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OOO하고 XXX하다!"
"전쟁은 OOO하고 XXX하다!"
  • 김영주영화칼럼니스트
  • 승인 2011.01.29 1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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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번만 손잡자 카이~

 

 
이준익 감독은 [황산벌] [라디오 스타] [왕의 남자]로 쭈욱 오르막길을 걷다가, [즐거운 인생] [님은 먼 곳에]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 내리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그래선지 그는 “[평양성]을 흥행하지 못하면 상업영화에서 은퇴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대중재미가 B+쯤 되니까 흥행하지 못할 바도 없지만, [황산벌]맛이 변함없이 그대로 이어지는지라 식상할 수도 있겠다. 백제와 신라의 싸움에서 신라와 고구려의 싸움으로 바뀌었다는 것 말고는, 영화를 끌고 가는 스타일이나 분위기가 거의 그대로이고 작품수준도 엇비슷하다. 둘 중에 하나만 보면 되지, 둘 다 볼 껀 없겠다. 그러하매 [황산벌]과 [평양성]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낱낱이 비교해서 말하는 건, 쟁쟁한 논평이라기보다는 잡다한 수다이리라.

[라디오 스타]말고는 그의 작품을 그리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못 만든 영화도 아니고 재미없지도 않으며, 서민에 깊은 애정이 있고 독특한 기발함도 있는데, 왜 그럴까? 여기저기에서 허전하고 구멍나고 부족하다. 대중재미 · 영화기술 · 삶의 숙성, 모든 게 어중간하다. 그래도 [황산벌]에 300만 관객이 모인 것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예민하면서도 쉬이 터놓고 말하지 못하는 ‘전라도와 경상도’의 갈등을 앞세워서 패러디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라도와 경상도 그 어느 쪽에서도 쌍심지 세우지 않을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며 씁쓸하면서도 통쾌하게 웃겨주기 때문인 것 같다.( 전라도 사투리와 욕설이 질펀하긴 하지만 많이 어색했다. 전라도 말맛을 제대로 표현해내는 감독이 왜 이리도 없을까? 영화나 드라마에 가짜 전라도 말이 너무 짜증난다. 언젠가는 자세하게 이야기해 보련다. ) [왕의 남자]는 연산군에 얽힌 아기자기한 재미가 없지 않았지만, 이준기의 여성스런 미소와 맵시가 1000만 관객에 1등공신이라고 본다. 그럼에도 난 그의 영화들에 반하지는 못했다.

<예고편>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54533&videoId=29653

[황산벌]과 [평양성]이 겉으로 말하는 키워드는 ‘전쟁반대’이다. 그러나 속으로 말하고 싶은 키워드는 전라도 · 경상도 · 북조선의 갈등이다. 우리나라에는 전라도와 경상도 · 남한과 북한 · 종교와 종교라는 거대한 ‘집단 이기주의’가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고, 그 위에 학맥과 학벌 · 정당과 정당이라는 ‘집단 이기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지금 우리 세상은 ‘극렬한 경쟁’ 속에 자기 이익을 위한 ‘집단 이기주의’가 자심하다. 개인 이기주의는 자신의 끊임없는 성찰을 거듭하면 얼마쯤 개선할 수가 있지만, ‘집단 이기주의’가 한 번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면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막을 수 없다. 그 집단 이기주의로 혜택을 보는 세력이 세상의 주도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대체 방법이 없다. 인간이라는 종자 자체가 그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 같다. 한숨 밖에 나오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를 경험하면서 가슴에 멍이 들어 아예 관심을 꺼버리는 쪽으로 맘을 다독이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왕 나온 말이라 또 말하게 된다.

‘경상도 집단이기주의’가 우리나라 ‘모든 악의 뿌리’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그 ‘뜨거운 감자’를 제대로 다룰 사람이 그 누구이겠나? 강준만이 [김대중 죽이기] [전라도 죽이기]로 그 정곡을 찔러 박치기해 보았지만, 그 노회한 놈들의 無대응 작전에 스르르 녹아 사라지고 있다. 안타깝다. 그런데 이 안타까움과는 다른 각도에서 안타까운 사람들이 있다. 노무현과 유시민을 비롯한 ‘경상도 민주화세력’과 민노당 사람들이다. 경상도 민주화세력은 ‘악마의 꿀단지’에 눈이 먼 고향땅 사람들을 구출해내야 한다는 구세주 같은 사명감에만 사로 잡혀서 그 꿀단지의 똥파리로 멸시당하는 ‘전라도의 피눈물’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그들의 인간적인 애향심을 이해 못하는 바 아니지만, 우리의 말라비틀어진 피눈물을 침 발라 지우면서 그들을 밀어준 간곡한 심정을 “한나라당 싫어서 노무현 찍었다.”며 그리도 냉철하게 정색을 하면, 도대체 우리 전라도가 무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찍어주면 찍어주었다고 먼지 털어 꼬투리 잡고, 안 찍어주면 안 찍어준다고 삿대질함서 악담을 퍼부어대니 말이다. “그래, 우리는 한나라당 싫어서 노무현 찍었다. 그래, 느그들은 한나라당 미우니 괜찮은 전라도놈을 순정으로 열광하거나 찍을 수 있냐?” 민주당과 김대중을, 노무현은 항상 고개 돌리며 떨떠름해 했고, 유시민은 항상 야멸차게 찍어발랐다. 정권을 잡기 전엔, 현실은 없고 이상만 있었다. 정권을 잡은 뒤엔, 현실과 타협해야 할 것은 이상으로 밀어 붙였고, 이상으로 밀어 붙어야 할 것은 현실과 타협했다. 이렇게 ‘현실과 이상’을 엉뚱하게 끌고 갈지 전혀 몰랐다. 나도 민주당을 싫어하지만, 노무현과 유시민의 그런 모습엔 결코 동조하지 못한다. 왜냐고? 이 좁은 마당에서 한 두 마디로 짧게 말하기엔 오해의 소지가 있다. 노무현과 유시민 그리고 민노당 이야기는 다른 마당에서 할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황산벌]과 [평양성]은 그 지독한 ‘경상도 집단이기주의’에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는 냄새가 없지 않다. 그러나 코믹한 사투리와 욕설의 한바탕 웃음바다로 그 뜨거운 감자를 식혀가면서 兩非 쪽이라기보다는 兩是 쪽으로 물꼬를 틀어서 은근 슬쩍 구렁이 담 넘어가버린다. 고구려 신라 백제 모두에게 선과 악을 함께 뒤섞어 넣어서, 전라도 경상도 북조선 그 어느 쪽을 일방적으로 좋거나 나쁘게 몰아가지 않으면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이준익 감독은 서로 앙심을 품고 으르렁대는 이 진흙탕 개판에 블랙코메디로 똥침을 날리려는 순정한 심정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 “전쟁 반대!”라는 구호를 외치며. 그러나 그의 작품은 모든 게 어중간하다. 삐딱하지만 여리고, 재기발랄하지만 숙성 깊지 못하다. 그래서 그 메시지가 어정쩡하다. 좀 더 확실하게 각을 잡아 뚝심있게 내지르는 맛을 보여주면 좋겠다.
* 대중재미 B+( 내 재미 B0 ), * 영화기술 B0, * 삶의 숙성 : 공화파 C0 · 민주파 B+ · 사회파 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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