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소쇄원이 어지럽다. 이 땅의 어느 곳 하나 내 손길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으니 이 땅을 남에게 팔거나 양도하지 말고 어리석은 후손에게는 물려주지 말라고 했던 양산보의 유훈이 처참하게 무너져가고 있다.
15대에 이르기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지켜왔지만 일제 시대 홀로되신 젊은 종가의 며느리가 몸부림치며 지키고자 했지만 넘보는 힘을 감당하지 못해 종중과 일부 뜻있는 이들이 나서서 종손의 재산이 아닌 종중의 재산으로 등록한 것이 이제는 화근이 되어 있다. 해서 현재 입장료를 받는 주체인 종손에게는 소유권이 없고 소쇄원의 내원을 제외한 모든 영역은 담양군이 국비를 받아 매입을 했으니 담양군이 나서서 관리하겠다고 조례제정까지 운운하게 되었다.
담양이 고향인데다 소쇄원에서 전통문화를 공부하고 관광의 새로운 방향을 탐색했던 나에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과 같은 얘기들이었다.
이미 수많은 방문객들로 인해 땅은 답압으로 인해 지반이 붕괴되고 나무는 숨 쉴 틈이 없어 죽어가고, 있던 자리에서 피고 지던 화초들도 싹이 돋건 말건 밟아 대는 탓에 꽃대도 올리지 못하고 소멸되어 갔다.
거기에 성과 속의 경계를 이루며 하얀 포말을 짓던 물줄기도 갈수록 사위어 가고 있고, 뜬금없는 도로포장이 되어 버리고 대나무의 울타리는 과거의 전통적인 방식이 아닌 대통을 잘라서 그야말로 경계의 분단을 지어 버리고 있으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맑고 깨끗이 한다는 소쇄의 의미를 그래도 찾아보고자 지난 2월말 소쇄원에서 일을 벌였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추진단에서 지원한 모든 공간은 문화의 터이자 공간이라는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해 본 것이다. 사실 작년 4월 온 청춘을 소쇄원에서 보내면서 조선 선비의 문화 살롱으로서 소쇄원의 가치와 의미를 세상에 알려야 하는 태산 같은 일들을 남기고 소천하신 종손 양재영 선배가 지난 시절 일러준 것을 토대로 하여 놀이패 신명의 연기자들과 함께 하서 김인후선생의 소쇄원 48영을 토대로 행위요소 16가지를 재현하여 본 것이다.
사전 리허설조차 하지 못했지만 신명의 식구들은 그야말로 신명나게 참여해 주었고 거문고의 정준수 선생도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뜻 깊은 연주를 펼쳐 주었다.
광풍각에서는 전남대 문화재학과의 이치홍 선생이 다실을 열어 차를 대접하고 소쇄원의 가치와 의미를 설명하는 시간도 함께 해 주었다.
비록 당대의 복식사에 대한 정확한 고증을 취하지 못했고 하서 김인후 선생의 소쇄원 48영이란 시에 대한 완벽한 해석이 결여된 상황이며, 계절과 시점의 한계를 지니지만 행위적 요소만으로도 소쇄원을 이해하는데 매우 의미 있는 행사로 여겨졌다.
전통 공간 소쇄원을 찾는 분들이 하서선생의 시를 토대로 재현해 본 모습과 시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좋을 성 싶어 오늘의 ‘길 너머의 길 우게’는 여기서 맺을까 한다.
다행스럽게 이 사진을 보신 전남대학교 나경수 교수가 현대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운문으로 소쇄원 48영을 번역한 내용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셔서 사진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겠다.
사진은 현장 삶의 결을 담아내는 모철홍 작가가 촬영한 것이다. 이런 일련의 시도들이 소쇄원을 이해하고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의 기반이 확대되며 보존의 중요성을 다시 확인하고 조영자 양산보와 종손들의 큰 뜻을 계승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