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NOW, YOU NEED ME”
“I KNOW, YOU NEED ME”
  • 범현이
  • 승인 2010.01.08 21:33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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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들과 교감하는 작가 이록현(35)

▲ 이록현 작가.
프롤로그

하루 내내 허둥댄다. 노트북을 멍하니 들여다보다 하루가 다 간다. 메모했던 기억이 분명한데, 찾아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오른쪽에 기록했을 것 같은 기억이 자세히 살피다보니 왼쪽 아래에 있다. 기억들에게도 번호가 매겨져 있다면 허둥거림이 덜할 것 같다.

작가의 오뚝한 코가 자꾸 생각이 난다. 한 줄도 쓰지 못하는 동안에도 그림들은 눈앞에서 형상을 만들어 둥둥 떠다닌다. 창밖은 어느새 어두워지려 한다.

2010년. 새해 들어 처음 만난 그림이다. 다가 올 시간이 그림 안에서 보여주는 것 같아 작가를 만나고 있는 내내 우울해지다가도 다시 희망을 생각한다. 또박또박 세상을 향해 의문을 던지는 작가의 삶이 그림과 같아 보인다. 죽었거나, 눈물을 흘리고 있거나 아니면 아무런 것도 갖고 있지 않는 형체도 없는 투명한 영혼의 그 자체이거나.

작가는 “이번 전시의 주제는 Art Walk이다. 다시 말하면 세상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내가 져야할 책임이 무엇인지 마저도 불확실해서 알 수 없다. 세상의 소리를 듣고는 있지만 내 안으로 들려오는 소리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너무 미미하다”며 “발언을 하기에는 내가 하고 있는 미술은 너무 우회하고 있다. 혹은 너무 앞서가거나 너무 더딘 것이 나를 더 힘들게 하고 있다”고 말한다.

▲ 작품 <달걀은 절대 돌과 함께 춤추지 않는다>
영혼들이 손을 잡고 길을 건너다

10년만의 두 번째의 개인전이다. 확신에 찬 메시지이기보다는 아직은 갈 길이 더딘 미완성의 전시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를 서서히, 찬찬히 보여주는 전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미완성이라기보다는 그림 안에서 앞으로 작업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혹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절반의 성공을 보여준다.

그림 안에는 손을 잡고 같이 걷는 작가의 영혼이 보인다. 길거리에서 내몰리듯 죽어가는 각종의 동물들, 사체가 이미 썩어 사라져 짓물러진 상태의 형체도 완전하지 않은 동물들이 보인다. 그것은 적당히 썩어가는 웅덩이에 풀어진 온갖 색이 가미된 색채로 마무리의 선이 완전하게 풀어진 형태이다.

눈물을 흘리고 있거나, 쓰러지거나, 하나의 동물에 여러 의미를 지닌 동물들이 등장한다. 동물인 지, 사람인 지도 분간이 힘들다. 단지 관행적으로 우리의 눈에 익숙한 형태를 기억해 내 동물일 것이다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얼굴의 윤곽도 확연하지 않은 형상만으로 보여 지는 팔과 다리는 습관적으로 눈으로 사람으로 인식될 뿐이다. 어쩌면 작가가 의도하는 바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동물을 작업 안에 끌어들인 이유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보다 냉소가 커져 모호한 중간적인 존재를 찾다보니 동물이 등장한 것 같다”며 “동물에 대한 작위적인 해석을 관람자로부터 유도해 내기 위해 일부러 죽이기도 한다”고 고백한다.

분명한 선이 사라져 무엇을 말하려 하는 지는 관람자의 몫이다. 색감 또한 여러 가지의 혼합을 사용해 이 역시 관람자의 몫이다.

▲ 작품 <아이를 울리지 마시오>
텅 빈 광장에 서서 다가오는 미래를 보다

“한 때는 광우병 반대를 위해 거리로 나가기도 했다. 가장 실망스러웠던 점은 근원적인 문제를 직시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소통이었다. 더구나 구호 같은 느낌은 오히려 나를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고 고백한다.

작가가 고민하는 것은 현실의 작업 과정이다. 어쩌면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움직여가는 개인 작업을 하는 작가들 속에서 불편한 심기는 그대로 드러난다.

“온통 화려한 백화점 쇼윈도에서 보이는 쓰레기는 만들고 싶지 않다. 그저 용도를 다했다는 미명 아래 버려진 상태로 있는, 혹은 생명을 다한 것들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의미를 부여해 무언가를 만들어 내려는 이유이다. 왜, 의미를 생각하느냐 누군가가 내게 묻는다면 우리에 불려나와 자연의 상태에서 인위적으로 바뀌어간 사물들이 쓸모를 다했을 때 어디로 어떻게 돌려보내야 할지를 몰라서이다”고 작가는 말한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회생활 속에서 각자의 커다란 원형의 톱니바퀴를 돌리는데 필요한 나사로서의 역할이 지나면 어디로 가는 것일까 하는 의문 역시 작가의 의문 중의 하나이다.

미술이 구호가 되고 밥이 되던 시간을 지난 현재, 작가들의 대부분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실과 희망 등의 소소함에서 작업의 대부분을 할애한다. 특별한 거대담론이 사라진 지금, 그림이 지난 시간과는 확연히 다른 형태로 밥이 되고 생활의 방편이 되어가는 것은 사실이다. 지난날의 그림이 더불어 살아가는 밥을 한 술 뜨게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면 현재는 지극히 개인적인 안락함을 취하는 방법의 하나가 되었다.

▲ 작품 <진부한 사랑>

서서히 살아나는 날개를 곧추 펴다

“가지 않은 길들이 미련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난 세대들은 지금 작업하는 사람들을 지극히 부러워할지 모르지만 상대적으로 현재의 나는 소동이 끝난 후 더 힘들어지는 나를 본다”며 “불러주지도 않는 광장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이라고 표현한다. 지극히 사변적이고 개인적인 목소리가 힘들다는 작가의 말에 회한이 묻어있다.

아무데서나 나뒹굴고 있는 쓰레기들이 작가의 손을 빌어 다시 생명을 얻는다. 나무이긴 하지만 각자의 용도가 달랐던 나무들이 모여 다시 ‘나무’로 모아지고, 벽돌이 하나 둘씩 모아지고 포개져서 신전이 된다.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졌지만 신들만의 위한 ‘당신들의 신전’이 너무나도 초라한 행색인 반어법으로 다가온다. 이 신전 안에서는 인간의 거북한 소망과 초라한 허영들이 거대하게 드러나 보인다. 그리고 엄청난 무게로 다시 다가온다.

▲이록현 작가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 동구 대인예술시장 아트스페이스 미테

“내게 그림은 나를 덜 누추하게 하는 유일한 공간이다. 몸을 움직여 노동하는 자연인들을 가장 존경한다. 거기에 비하면 나의 그림은 아무런 필요가 없는 단지 쓰레기일 뿐이다. 그림을 안고 살아가려면, 아마도 나는 점점 세상 밖으로 멀어질 것이다. 세상과 멀어질수록 오히려 살아가는 의미를 되찾을 것을 느낀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 갈 것이다. 내 삶의 운명에 나는 더디게 끌려갈 것만 같다”

돌아 나오는 길. 작가가 물었다. “제가 그림을 그려도 될까요?”

문의 : 010-9335-2588

에필로그

너에게로 가는 길 지워진지 오래 / 나의 정원에 꽃들은 죽고 / 너를 묻고서 나침반도 없이 어두운 길로만 떠돌았구나 / 달빛에도 발은 걸려 넘어지고 / 낮달에도 눈 부셔 그늘로 그늘로만 숨었네 // 이제 놓아줘! / 널 잊을 수 있게만 해 줘! // 너를 버리기 위해 숲마다 너를 묻었으니 / 이제 나의 정원엔 새들도 날지 않는다 / 더 이상 꽃 피지 않는다 - 비애. 作 한보리

먼지바람 자욱한 비탈길을 내려오다 문득 두려워졌다. 평지에 발을 닿는 순간, 비탈 위의 기억들이 재가 되어 버릴까 봐, 고단했던 시간들이 먼지로 날아오를까 봐.

접힌 채 말라가는 망각의 수치들. 가슴에 푸르게 던져져 와서 가득 차버린다. 다시 하루의 시간, 일 년의 새날이란 태엽을 감는다. 한 때는 모든 것이 여기에 있었다. 다른 모든 것들이 하찮은 것이 되어버릴 때까지. 다만 그것들은 얼마나 빨리 내게 푸른 멍을 남기고 멀어졌는가. 몸 한군데 성한 곳이 없이 푸른 멍이 들었다. 밤새도록 내게 허기가 져서, 속마음까지 가는 길 너무 멀어서 문밖에서 하염없이 서성인다.

내가 없는 내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지금 내 안에는 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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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아 2010-01-15 21:00:30
한 때 그림이 무척 싫었다. 특별한 사람, 부잣집 아이들만하는 놀이 같았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선 마찬가지였다. ..이런 편견들을 없애준 기사가 작가탐방이다. 부자들이 보는 그림이 아니고, 작가들 역시 복에 겨운 사람들이 아니란 것을 이제 안다. 많은 도움이 되었다.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배려 2010-01-15 10:53:52
작가탐방은 내가즐겨읽는 시민의 소리 지면이다.이번주신문에 얼굴이 나오지않아 웹에들어왔더니.. 왠 뒷모습? 작가를 존중하는 글쓴이의 마음이 느껴진다. 검정색얼굴.아마도 길을 걷다가 이 이미지를 보면 이 작가를 생각할것 같다. 추운 겨울 망므은 훈훈해져 좋다.

사랑한다면. 2010-01-13 17:33:06
하루내내 어제 읽은 작가탐방의 에필로그가 생각이 나서 결국은 로긴을 하고 만다. 제일 마지막 줄이 현재의 내 생각과 같다. 아마도 이 글을 쓰는 사람은 유미주의에 푹 빠져있는 듯해 보인다. 어쨋든 좋은글, 좋은 작가 선정, 좋은 그림들. 감사를 전한다.

말썽꾸러기 2010-01-09 13:30:23
그림은 내게 멀리 있는 '어떤 것'이었다.하지만 지금은 예전보다 조금은 더 가까워졌다. 간혹 사람들과 우연한 화제가 미술전시 쪽으로 옮겨가면 단연 내 의견이 돋보인다. 순전히 작가탐방을 애독한 결과이다. 고맙고 감사하다.

이의진2 2010-01-09 13:22:22
새해에도 좋은그림과 작가 소개가 기대된다.
놓치고 지나친 많은 것들을 다시 일깨워주는 작가탐방과, 이런 분을 섭외해 지면을 할애해준 <시민의 소리>에 고맙다. 발전이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