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가 있는 담장’, 관리 소홀로 ‘흉물’
‘시화가 있는 담장’, 관리 소홀로 ‘흉물’
  • 나정이 시민기자
  • 승인 2010.06.14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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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마을 만들기 의미 퇴색…관리대책 절실

2000년 광주광역시 북구 문화동의 ‘아름다운 마을 만들기’는 문화동 주민자치위원회의 공모사업이었다.

이는 오래된 주택의 노후 담장에 가족들이 좋아하는 애송시, 명언 등 시화를 새겨 넣는 작업부터 시작되었다. 또한 집집마다 특색 있는 문패를 가족들이 직접 만들어 대문에 부착한 ‘정감 있는 문패 달기’ 운동도 벌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2002년 문화동 주민자치위원회는 ‘시화가 있는 문화마을’ 프로젝트를 3단계로 나누어 시행했다. 1단계는 초등학생 백일장 및 등하교길 시화 배치, 2단계는 시인들의 자필 시화 배치였다. 그리고 3단계는 문인협회 회원들이 스스로 의뢰한 것인데, 이 사업은 각화주공아파트 담장과 각화약수터 길 주변담장을 시화가 어우러진 공간으로 변화시켰다.

주민들이 스스로 계획하고 직접 조성했다는데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을 만들기’는 독창적인 마을 공동체의 자치모델로 명성을 얻어, 여러 관계자들이 현장방문을 할 정도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사업 시행 후 10년이 지난 지금, 관리 소홀과 잘못된 시민의식으로 몇 가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 주민들이 직접 추진해 모범사례로 인기를 끌었던 시화가 있는 담장이 관리부실로 곳곳이 흉물로 방치돼 있다. 그중 불법 주차된 차량들이 내뿜는 매연과 먼지도 한몫하고 있다.
시인들의 자필 시화와 백일장에 당선된 초등학생들의 시화가 걸려있는 아파트의 일부 담장 윗부분이 무너진 채 방치되어 있어 볼썽사납게 보인다. 또한 작은 액자에 넣어둔 초등학생들의 작품이 헐거워진 액자 밖으로 흘러내려 감흥을 주기보다는 아슬아슬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시화가 있는 담장’을 가로막고 있는 불법주차다. 아무래도  거리에 조성된 갤러리이다 보니 온갖 먼지와 공해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쉽게 더러워진다. 불법주차는 매연을 내뿜거나 먼지를 일으켜 이 문제들을 가중시킨다.

게다가 ‘삭막하고 지저분한 마을을 시화가 있는 아름다운 마을로 만들자’는 뜻으로 조성해놓은 담장을 가로막고 있어 본래의 의미를 퇴색시킨다.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일부러 차에서 내려 ‘시화가 있는 담장’을 구경하고 있다는 김 모(34)씨는 “인터넷에서 ‘시화가 있는 담장’에 대한 기사를 보고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주차된 차들로 가려져 있어서 몇 번 지나쳤는데도 이곳인 줄은 몰랐다”고 했다.

문화동의 ‘시화가 있는 담장’은 주민들 스스로가 조성한데다가, 공동소유가 아닌 개인소유의 단독주택이 많아서인지 그래도 관리가 잘 되어있는 편이다.

‘시화가 있는 문화마을’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담장이나 벽을 아름답게 만들자는 운동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그 결과 여러 학교나 공공건물의 밋밋했던 담장이나 벽들이 볼거리가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 군데군데 타일이 떨어져 나간 한 초등학교의 담장.
동구에 있는 모 초등학교의 담장에는 학교가 위치에 있는 마을의 유래, 아이들의 그림과 동시를 타일에 써서 붙여놓았다. 그러나 관리 소홀과 작품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타일이 완전히 떨어져나가거나, 부분이 깨진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이는 미관상 문제도 있지만, 깨진 부분이 날카롭게 돌출되어 있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날마다 딸의 등하교길을 함께한다는 박 모(36)씨는 “딸아이가 벽만 보면 손바닥으로 쓸고 다니는 버릇이 있는데, 무심코 벽을 쓸다가 깨진 타일조각에 다칠까봐 걱정이 된다”고 했다.

보다 쾌적하고 아름다운 환경을 위해서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이미 조성되어 있는 것들을 잘 보존하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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