 그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 같다. 한숨 밖에 나오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를 경험하면서 가슴에 멍이 들어 아예 관심을 꺼버리는 쪽으로 맘을 다독이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왕 나온 말이라 또 말하게 된다.

‘경상도 집단이기주의’가 우리나라 ‘모든 악의 뿌리’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그 ‘뜨거운 감자’를 제대로 다룰 사람이 그 누구이겠나? 강준만이 [김대중 죽이기] [전라도 죽이기]로 그 정곡을 찔러 박치기해 보았지만, 그 노회한 놈들의 無대응 작전에 스르르 녹아 사라지고 있다. 안타깝다. 그런데 이 안타까움과는 다른 각도에서 안타까운 사람들이 있다. 노무현과 유시민을 비롯한 ‘경상도 민주화세력’과 민노당 사람들이다. 경상도 민주화세력은 ‘악마의 꿀단지’에 눈이 먼 고향땅 사람들을 구출해내야 한다는 구세주 같은 사명감에만 사로 잡혀서 그 꿀단지의 날파리로 멸시당하는 ‘전라도의 피눈물’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그들의 인간적인 애향심을 이해 못하는 바 아니지만, 우리의 말라비틀어진 피눈물을 침 발라 지우면서 그들을 밀어준 간곡한 심정을 “한나라당 싫어서 노무현 찍었다.”며 그리도 냉정하게 정색을 하면, 도대체 우리 전라도가 무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찍어주면 찍어주었다고 먼지 털어 꼬투리 잡고, 안 찍어주면 안 찍어준다고 삿대질함서 악담을 퍼부어대니 말이다. “그래, 우리는 한나라당 싫어서 노무현 찍었다. 그러나 민주당 경선때 이인제를 찍을 수도 있었는데 노무현을 찍었다.  왜 그걸 몰라?"  그걸 그들이 몰라서가 아니다.  그들은 '전라도의 피눈물'을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 전라도가 '경상도 괜찮은 놈'을 선택했다는 '놀라운 모습'에 우릴 존경한 게 아니라 즈글들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부산 '초원 복집'사건에 반성한 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남이가!"하면서 더 똘똘 뭉쳐버린 것과 같은 심리구조이다. )  더구나 '경상도 민주화 세력'은 그 자존심의 근거가 '순결한 이상'에 기대고 있기 때문에, 조그만 상처에도 민감한데 그렇게 큰 상처를 받았으니 오죽하겠나!  그래서 이인제를 찍지 않고 노무현을 찍은 걸 눈감아 버리고, "한나라당 싫어서 노무현 찍었다."고 전라도 먼지를 털어 자기합리화의 핑계꺼리를 찾은 것이다.  그들은 애당초 '전라도의 민주화운동'을 '김대중 메시아의 광신'이거나 '피해의식에 찌든 오기심뽀'쯤으로 해석하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그래, 느그들은 한나라당 미우니 괜찮은 전라도놈을 순정으로 열광하거나 찍을 수 있냐?” 민주당과 김대중을, 노무현은 항상 고개 돌리며 떨떠름해 했고, 유시민은 항상 야멸차게 찍어발랐다. 정권을 잡기 전엔, 현실은 없고 이상만 있었다. 정권을 잡은 뒤엔, 현실과 타협해야 할 것은 이상으로 밀어 붙였고, 이상으로 밀어 붙어야 할 것은 현실과 타협했다. 이렇게 ‘현실과 이상’을 엉뚱하게 끌고 갈지 전혀 몰랐다. 나도 민주당을 싫어하지만, 노무현과 유시민의 그런 모습엔 결코 동조하지 못한다. 왜냐고? 이 좁은 마당에서 한 두 마디로 짧게 말하기엔 오해의 소지가 있다. 노무현과 유시민 그리고 민노당 이야기는 다른 마당에서 할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황산벌]과 [평양성]은 그 지독한 ‘경상도 집단이기주의’에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는 냄새가 없지 않다. 그러나 코믹한 사투리와 욕설의 한바탕 웃음바다로 그 뜨거운 감자를 식혀가면서 兩非 쪽이라기보다는 兩是 쪽으로 물꼬를 틀어서 은근 슬쩍 구렁이 담 넘어가버린다. 고구려 신라 백제 모두에게 선과 악을 함께 뒤섞어 넣어서, 전라도 경상도 북조선 그 어느 쪽을 일방적으로 좋거나 나쁘게 몰아가지 않으면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이준익 감독은 서로 앙심을 품고 으르렁대는 이 진흙탕 개판에 블랙코메디로 똥침을 날리려는 순정한 심정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 “전쟁 반대!”라는 구호를 외치며. 그러나 그의 작품은 모든 게 어중간하다. 삐딱하지만 여리고, 재기발랄하지만 숙성 깊지 못하다. 그래서 그 메시지가 어정쩡하다. 좀 더 확실하게 각을 잡아 뚝심있게 내지르는 맛을 보여주면 좋겠다. * 대중재미 B+( 내 재미 B0 ), * 영화기술 B0, * 삶의 숙성 : 공화파 C0 · 민주파 B+ · 사회파 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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