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쇄원에서의 16가지 행위재현 퍼포먼스를 벌이다
소쇄원에서의 16가지 행위재현 퍼포먼스를 벌이다
  • 전고필
  • 승인 2010.03.12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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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소쇄원이 어지럽다. 이 땅의 어느 곳 하나 내 손길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으니 이 땅을 남에게 팔거나 양도하지 말고 어리석은 후손에게는 물려주지 말라고 했던 양산보의 유훈이 처참하게 무너져가고 있다.

15대에 이르기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지켜왔지만 일제 시대 홀로되신 젊은 종가의 며느리가 몸부림치며 지키고자 했지만 넘보는 힘을 감당하지 못해 종중과 일부 뜻있는 이들이 나서서 종손의 재산이 아닌 종중의 재산으로 등록한 것이 이제는 화근이 되어 있다. 해서 현재 입장료를 받는 주체인 종손에게는 소유권이 없고 소쇄원의 내원을 제외한 모든 영역은 담양군이 국비를 받아 매입을 했으니 담양군이 나서서 관리하겠다고 조례제정까지 운운하게 되었다.

담양이 고향인데다 소쇄원에서 전통문화를 공부하고 관광의 새로운 방향을 탐색했던 나에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과 같은 얘기들이었다.

이미 수많은 방문객들로 인해 땅은 답압으로 인해 지반이 붕괴되고 나무는 숨 쉴 틈이 없어 죽어가고, 있던 자리에서 피고 지던 화초들도 싹이 돋건 말건 밟아 대는 탓에 꽃대도 올리지 못하고 소멸되어 갔다.

거기에 성과 속의 경계를 이루며 하얀 포말을 짓던 물줄기도 갈수록 사위어 가고 있고, 뜬금없는 도로포장이 되어 버리고 대나무의 울타리는 과거의 전통적인 방식이 아닌 대통을 잘라서 그야말로 경계의 분단을 지어 버리고 있으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맑고 깨끗이 한다는 소쇄의 의미를 그래도 찾아보고자 지난 2월말 소쇄원에서 일을 벌였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추진단에서 지원한 모든 공간은 문화의 터이자 공간이라는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해 본 것이다. 사실 작년 4월 온 청춘을 소쇄원에서 보내면서 조선 선비의 문화 살롱으로서 소쇄원의 가치와 의미를 세상에 알려야 하는 태산 같은 일들을 남기고 소천하신 종손 양재영 선배가 지난 시절 일러준 것을 토대로 하여 놀이패 신명의 연기자들과 함께 하서 김인후선생의 소쇄원 48영을 토대로 행위요소 16가지를 재현하여 본 것이다.

사전 리허설조차 하지 못했지만 신명의 식구들은 그야말로 신명나게 참여해 주었고 거문고의 정준수 선생도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뜻 깊은 연주를 펼쳐 주었다.

광풍각에서는 전남대 문화재학과의 이치홍 선생이 다실을 열어 차를 대접하고 소쇄원의 가치와 의미를 설명하는 시간도 함께 해 주었다.

비록 당대의 복식사에 대한 정확한 고증을 취하지 못했고 하서 김인후 선생의 소쇄원 48영이란 시에 대한 완벽한 해석이 결여된 상황이며, 계절과 시점의 한계를 지니지만 행위적 요소만으로도 소쇄원을 이해하는데 매우 의미 있는 행사로 여겨졌다.

전통 공간 소쇄원을 찾는 분들이 하서선생의 시를 토대로 재현해 본 모습과 시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좋을 성 싶어 오늘의 ‘길 너머의 길 우게’는 여기서 맺을까 한다.

다행스럽게 이 사진을 보신 전남대학교 나경수 교수가 현대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운문으로 소쇄원 48영을 번역한 내용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셔서 사진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겠다.

사진은 현장 삶의 결을 담아내는 모철홍 작가가 촬영한 것이다. 이런 일련의 시도들이 소쇄원을 이해하고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의 기반이 확대되며 보존의 중요성을 다시 확인하고 조영자 양산보와 종손들의 큰 뜻을 계승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玉湫橫琴(옥추횡금) -옥추에서 거문고 비껴차고 瑤琴不易彈(요금불역탄)거문고를 아름답게 잘타기가 어려운건擧世無種子(거세무종자)온세상을 다찾아도 종자기가 없기때문一曲響泓澄 (일곡향홍징)맑고깊은 물가에서 한곡조를 타고보면相知心與耳(상지심여이) 서로간에 알아주는 마음과 귀 있으려나

▲ 榻巖靜坐(탑암정좌) -평상바위에 정좌하고 懸崖虛坐久(현애허좌구) 벼랑가에 매달리듯 하릴없이 오래앉아淨掃有溪風(정소유계풍) 맑은공기 쐬자하니 바람불어 시원하네 不破穿當膝(불파천당슬) 앉은자리 무너질까 무섭지도 아니하고 便宜觀物翁(편의관물옹) 관조하는 늙은이는 편안키가 그지없네

▲ 枕溪文房(침계문방) -침계가의 글읽는 방蔥明籤軸淨(총명첨축정)사방창문 훤히밝아 책장글씨 또렷하고水石暎圖書(수석영도서) 바위위에 잠긴물에 서책들이 비쳐있네精思隨偃仰(정사수언앙) 마음조차 맑아지니 더불어서 활달하고竗契入鳶魚(묘계입연어) 대자연의 이치인양 어울림이 오묘하네

▲ 槽潭放浴(조담방욕) -조담에서 미역감고潭淸深見底(담청심견저) 조담물빛 맑고맑아 바닥까지 훤히뵈고 浴罷碧璘璘(욕파변린린)물에들어 목욕해도 푸른빛깔 그대로네不信人間世(불신인간세) 인간들이 사는세상 믿을바가 못된지라 炎程脚沒塵(염정각몰진) 덥던길에 흘린땀을 씻자하고 다리걷네

▲ 柳汀迎客(유정영객) -버드나무 물가에서 손님맞이有客來敲竹(유객래고죽) 찾아오신 객이있어 사립문을 두드리며數聲驚晝眠(수성경주면) 잠깐하는 소리듣고 낮잠에서 놀라깼네扶冠謝不及(부관사불급) 관을갖춰 인사하러 준비아직 못했는데繫馬立汀邊(계마입정변) 타고왔던 말매놓고 시내가에 서있구나

▲ 垣竅透流(원규투류) -담장 밑으로 흐르는 물 步步看波去(보보간파거) 걸음걸음 옮기면서 흘러가는 물살보니行吟思轉幽(행음사전유) 가는길에 시심일어 절로절로 그윽하네眞源人未沂(진원인미기)사람들은 참된근원 알려하지 아니하고空見透墻流(공견투장류)자연스레 담장밑에 흘러가는 물만보네

▲ 陽壇冬午(양단동오) -애양단의 겨울 한낮 壇前溪尙凍(단전계상동) 담장앞에 시냇물은 아직까지 얼었으나 壇上雪全消(단상설전소) 담장위에 내린눈은 이미벌써 다녹았네枕臂延陽景(침비연양경) 팔베개를 하고누워 따뜻하게 볕쬐는데 鷄聲到午橋(계성도오교) 한낮되자 닭울음이 다리건너 들려오네

▲ 脩階散步(수계산보) -돌계단을 산보하며 澹蕩出塵想(담탕출진상) 속세나갈 뜻이없어 담담하게 마음먹고逍遙階上行(소요계상행) 돌계단을 걸어걸어 이리저리 소요하네吟成閒箇意(음성한개의) 한가로이 갖은생각 읊조리고 지내자니吟了亦忘情(음료역망정) 잊고지낸 정한까지 역시다시 읊게되네

▲ 小塘魚泳(소당어영) -소당에서 노는 고기方塘未一畝(방당미일무)네모모양 작은연못 몇평되지 아니하나聊足貯淸儀(요족저청의)맑은 물이 가득하여 잔물결이 이는구나魚戱主人影(어희주인영)주인장의 그림자에 물고기들 뛰어노니無心垂釣絲(무심수조사)낚시줄을 못에던져 낚시할맘 전혀없네

▲ 床巖對棋(상암대기) -평상바위에서 장기 두며石岸稍寬平(석안초관평)바위돌이 이룬 언덕 다소간은 펑퍼짐해竹林居一半(죽림거일반)죽림칠현 지냈듯이 한나절을 보냈다네賓來一局棋(반래일국기)손님들이 찾아와서 장기 한판 두자마자亂雹空中散(난박공중산)장기소리 우박치듯 공중으로 흩어지네

▲ 洑流傳盃(복류전배) -도는 물에 술잔 띄워列坐石渦邊(열좌석와변) 돌여울의 가장자리 여러사람 둘러앉고盤蔬隨意足(반소수의족)소반에다 나물안주 듬뿍듬뿍 마련했네 회波自去來(회파자거래) 이리저리 물결일어 빙빙돌아 오고가니盞가閒相屬(잔가한상속) 가득부은 술잔띄워 서로간에 권해보네

▲ 斷橋雙松(단교쌍송) -외나무다리 끝에 섰는 쌍송괵괵循除水(괵괵순제수) 소용돌이 콸콸하며 냇돌바닥 흐르는데 橋邊樹二松(교변수이송) 두그루의 소나무가 다리가에 마주셨네藍田猶有事(남전유유사) 마치옛날 남전에서 일어났던 일있듯이爭及此從容(쟁급차조용) 이곳까지 잡아끌어 따라미칠 모양이네

▲ 廣石臥月(광석와월) -광석에 누워 달구경露臥靑天月(로와청천월)청천하늘 밝은달을 밖에누워 구경하니端將石作筵(단장석작연) 바위가 곧 돗자리라 단아하기 그지없네 長林散靑影(장림산청영) 대숲들이 그림자져 길게뻗어 술렁이니 深夜未能眠(심야미능면) 밤은깊어 야심한데 뒤척이며 잠못드네

▲ 倚睡槐石(의수괴석) -괴목바위 기대 졸며 自掃槐邊石(자소괴변석) 귀목나무 가에있는 바위돌을 손수 쓸고 無人獨坐時(무인독좌시) 다른사람 하나없이 홀로거기 앉았었네睡來驚起立(수래경기립) 깜박졸은 낮잠에서 놀라깨서 일어나니恐被蟻王知(공피의왕지) 의왕조차 알았을까 두렵기가 그지없네

▲ 梅臺邀月(매대요월) -매대에서 달맞이林斷臺仍豁(임단대잉활) 언덕받이 대나무숲 쳐냈더니 앞이 트여 偏宜月上時(편의월상시) 달맞이를 할때에는 그지없이 좋고좋네最憐雲散盡(최련운산진) 구름들이 다걷히자 텅빈하늘 서러웁고寒夜暎氷姿(한야영빙자) 매화꽃은 달빛젖어 시린밤만 깊어가네

▲ 池臺納凉(지대납량) -못가 언덕에서 더위씻기 南州炎熱苦(남주염열고) 남녘땅의 무더위는 견디기에 어렵지만獨此占凉秋(독차점량추) 이곳 땅은 유독달라 가을 같이 서늘하네風動臺邊竹(풍동대변죽) 언덕 위에 바람불자 대숲들이 일렁이고池分石上流(지분석상류) 연못에서 넘친물이 바위타고 흐르누나
/漢詩 譯-나경수 전남대 교수, 사진-모철홍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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