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강 문수선원에서
영산강 문수선원에서
  • 정의행 시민기자
  • 승인 2010.12.04 12: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민기자 단상]

▲ 해질 무렵 문수선원에서 바라본 영산강과 승촌보 공사현장. ⓒ김향득 객원기자
영산강 승촌보 공사현장 근처에 불교계가 개설한 영산강 문수선원에서 정진하던 어느 날이었다. 일흔이 넘어 보이는 마을 어르신 한 분이 술이 거나하신 모습으로 찾아오셨다.

컨테이너 선원을 열기 전 천막 선원 시절 어떤 주민에게 심한 방해를 받은 적이 있었기에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만, 어르신께 인사하며 들어오시라고 말씀드렸다. 어르신은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것 같더니 그냥 발길을 돌리셨다. 그러나 잠시 후 다시 돌아오시더니 선원에 들어오셨다. 

어르신은 다짜고짜 당신이 이 마을에서 살아오신 이야기를 꺼내셨다. 예전에는 마을 옆으로 흐르는 영산강이 맑아 다슬기도 잡고 고기도 잡고 미역도 감으며 놀았는데, 10여 년 전부터 강이 폐수 따위로 오염되어 버렸다는 이야기도 덧붙이셨다. 4대강 사업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셨지만, 오염된 강을 이대로 둘 수는 없지 않느냐는 뜻인 것 같았다.  

그렇다. 오염된 강은 분명히 살려야 한다. 그러나 ‘4대강 살리기’를 내세운 4대강 사업은 어떠한가. 포크레인으로 둔치를 파헤치고 습지를 없애면서 강을 살릴 수 있을까? 강심을 운하 모양으로 준설하고 강 가운데 ‘보’라는 이름의 높다란 댐을 만들어 강의 흐름을 막으면서 과연 강을 살릴 수 있을까? 상류와 지천에서 흘러드는 각종 폐수와 생활하수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서 강을 살릴 수 있을까?

선원에 올 때마다 마을 여기저기서 만나는 어르신들도 4대강 사업으로 영산강이 살아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고 계셨지만, “나라에서 하는 일을 어떻게 해볼 수 있겠느냐”는 식의 태도를 취하고 계셨다.

선원에 찾아오신 그 어르신도 70평생 농사지어온 땅을 “이제 내 뒤를 이어 농사지을 자식들도 없으니 보상이라도 받고 팔 수 밖에 없지 않느냐”고 하셨다. “쌀이 남아도는데도 예전처럼 북한 동포에게 보내지도 않고 생산비를 보장해주지도 않는 정부의 무대책 때문에 쌀값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더 농사를 지을 수 있겠느냐”며 한숨을 내쉬셨다.

그렇다. 문제는 거기에도 있었다. 신자유주의 시장경제를 떠받드는 정권의 농업포기 정책으로 인해 농사지을 의욕도 희망도 잃어버린 농민들에게서 4대강 사업은 농토를 앗아가고 있었다. 4대강 사업은 4대강 주변의 어마어마한 농토를 ‘수변 생태공원’이니 ‘습지복원’이니 하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수용하고, 오염된 준설토 야적장으로 수용하였다. 이것은 이제까지 우리 국민을 먹여살려온 농토와 농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영산강 사업의 각종 공사는 제대로 된 환경영향 평가는커녕, 평생 영산강과 함께 살아온 강마을 주민들과는 아무런 상의 없이 ‘나라에서 하는’ 국책사업으로 밀어붙였다. 오랜 세월 농로로 사용해온 마을 앞의 다리라도 살려달라는 주민들의 의견조차 묵살한 채, 마을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높다란 보 위에 건설될 위험한 차도를 쓰라고 했다 한다.

앞으로 농민들은 아찔한 보 위를 오가며, 그 옆에 들어선다는 위락시설에서 레저를 즐기고 유람선을 타는 부자들의 노는 꼴을 봐야만 할 테니 얼마나 큰 위화감을 느끼게 될까.  

이렇듯 강마을 농민들의 마음을 참담하게 만드는 4대강 사업을 보면 한숨을 넘어 분노가 솟구친다. 하지만 훨씬 더 속상하실 마을 어르신의 마음을 헤아리며, 얼마 전 공사현장 근처에서 발견된 멸종위기동물인 어린 삵의 지친 모습을 떠올리며 속으로 간절히 기원한다.

강마을 농민들이 4대강 사업으로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를. 물신주의와 신자유주의의 탐욕이 독재의 망령과 함께 설쳐대는 시대에 4대 강과 뭇 생명들이 부디 살아남기를. 지금이라도 거짓과 탐욕으로 얼룩진 4대 강 사업의 삽질이 당장 멈추기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