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향한 꿈과 냉혹한 현실 사이에 놓인 절망의 늪
[시]를 향한 꿈과 냉혹한 현실 사이에 놓인 절망의 늪
  • 김영주
  • 승인 2010.05.17 1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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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영화이야기는, 영화평론이라기보다는, 영화를 소재로 하여 저의 '세상살이 이야기'를 접목시켜 펼쳐 보이는 글로서, 수없이 다양한 견해들 중에서 하나일 따름입니다.
 
▲ ⓒ네이버 영화
이창동 감독은 ‘사회파 리얼리즘’에 가장 전형적이면서 수준 높은 작품을 만든다. 대중재미 말고는 영화기술과 삶의 숙성에서 A0나 A+를 매길 정도로, 그의 사회파 리얼리즘 작품성을 매우 높이 평가한다.( 이번 영화도 대중재미는 C0. ) 그게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올랐다고 보기에,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그 높낮이를 평가할 말은 더 이상 필요 없겠다. 그러나 그의 작품만을 내 나름의 높낮이로 나열해 보면, [박하사탕] [초록 물고기] [밀양] [오아시스] [시]의 순서이다. 이번에 본 [시]가 가장 못해 보인다. 왜 그렇게 보였을까?

3년 전에 [밀양]을 이야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창동 감독의 코드는 ‘처절한 슬픔’이다. 그런데 그토록 처절한 슬픔을 담아내는 그릇이 우리가 흔히 만나는 평범한 일상생활이다. 더구나 그의 시선은 무덤덤하고 무심하다. 그 평범한 일상과 그 무심한 시선이 너무나 평범하고 무심해서, 오히려 그 처절한 슬픔을 더욱 시리고 사무치도록 돋을새긴다. 그래서 그의 슬픈 리얼리즘은 가혹하다 못해 잔인할 정도로 우리의 가슴을 파고든다. 너무 아프고 너무 무거워서 너무 힘들다. 처절한 슬픔을 넘어서서 ‘잔혹한 슬픔’이다. 이토록 잔혹한 슬픔은 아무 곳에나 박치기해 버리고 싶은 ‘자살충동’을 일으킨다. 슬픔에 예민한 쎈서를 가진 사람은 이 영화 보지 말라. 다친다.”

여자들의 예쁘고 우아하게 보이고 싶은 '원초적 욕망'이 때론 ‘허영스런 공주병’에 빠지게 하지만, 그걸 마냥 ‘감각적 사치’라고 몰아세우기엔 ‘꿈꾸는 소녀’처럼 곱고 가녀리다. 냉혹하고 비열한 현실 세상은 그 가녀리고 예쁜 꿈에 상처를 주고 폭행을 가한다. 이 영화에서, 그 가녀리고 예쁜 꿈은 여주인공이 무던히도 시를 짓고 싶어하는 갈망에 빗대어 그려지고, 냉혹하고 비열한 현실 세상은 중풍 걸린 구두쇠 노인의 뒷수발 그리고 철없는 남학생들의 성폭행과 그 아빠들의 뻔뻔한 도덕불감증에 빗대어 그려지고 있다. 여주인공의 꿈은 자기가 처한 현실에서도 시달리고 상처 받고 있지만, 성폭행 당한 소녀의 죽음으로 나타나는 세상인심과 오버랩되면서 더욱 사무치게 시달리고 상처 받는다. 오버랩에 의한 치열한 상징이다.( [마더]와 아주 비슷한 분위기가 있지만, 이 영화의 삶의 숙성과 상징성이 더 깊어 보인다.) 삶의 숙성 : 사회파 입장 A+.
 
<예고편>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47613&videoId=27639

▲ ⓒ네이버 영화
6070시절에 날리던 옛 배우 윤정희와 김희라의 숙성 깊은 연기도 상당히 좋았다.( 6070시절의 윤정희를 비롯한 여배우들 그리고 김희라를 비롯한 남배우들을 향한 추억과 로망을 말하고 싶다. 그러나 너무 길다. ) 그녀가 자기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울먹이는 모습, 그리고 죽은 소녀의 엄마를 만나 꿈꾸는 소녀 같은 모습을 보이고선 뒤돌아가면서 당황하는 모습은 압권이었다. 꾀죄죄하게 늙어버린 김희라의 모습은 어찌나 리얼한지, 그가 실제로 중풍에 걸린 게 아닐까 싶었다. 중요한 조연인 윤정희 손자 이다윗이나 자살한 소녀 엄마의 연기도 상당히 좋았고, 다른 조연들도 어디에서 그런 사람들을 모아다가 그토록 자연스런 연기를 뽑아내는지 차암 감탄스럽다. 그 동안의 작품마다, 감독이 그들에게서 리얼한 연기력을 뽑아내는 솜씨는 가히 독보적이다. 그 안목과 능력을 더 말해 무얼 하겠나, 존경스럽다.

그러나 욕심이겠지만, 윤정희 역할이 서민이니까 서민생활에 묵은 때를 보여주어야 하는데, 그걸 잡아내지 못해서 좀 서운했다. 그가 리얼리즘 쪽 영상연출과 촬영기법으로 꾸밈을 주지 않은 게, [초록 물고기] [밀양] [오아시스]에서는 작품성을 더욱 높여 주었지만, 이 영화에선 그 처절한 슬픔이 오히려 평범한 일상생활에 묻혀 맨숭맨숭해 보여서, 그녀의 슬픔이 더욱 깊이 애절해 가는 과정이 잡혀 오지 않아서 오히려 지루해보이기까지 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아~! 그 장면 그 모습이 그토록 사무쳐가는 모습이었구나!"며 나중에야 생각켰다.  배경음악을 전혀 주지 않은 건, 그가 일부러 그리 한 걸로 짐작되지만, 날 더욱 맨숭맨숭하고 지루하게 만들었다. 시 강좌 수강생들이 ‘내 인생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돌아가며 발표하는 장면이, 마치 무슨 증명사진 찍듯이 연출한 게 좀 뻘쭘스레 어색했다. 죽은 소녀의 엄마를 찾아가는 과정 그리고 여주인공이 합의금 500만원을 마련해가는 과정을, 앞의 어느 부분을 화악 줄이고 좀 더 섬세하고 깊이있게 그려갔으면, 영화가 훨씬 좋아졌을 텐데, ... .  경찰이 손자를 데려가는 장면이 단순한 건지 의미심장한 건지, 그 정황을 좀 더 알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영화기술 A0. 

 
▲ ⓒ네이버 영화

이창동 감독의 시에 대한 견해는 이 영화 전체가 말하고 있지만, ‘내 인생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돌아가며 발표하는 장면 · 여주인공이 “어떻게 해야 시를 쓸 수 있죠?”라는 집요한 물음 · 시 낭송 모임에서 형사반장의 이죽거리는 음담 너스레 ·  이 영화의 맨 끝에 잔잔하게 읊조려 읽어가는 그녀의 시 구절에서 잘 드러나 있다. 그의 견해는 김용택 시인의 견해와 출발점은 비슷하면서도 도달점은 달라 보인다. 나의 견해는 이창동의 견해 쪽에 더 가깝다. 그래서 김용택 도종환 안도현의 시를, 좋아하지만 열광하진 못한다. 게다가 시는 대체로 상징성이 지나쳐서 구체성이 많이 약해 보이며, 그 상징성의 애매함 뒤에 숨어들어 자기 위로나 위선 또는 허세를 위장하거나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난 아직 시를 쓰지 못한다. 그렇다고 김남주 같은 맹렬한 치열함을 보여주기엔, 내 심성이 소심하고 여리다.

* [시]에 이런저런 서운한 점을 말했지만, 이창동 작품끼리 비교해 보자면 그렇다는 거지, 이번 깐느영화제에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할 정도라는 뜻은 아니다. 다른 변수들이 또 있다. 좋은 소식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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