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상사의 세 장승을 뵈면서
실상사의 세 장승을 뵈면서
  • 전고필
  • 승인 2010.01.15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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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남원군 산내면 입석리

한반도의 남쪽 지붕 지리산은 종이보다 하얀 백발로 성성하다.

그 모습 지켜보면서 차를 타고 대구로 가는 길, 간선으로 난 길이 나를 꼬드긴다.
모든 길은 일가친척이라는데, 애라 좀 일찍 왔는데 해찰을 하고 가야지 싶어 혹하고 인월 쪽으로 빠졌다.

이성계가 왜군과 싸울 때 구름 사이로 숨어드는 달 때문에 전세가 불리하자 구름을 제끼고 달을 끌어다 놓고 싸웠다는 인월이다.

뱀사골이 그 안쪽에 자리하고 있고 함양 방향으로 향하면 구산선문의 첫 문을 열었던 실상사가 있다. 문득 실상사가 그리워졌다. 아니 실상사보다 더 궁금한 것은 실상사를 지키고 있는 세분의 할아버지였다. 세월과 두런거리며 비와 눈보라와 바람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그 자리 지키고 계실 그분들의 안부.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대장군, 상원주상군,옹호금사축귀장군,사라진장승의 모습.

서울 인사동 입구에 모형으로 출장을 간 불회사의 장승도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고, 일출의 아름다움을 만방에 떨친 향일암도 불타 사라지는 우라질 세상인데 풍찬노숙을 견디고 계실 그분들은 무사한지.

차를 사하촌에 두고 마음을 정갈히 해줄 만수천 다리를 향했다. 철제 울타리에 둘러져 나를 바라보고 있는 장승 할배는 무탈했다.

벙거지 모자에 세상의 온갖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 같은 주먹코와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까지 다 알아챌 것 같은 커다란 귀는 그대로 열려 있었다. 퉁망울의 눈은 이리 저리 두리번거리지 않아도 화각이 넓어 뒷꼭지를 제외한 모든 공간은 다 감시하고 있을 법 했다.

배시시 웃고 있는 얼굴임에도 드러난 송곳니는 위엄이 서려 있었다. “이놈 잘못하면 이빨로 찍어 버릴 것이다”라고 증명하는 듯하다.

거기에 날렵한 몸매는 더 호리해져 가분수 같은 형상으로 지상에 말뚝처럼 고정되어 있다. 모든 고정된 것을 보면 나는 영화 일 포스티노의 대사가 떠오른다.

“자네, 왜 그렇게 서있는가?” “네?” “우체통처럼 서 있잖은가?” “장승처럼요?” 네루다와 시를 배우려는 마리오와의 대화는 어느 사이 내 가슴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하여튼 잘 있는 모습 마음 편하게 보면서도 한편으론 “외로움이 물밀 듯 밀려오면 어쩌지” 라는 측은지심이 일었다.

다리를 건너니 할머니 한분 세찬 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전을 펴고 계신다. 대봉곶감이라고 맛보고 가라고 하신다. 선뜻 받지 못하고 “오면서 볼께요”라는 말씀드리고 다시 길을 간다.

평지형 가람 실상사가 눈에 들어온다. 절집이 아름다운 것은 고풍스러움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던 곳이 실상사였다. 십여 년도 전에 그곳에 들렸을 때 스님들은 울력을 하고 있었다.

해우소의 똥을 치우던 아름다웠던 모습, 선암사의 뒷간처럼 통풍이 잘되고 발효가 되었던 변들을 채마밭에 뿌리던 모습이 아직 눈에 쟁쟁했다. 생명 공동체, 똥이 곧 밥임을 알아 그런 모심의 철학을 몸으로 실천하는 스님들의 모습 속에 참 많은 생각들을 얻어왔었다.

절을 먼발치에서 보면서 두 분의 할아버지에게 다가간다. 길 양편으로 갈려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있는 형상이지만 그만한 거리를 두고도 만날 수 없는 분들이다.

▲ 10여년전 남원운봉에서 만났던 서천리 장승의 모습.
상원주장군을 보니 건너편의 장승과 또 다른 차이가 보인다. 가지런한 치열들을 지닌 분이 뻐드렁니를 양쪽으로 함께 가지고 있다. 게다가 수염은 초승달 같은 모습으로 흩날리고 있다.

맞은편의 대장군 장승은 눈초리가 매섭게 올라가 있다. 저 분들이 있어 실상사가 오늘의 모습으로 현존하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닌가 싶어진다.

이런 장승의 매력에 빠져 몇 년간을 쫒아 다닌 적이 있었다. 보는 장승 마다 눈에 담아 두었는데 보면 볼수록 존귀한 분을 뵙는 느낌이었다.

마을간 경계구역 표지의 역할과 이정표, 수호신과 수문장의 역할을 수행하는 장승은 이렇듯 사찰이나 성곽에서도 수호신으로 수문장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분들이 가슴 아래까지 가지고 있는 이름 때문에 저간에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왜 상원주장군이니 하원당장군이니 라는 중국식의 이름을 달고 있느냐, 이는 모화사상의 영향이고 주나라 무왕과 당의 이적 장군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이들의 주장에 난감했을 때 이 분야의 전문가인 강현구 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이들의 주장이 맞는지요”라는 질문에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질병의 대부분은 중국 쪽에서 오는 것으로 알고 있는 조상들은 질병의 근원을 처단하기 위해 이름을 차용한 것일 뿐”이라는 말씀이었다.

그들의 주장에 의해 나주 불회사 장승의 모형은 인사동에서 사멸되었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한 것이 내 심정이었다.

강토의 지킴이를 정통성과 자존감이란 이름으로 끌어내는 저 힘들 앞에서 의연하게 서 계신 장승 분들에게 수고로움을 맡기며 돌아서는 길, 다리 가운데 할머니가 장승처럼 계신다.

5천 원짜리 곶감 두 봉지를 사 들고 대구로 가는 길, 세상 사람들이 저 순정한 장승처럼 변치 않았으면 좋을텐데 라는 생각이 내내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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