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를 보았다]의 잔혹, 표현의 자유?
[악마를 보았다]의 잔혹, 표현의 자유?
  • 김영주
  • 승인 2010.09.11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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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밑 아리에티], 가녀리도록 곱디고운 영화이지만 싱겁고 허전했다. 내 최고의 우상, 미야자끼 하야오 그리고 지브리 스튜디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허전함이 느껴지더니, [벼랑위의 포뇨]와 이번 [마루밑 아리에티]에선 실망했다. 너무 좋아했던 만큼 너무 안타깝다. 지브리 스튜디오가 이대로 스러지려나? 아프다. 많이 아프다. 그에게 ‘안녕!’이라고 말하기엔, 그 사랑이 너무 깊다. 다음 한 작품만 더 기다려보겠다.
 
<예고편>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55940&videoId=28703&t__nil_VideoList=thumbnail

난 ‘영화평론가’의 말과 글을 신뢰하지 않는다. 영화기자의 글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Finching의 Films Found'와 한동진의 ‘적정 관람료’말고는 영화평론이나 영화기사에 거의 관심을 주지 않는다. 김영진이라는 영화평론가가 있다. 그의 평론을 좋아하지도 않고 싫어하지도 않아서, 그의 글을 기대하지도 않지만 무시하지도 않는다. 그가 한겨레신문 9월4일 칼럼에 “한국영화 ‘잔혹함’보다 중요한 문제”를 썼다. 그 글의 요지는 두 가지, 하나는 “검열이 다시 이루어지고 있는데, 아무도 그걸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또 하나는 “우리 영화투자자들이 지나치게 유행에 휩쓸린다.” 그의 요지에 동감하면서도, ‘표현의 자유’에서 조금 다르다.



난 볼테르의 이 말을 매우 좋아한다. “난 당신과 의견이 다르다. 그러나 당신이 나와 다른 의견을 말할 자유를 위하여 목숨 바쳐 싸우겠다.” 난, 목숨 바쳐 싸우지는 못하겠고, 나름대로 많이 노력한다. 세상사에 옳고 그름은 있다. 그러나 그걸 선명하게 가름해 내기가 어렵다. 특히 대립하는 둘, 당사자가 그 자리에서 당장 결판을 내려하는 건 참 어리석은 일이다. 옳고 그름은, 둘 사이의 결투에서 당장 나오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반응 그리고 긴 세월에 걸쳐서 어렴풋이 겨우 나타난다. 그래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보다는 ‘표현의 자유’가 더욱 소중하다. “나와 다른 것을 나쁜 것으로 몰아치려는 맘을 삼가야 한다.” 그런데 실제 현실에선 그 ‘표현의 자유’가 여간 난감하지 않을 때가 있다. [악마를 보았다]처럼 그 악마스러움이 너무나 선명하면, 그 ‘표현의 자유’라는 게 더욱 난감해진다. 아무리 봐주려 해도, 전두환을 봐 줄 수는 없지 않는가!

서양에선 플라톤부터 칸트 헤겔 마르크스에 이르기까지 ‘남자 빛 이성 일’이라는 아폴로 영역을 높여 받들었고 ‘여자 어둠 감성 놀이’라는 디오니소스 영역을 낮추어 짓밟았다. 니체에서 비롯된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에 분노하여 ‘여자 어둠 감성 놀이’를 다시 살려내려고 “모든 금기를 금지하라!”며 ‘몸 자연 여성 인종’을 해방하면서 그 ‘표현의 자유’를 드높이 외쳤다. 그래서 우리는 피카소나 이사도라 덩컨부터 비틀즈 신중현 지미 헨드릭스 그리고 백남준과 [올드 보이]를 만나게 되었다.


 
인류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 ‘남자 빛 이성 일’은 ‘여자 어둠 감성 놀이’를 윤리라는 감옥에 가두어 숨 막히도록 억압했고, 국가와 종교는 질서와 순결을 앞세워 ‘극악스런 악행’을 버젓이 저질렀다. 그래서 난 68혁명에 동조하기 시작했고 포스트모더니스트가 되어갔다. 그 어떤 유행에 취해 흔들거렸다. 그러다가 우연히 마주친 ‘잔혹한 폭행과 난잡한 섹스’에 깜짝 놀랐다. 사시나무처럼 떨었고 넌더리를 쳤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았더니, 디오니소스의 뿌리에도 아폴로의 뿌리와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대립존재론’이 박혀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동양문명이 그 대안이라고 할 수도 없다. ) 그래서 헤비메탈과 펑크락이 지나치다고 말하기 시작했고, 현대예술에 심각한 퇴폐성이 담겨 있다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나도 사람이니까 나쁜 놈을 쳐 죽이고 싶고, 나도 남자니까 여자를 끊임없이 탐미한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우리는 여러 사람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 어떤 룰이 있어야 한다. [악마를 보았다]처럼 막무가내로 잔혹한 폭력은 나쁘다. 포르노처럼 막가는 난잡한 섹스는 나쁘다. 더구나 그걸 기대어 돈에 환장한 장사꾼으로 치달으면, 이건 막장이다. 그 막장에다가 ‘표현의 자유’를 들이대면, ‘표현의 자유’를 모독하는 것이다. 그리고 장차 ‘표현의 자유’가 설 자리를 점점 잃게 된다.

어디까지가 룰이고 어디까지가 퇴폐일까? 어디까지가 ‘표현의 자유’이고 어디까지가 막장일까? 거기에 검열이 끼어드는 것도 삼갈 일이요, 다양성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막무가내로 잔혹하고 난잡하지 않도록 삼갈 일이다. 그래서 막장으로 치닫는 작품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호도하지 않도록 삼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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