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무안군 일로읍 복용리

회산지. 너무나 유명한 저수지다. 보통 저수지의 이름은 낚시꾼이 잘 알거나 그 저수지가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나 화순의 세량지처럼 중요한 촬영지 구실을 할 때 세상에 이름을 날리는 법인데 이곳 회산지는 다르다.
일제시대에 축조된 10만여 평의 저수지를 둔, 그래서 물 걱정 없는 마을에 사는 한 분이 꿈에 백로가 노니는 모습을 보고 그 백로와 유사한 모습의 백련을 상기하고 12분의 백련을 모셔왔다고 한다. 그 12개의 백련이 저수지를 뒤덮기 시작하면서 백련지는 가뭇없는 세상 사람들의 시름을 잊게 해주는 이상향으로 자리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느 햇볕 뜨겁던 날 회산지를 찾았다. 아직 백련은 피지 않았고 수련들이 군생을 하고 있다. 그 사이를 누비고 있는 물새들의 모습도 환하다. 연꽃의 대가 아직 제 모습을 갖추지 않아 새들을 은폐시키기에는 이르기 때문인 탓이다.
목재로 놓아둔 데크를 따라가니 햇볕이 중천에 떠올라 모든 수련들이 꽃을 활짝 피워냈다. 언제부터인가 수련을 ‘물속의 연꽃’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장흥에서 집필 활동을 하고 계시는 한승원 선생님의 ‘해산토굴’에 들렸을 때 왜 수련인지 아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왜 그렇죠?”라고 다시 여쭈니 “이 연꽃은 밤에 잠을 자는 특성을 지닌다고 하여 잠자는 연꽃 즉, 수련이라고 합니다”는 말씀이 돌아왔다.
화사하게 군집을 이루며 물 위에 떠 있는 수련을 보러 참 많은 사람들이 왔다. 이곳저곳의 원두막에는 고기 굽는 가족들과 함께 놀러온 직장인들의 왁작거리는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그 틈새에도 물속에서는 모든 생물들의 분주한 하루가 움직이고 있다. 아직 등에 알을 이고 있는 물자라들이 고개를 내밀고, 우렁이는 자기 행로의 괘적을 그대로 진흙 속에 그려 넣고 있다. 그 사이에 노랗게 핀 노랑어리연꽃도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수면 위에 제 얼굴을 담아낸다. 부평초와 같은 인생이라고 했던 것처럼 뿌리를 활착하지 않는 개구리밥은 숭숭거리면서도 우표처럼 물 위에 달라붙어 있다.
물 안쪽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든 데크를 지나다 보니 징검다리가 놓여 있다. 조금이라도 수생식물을 더 가까이 보라는 배려다. 그 징검다리 바위에 분홍빛의 알들이 군집을 이룬다.
틀림없이 외래종 우렁이가 낳은 알이렸다. 친환경 우렁이농법을 위해 들여온 외국산 우렁이가 이제는 세력권을 넓혀서 죽지도 않고 확장을 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들이 이렇듯 살아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 가물치는 신이 났다. “퍽”하는 소리가 들리며 물이 요동을 치면 이것은 바로 가물치가 붕어나 다른 물고기를 잡아먹고 있다는 증표이다.

비록 백련은 피지 않았지만 물가에는 노란 꽃창포가 강물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고 여름 물새들의 낙원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수생식물과 수서곤충들이 사방을 휘젓고 다니는 세밀한 풍경이 너무나 생태적인 곳이었다.

이곳의 공무원들은 7월부터는 바빠지기 시작한다. 8월에 있을 백련 대축제에 맞춰 백련이 개화되어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이다.
늘 피던 대로 두어야 할 것은 축제라는 인위적 기간에 맞춰야 하는 죽을 맛을 알 리 없는 사람들은 잘 피었다 못 피었다 칭찬하고 원망하기도 하지만 내용을 아는 사람들은 자연은 인간의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 시간에 보여 지고 느껴지는 것에 행복해 할 뿐이다.
이 땅의 습지가 살아있음을 느껴보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사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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