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거북선축제를 보고
여수 거북선축제를 보고
  • 전고필
  • 승인 2010.05.10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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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여수시 중앙동 이순신광장

어린이날이었다. 평소 함께해주지 못해 아이들과 온종일 보낼 심산이었지만 사정은 그렇지 못했다. 결국 오전 반나절 아이들이 좋아하는 도자기 만들기를 하고 화순 온천에 접해있는 불지사를 들렀다.

▲ 62년 설립된 국제관광공사의 이름으로 표지석이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출범한 것이 82년의 일이니 아름다운 항구도시이자 관광도시인 여수의 이름은 진즉 소문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다.
속가에서 정세현이라 불리웠던 범능스님이 좌정해 계신 곳이다. 차 한 잔 나누다 보니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간다. 아이들은 결국 엄마 손에 맡겨두고 길을 나섰다. 거북선축제가 열리는 여수에 가야할 시간이 된 것이다. 가족들은 내가 길을 떠나게 되면 그것이 놀이가 아니라 일이라는 것을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에 함께 하지 않는다.

나의 여행은 늘 일과 놀이 사이에서 어느 축에도 끼지 못하고 방황을 한다. 하여튼 가까워 보이지만 그렇다고 편하게 갈 거리는 아닌 여수행은 어린이날에다 축제까지 겹쳤으니 그 얼마나 혼잡할까 이미 짐작이 갔다.

자라목 같은 여수의 초입에 들어서니 예상은 현실이 되었다. 세상의 교통망이 사통팔달로 뿜어져 나가지만 반도처럼 바다로 깊숙이 뻗어 나간 곳에서는 별반 소용없는 일이다. 몇 해 전 꽃박람회를 했던 안면도에서 일어난 교통체증은 이미 그 상황을 여실히 증명해 준 일이었다.

그곳에서 여수해양엑스포를 한다니 과연 저 관절 없는 차들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 대뜸 걱정부터 인다. 시민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권면하고 차량 5부제를 실시한다고 해도 그리 녹록한 일은 아닐 성 싶다.

▲ 전쟁의 승리를 위해 둑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난중일기의 기록에 따라 2007년 복원한 둑제의 모습이다.
괜한 걱정은 한쪽으로 치워내고 진남관에 들어섰다. 경남의 진주성이 임진왜란 전문 박물관으로 재탄생한 이후 각 지역의 박물관이 특수성을 그 앞자리에 내 놓으려는 시도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종고산 자락에 돌올이 솟아있는 진남관에도 새로운 형태의 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임란당시의 수군들의 활약상과 삶의 모습을 전시하고 왜군과 비교를 해두어 이해하는데 무척 용이한 시설이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진남관의 커다란 현판이 땅을 누르고 있다. 누를 진자에 남녘 남, 조용한 조선의 바다를 침범해 왔던 남녘의 왜적들을 진압하고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정신이 집 이름에 새겨 있는 것이다.

▲ 둑제를 마치고 진남관에서 출정식을 하고 있는 모습.
이 건물은 본디 전라좌수영의 객사로 사용되는 곳이었지만 위풍당당한 모습에서 마치 수군의 중심기관인 것처럼 오인되기도 한다. 진남제에서는 이곳을 활용하여 둑제라는 전쟁에 나서기 전에 승리를 염원하는 제사를 올리며, 5관 5포에 배치된 수군의 출정식을 함께한다.

진남관에서 보이는 장군도와 돌산대교를 둘러보고 새롭게 조성된 이순신광장으로 향했다.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평양예술단이 공연을 하고 있는데 사회자의 언어가 공영방송에서 보던 북쪽 언어보다 더욱 심해 보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들의 지닌 정체성을 도드라지게 하는 것만이 생존의 비법임을 알아버린 것 같아 씁쓸하기까지 하다.

휘파람이라는 노래가 나오니 몇몇 청중은 어깨춤을 들썩인다. 민족의 동질성은 이렇듯 가까이 접하면서 회복되는 것임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증명되는데 오늘의 위정자들에게는 만남 보다는 폼 잡는데 모든 품을 다 팔아버리고 있으니 임진강의 코스모스가 얼마나 더 피고 져야 하는지 가늠이 가지 않는다.

▲ 두 해 전 찍었던 거북선 모형 만들기 대회의 모습으로 여수관내의 초등학생들이 다양하게 참여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들의 공연이 끝나고 축제의 체험장과 음식관 등을 둘러보았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우후죽순 생겨난 축제는 제목만 다를 뿐 별 차이가 없다. 거북선 모형만들기가 이곳의 체험이라면 운주축제에서는 천불천탑 만들기를 하고, 청자축제는 당연히 청자를 만들 것이다. 색다른 무언가가 없는 지루한 기웃 거리기를 마칠 즈음 사위가 어두워진다. 이제 여수세계불꽃경연대회를 할 차례가 온 것이다.

객석이 무척 소란해진다.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몸짓에 사회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주변을 더욱 긴장 시킨다. “안전 요원들 지금 의자 가지고 움직이는 사람들 의자 뺏어 버려요” 그 말 한마디에 내가 지금 있는 곳이 바다가 있는 항구라는 사실을 다시 상기할 수 있었다.

▲ 각설이는 축제에서 없어선 안 될 존재다. 주 무대가 심심하면 관객들은 이들에게 위로를 받는다. 하지만 주최 측이 이들을 좋아하는 경우는 그다지 없어 보인다.
바닷가에는 육지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위계와 명령이 쉽사리 통하는 구석이 있다. 영광의 법성포 단오제에서 축제를 추진하는 주체들의 일사 분란함을 몇 년 동안 경험해 본 적이 있고, 이곳 여수의 진남제에서도 여러 차례 경험해 본 적이 있다.

몇 해 전 일흔에 가까우신 추진위원장이 예순댓살이 되신 부위원장에게 “아야. 손님들 잘 모셔라 잉!”, “예. 걱정 마쇼”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데 놀랐던 기억이 아직 쟁쟁하다.

이런 체계들이 건강하게 통하면 지역의 발전에 자양분이 되지만 불통하면 변치 않는 권력의 화신으로 자리 잡고 지역은 정체되기 마련이다. 지금 어느 쪽일까는 현지사람들과의 대화 몇 마디면 알 수 있었다. 시대의 변화와 요구에서는 아직 미흡하다는 쪽이 더 많아 보인다.

자리를 좌수영 대첩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주 무대가 내려 보이고 불꽃놀이가 잘 보일만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밤이 깊어지고 이탈리아와 일본, 독일에서 온 불꽃 경연대회 참가자들의 향연이 벌어졌다.

▲ 불꽃들이 향연을 벌이고 사람들은 열광한다. 수많은 재원이 저 불꽃 속에 가뭇없이 사라지지만 그래도 그 밤은 아름다웠다.
불꽃과 어우러지는 음악과 형형색색의 축포가 쏘아지며 여수항은 온통 불바다로 변해지고 있었다. 장장 1시간 30여분 동안 진행된 불꽃놀이는 축제를 보러 온 모든 이들의 가슴에 벅찬 감동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번외 참여한 한국 팀들의 공연까지 보고나니 한편으로는 속이 다 후련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저 불꽃에 투여된 허망한 돈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5월, 곳곳에서 축제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다. 그 축제에 한번 가볼 일이다. 보여주기 위한 행사와 가슴을 어루만져주는 행사의 간극은 아직도 머나먼 이 땅의 축제현장을 경험하며 가슴이 먹먹해 질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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