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 원종숙 독서치료사
  • 승인 2010.04.09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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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저/ 류필화 역/ 소담출판사

▲ 책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표지 사진.
“오늘은 재수가 썩 좋은 하루였다. 영창에 끌려가지 않았고 점심 때는 죽그릇 수를 속여 두 그릇이나 먹었다. 오후에는 작업도 순조로웠다. 쇠 톱날 조각도 들키지 않았고 저녁에는 줄을 대신 서고 양배추 국 한 그릇을 더 얻어먹었다. 병에 걸린 줄 알았던 몸도 거뜬히 나았고 우울하고 불쾌한 일이라곤 하나도 없는 거의 행복한 하루였다.”

아주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잠을 청하면서 슈호프는 그 날 하루를 이렇게 돌아본다. 독·소 전쟁 때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다가 가까스로 탈출했으나 간첩죄로 체포된 슈호프. 10년 형기를 마치려면 2년은 더 있어야 하고 형기를 마쳤다 하더라도 영하 40도를 넘나드는 수용소 생활이 끝나게 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그는 의연하고 담대하게 수용소생활을 견뎌낸다.

남의 입이나 쳐다보면서 여기저기 구걸하고 다니지만 실속은 없는 페추코프, 수용소 생활을 진심으로 기뻐하며 성경책을 끼고 사는 알료샤, 전선을 누비며 해군중령으로 활약한 바 있지만 이제는 무능한 죄수에 불과한 부이노프시키, 그 많은 인간 군상들 중에 슈호프는 단연 돋보인다.

그는 염치없게 부탁하지 않고 동료들의 피를 희생하여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는 놈들을 경멸한다. 남의 국그릇에 침을 흘리는 졸장부들과는 아예 종류가 다르다. 그는 마땅히 받을 자격이 있는 것만 받는다. 남들보다 부지런히 몸을 놀리고 상황파악이 빠르며 제때 올바르게 처신할 줄 안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의 삶에 대한 사랑, 인간 존엄을 박탈하는 체제의 폭압 속에서도 희망을 찾고자 하는 굽히지 않는 의지에서 시지프스를 떠올렸다면 어불성설일까.

다시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끊임없이 정상으로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은 시지프스. 그는 자신의 고통을 묵묵히 수행하는 것으로 자신의 운명에 저항했고 자신의 운명보다 위에 있었으며 바위 옆의 또 다른 바위가 되어 그 같은 부조리를 견뎠다. 행복하고 만족한다는 슈호프의 독백, 그러나 윤년이 끼어 형기가 사흘 늘어났다고 무심하게 말하는 마지막 문장에서 그의 고통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1970년 노벨 수상작가이며 러시아 저항 문학가인 솔제니친이 스탈린 치하의 수용소 생활을 담담한 필치로 밀도 있게 그려낸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그의 하루에서 혹독한 숙명을 뛰어 넘고자 하는 한 인간의 숭고한 노력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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