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자傳], 변학도 출두요~!^0^!
[방자傳], 변학도 출두요~!^0^!
  • 김영주
  • 승인 2010.10.03 07:4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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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맞이로 ‘밀린 영화’를 몇 개 보았다. [이끼] [하녀] [방자전]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끼]는 무거운 주제를 힘들게 밀고 가면서 비비꼬여든 善과 惡을 가름하기 어려워서, 만화 원작을 보고나서 이야기하기로 했다. [하녀]는 1957년[하녀]와 비교해서 이야기하고픈 맘이 없지 않았지만, 임상수 감독의 비릿한 삐딱함에 휩쓸려 나까지 함께 삐딱해지는 게 싫어서, 변학도가 유별나게 돋보이는 [방자전]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김대우 감독은 [결혼이야기] [해적] [용병 이반] [정사] [송어] [반칙왕] [로드 무비] [스캔들]에서 다양한 무늬결로 줄곧 각본만 쓰다가, [스캔들]로 무슨 변고가 있었는지 그에 엇비슷한 [음란서생]과 이번 [방자전]으로 감독 자리를 꿰여찼다. [음란서생]에 [스캔들]을 흉내 내는 초짜 냄새가 물씬 났다. “작가로써 나를 잊어 달라.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신인 감독일 뿐이다.” [방자전]을 만들었다기에, “또 그 음란코드야?” 투덜거렸다.

스토리의 줄기는 단순한 음란코드가 아니다.  우리가 아는 '춘향전'은 가짜란다.  몽룡의 정의 · 방자의 충성 · 춘향의 정절이라는 [춘향전]의 고지식한 교훈을 과감히 무너뜨리고, 오늘날 세태의 리얼러티를 살려서 풍자했다. 음흉한 부자집 아들 몽룡과 반듯한 보디가드 방자 사이에 방황하는 백여우 술집여자 춘향이. 그 분위기를 비장하게 잡아갈까? 코믹하게 잡아갈까? 난 비장하게 가고 싶은데, 김대우는 코믹하게 갔다. 초반은 이미 보았던 [음란서생] 그대로였다. 그런데 중반에 변학도가 불쑥 튀어나와 썰렁 개그로 뚝뚝 부러졌다.

<예고편>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45087&videoId=27669&t__nil_main_video=thumbnail

춘향이가 유난히 거슬린다. 요염하면서도 이중플레이하는 팜므 파탈이라기보다는 양아치의 달콤한 꼼수에 빠져 비행소녀로 흘러든 철부지 같다. 맵씨와 이미지가 팜므 파탈을 감당하기엔 벅차다. 게다가 감독의 에로장면 연출력이 [미인도]나 [쌍화점]을 흉내 내는 싸구려 수준을 넘지 못하니, 춘향이 벗은 몸이 더욱 불쌍하다. 방자 김주혁과 몽룡 유승범이 연기를 못했다고 할 순 없지만 그리 썩 맘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미술 의상 소품의 색감이나 조형감이 [음란서생]보다는 덜 요란하지만, ( [스캔들]말고는 ) 그 동안의 사극 영화가 지나치게 호사스럽고 야살스러워서 오히려 천박해 보이는 흐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觀淫이 서린 눈요기나 즐기면서 그저 그러려니 바라보았다.



그런데 영화의 중반 쯤, 몽룡이가 과거급제하고 남원으로 가는 주막집에서 어느 얼간한 놈씨와 마주 앉았다. 그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불쑥 내뱉었다. 술잔을 내려놓으며 “지는 인생 목표가 뚜렷해유~!”, 주먹 쥐고 손바닥에 떡을 치며 “여자랑 이거, 이거 하는 거!” 몽룡이가 빈정대니까, 또 한마디 불쑥 던진다. “고을 수령이 되믄, 고을 여자들 다 따먹을 수 있땀시유~. 그 말만 믿고 어럽게 과거공부만 했시유~!” 어리버리한 무표정에 어눌하게 더듬거리는 말투로 뚝뚝 분질러 무심코 내던지는 썰렁 개그가, 느닷없이 뒤통수를 후려쳤다. 얼뻥한 충청도 사투리에 서울 비린내가 시큼 섞여들었다. “이런 건 예민하니까, 건들지 말래짜나!” 놋쇠주전자로 방자를 여지없이 내려치는 장면은 가히 압권이다. 송새벽이 [음란서생]의 꿀꿀하고 느끼한 음담패설을 깨고 홰치며 외쳤다. “변학도, 출두요~!^0^!” 그가 출두할 때마다, 어찌 해야 할지 당혹스럽다. 코메디도 아니고, 개그도 아니고, 패러디도 아니고, 키치도 아니다. 그냥 막가는 저질이다. 그 저질을 향해 박수!!!

B급 영화 · B급 패션 · B급 유머 · · · 에 ‘B급’이라는 말, 군대 보급품의 등급에서 흘러나온 듯하다. 난 ABCDF라는 5등급으로 말해 버릇해서, B급이라는 낱말의 그런 쓰임새가 불편하다. 김대우는 세태풍자에 집착한다. 그게 상당히 무거운 건데, 코메디로 끌고 가려니 더욱 힘들다. 풍자하려는 바는 A급 B급인데, 그걸 코믹으로 엮어내는 재료는 D급 F급이다. A급 B급을 D급 F급으로 잘 엮어내려면, 삶의 내공이 A급이어야 하고 그 솜씨가 B급은 되어주어야 하는데, 아직 그 내공과 솜씨가 A급이나 B급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송새벽의 변학도에서 그 가능성을 보았다.  송새벽의 연기력이 높은 건지 감독이 잘 뽑아낸 건지, 아직 잘 모르겠다.  앞으로를 기대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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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가지있어 2010-10-05 09:28:50
송새벽ㅋㅋ
저도 그 사람보고 뻥 터졌어요
어이없는디 웃겨,, 글고 얼뻥한 디 그럼시롱 사람이 있어보이고
암튼 재밌는 사람이어요
"얼뻥한 충청도 사투리에 서울 비린내가 시큼 섞여들었다" 이건 정말 적확한 표현이에요.
님의 표현력이 쩝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