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용동 원림에서
부용동 원림에서
  • 전고필
  • 승인 2010.10.14 14: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남 완도군 보길면

▲ 보옥리 해변의 공룡알과 같은 갯돌.
가을 바람이 불어온다. 때론 서쪽에서 때론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게는 따스한 훈짐이 묻어난다. 그 바람에는 색감이 물들어 있다. 오곡백과를 물들게 하는 황금빛이거나, 붉은 단풍의 색깔이거나 홍시의 색감이 배어있다. 그 색감 훌훌 버리고 청록빛의 바다를 헤쳐갔다. 닻 들어라 닻 들어라…보길도 가는 배가 간다.

그 배의 출항은 땅의 끝이었다. 땅끝에서 떠나는 보길도 행은 차와 사람을 함께 챙겨 들어가는 배였다. 그 도항선을 타고 바다에서 땅으로 발을 디딜 수 있는 곳은 갈꽃의 섬, 노화도다. 노화에서 다시 차로 10여분을 지나니 두 개의 다리가 나타난다. 그 다리 서지 않았을 때 왔으니 벌써 5년이 훌쩍 지나버린 세월이었음을 느끼게 된다.

가야할 곳을 망설인다. 우암 송시열의 정갈한 마음이 담긴 글씐 바위가 있고, 가는 모래로 사각거리는 중리해수욕장과 작은 조약돌로 가득한 예송해수욕장이 유혹하고, 공룡의 알처럼 커다란 보물같은 돌들이 자글거리는 보옥리 해변이 있다.

하지만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사방에 가득 찬 전복집이었다. 완도가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골프선수 최경주가 그 건강함의 비결이 마치 전복이 키워낸 것처럼 광고를 보냈던 것이 생각났는데 전복 양식장은 사뭇 많아서 이제는 뱃길에 양식장을 피해 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가득했던 것이다.

그런 탓인지 사방의 식당들이 전복판매와 회, 죽, 구이집으로 다 전업을 한 듯 보였다. 전복으로 힘을 비축하고 다시 길 위에 섰다. 몇몇의 대학생들이 자전거를 이용해서 섬을 일주하고 있고 나는 가급적 걸어도 좋을 그 길을 차에 의지하여 돌아본다.

고산 윤선도가 제주로 가는 길에 들려 이 섬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안착을 했다는 땅, 그 부용동에 들어갔다. 연꽃의 봉우리처럼 봉긋 솟아있는 그야말로 연화부수형의 땅에 그는 집터를 잡고 유희의 공간과 강학의 공간, 사유의 공간을 조성했다. 그가 남긴 유적들은 대부분이 시간의 흐름에 소멸하였지만 자연의 것들은 세월의 풍상과 함께 고풍스럽게 그대로 현존하였다.

▲ 세연정.
그가 삶을 영위했던 공간 중에 가장 중심 역할을 했던 곳이 바로 세연정이었다. 인공의 낙원과 같은 그곳에는 저 위쪽 격자봉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잠시 가두어 두고 세 곳에 단을 쌓아 두었다. 그 단 위에서는 무희들이 춤을 추고, 세연정의 주인은 그들의 춤사위를 물그림자 속에서 감상하였다고 한다.

물이 모였다가 줄어드는 곳에서는 보를 축조하였다. 그 보의 이름이 판석보이니 판자처럼 생긴 돌판을 이어서 붙였다는 증거겠다. 건물들 모두 쓰러지고 다시 만들었지만 보와 각각의 바위와 단들은 건재했으며, 그중 판석보가 지닌 의미는 이곳에 폭포가 없어 우레와 같은 물소리를 듣지 못함을 보로 대신했다는 해석을 가능케 했다. 하여 자연의 환경 위에 인간의 겸손함과 과학을 접목함으로서 자연과 인공의 합일을 이루며 더욱 빛나는 공간으로 이곳을 치환하였던 터였다.

계류에 조성했다는 점에서 소쇄원과 유사하지만 세연정이 지닌 스케일은 면적에서나 공간구성면에서 훨씬 장대했다. 그로 인해 윤선도는 조정의 오해를 불러오기도 했고, 깐깐한 그의 성품 탓에 왕에게 직소를 올림으로서 조정의 미움을 타기도해서 몇 번의 위기를 만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의 거처는 안전했다. 안위를 구하기 위한 처소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지닌 강직한 성품으로 볼 때 결코 세연정이 편해 보이지는 않았다.

바람처럼 때론 이리로 저리로 흘러가는 인생이 아니라 한평생을 그가 지닌 삶의 철학을 관철하며 살아왔던 이 인지라 순탄하지 못한 삶의 한평생은 유배와 귀양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어부사시사를 듣다보면 삶의 치열함이 아니라 관조와 달관의 경지를 체험하게 한다.

세연정을 나와 오른편 산위의 동천석실을 바라본다. 신선의 세계라 하는 그곳에 돌 사이 작은 집을 짓고 작은 연못과 우물을 만들고 담을 만들어 세상을 바라보았던 윤선도의 심상을 미루어 짐작하고 더 깊이 해변을 탔다. 공룡처럼 돌들이 둥그스럼하게 파도에 씻겨온 곳, 그곳의 돌들은 모두 평안하여 보였다.

▲ 보길도의 노을.
아름다운 보길도의 노을을 등 뒤로 하고 하룻밤을 섬에서 보냈다. 섬의 밤이 깊어지자 별들이 바다에 떠오르고 땅에 접한 불빛들은 하나씩 점멸해 갔다. 왁자했던 그곳 선창의 기억들은 이제 서서히 점멸해 지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삶의 풍경이 등장하고 있었다.

적요한 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서 호명했던 공간들을 둘러보았다. 항구에는 이전보다 더 많은 배들이 요란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포구의 선착장은 훨씬 더 넓혀져 있었다. 그리고 예송리의 아름다운 조약돌은 파도가 다른 포구로 모셔가고 조약돌을 잃어버린 해수욕장은 맨흙이 드러나고 있었다.

자글거리는 조약돌의 소리를 듣고 시상을 주었던 아름다운 여행지로 꼽았던 이원규 시인이 다시 찾아오면 무슨 말을 할까 궁금해지고, 이 섬을 떠나 이 땅의 섬을 헤집고 있는 강제윤 선생님은 고향의 변해버린 풍경 앞에서 얼마나 망연자실해 할지, 고산 윤선도보다 그들의 인상이 더 궁금했다.

▲ 갯돌과 보족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