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이스트]백인 엘리트와 흑인 노숙자의 아름다운 만남?
[솔로이스트]백인 엘리트와 흑인 노숙자의 아름다운 만남?
  • 김영주
  • 승인 2009.12.07 14: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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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이스트]
▲ 영화<솔로이스트>스틸컷.
[백야행]은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다. 손예진의 연기력도 여기선 그저 그렇다. 감독의 역량 자체가 이래저래 좀 딸린 것 같다. 대중재미 B0 · 영화기술 C+ · 삶의 숙성 C0.
[더 문]이 좋은 영화여서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솔로이스트]를 더 이야기하고 싶었다. 대중재미 B0 · 영화기술 B+ · 삶의 숙성 B+.

내 방에서 일할 땐, KBS FM1의 ‘세상의 모든 음악’을 인터넷 다시듣기로 항상 틀어놓는다. 노래 부르는 것도 무척 즐기고, 음악영화나 댄스영화도 사뭇 좋아한다.

어린 시절부터 수많은 음악을 즐겨 오면서도, 클래식과 正樂 그리고 하드락은 거의 대부분이 지루하거나 불편하다. 한 시절 가까이해 보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그 억지스런 노력이 되레 싫어서 포기했다.

( 이런 나의 클래식에 몰이해를 ‘이유 있는 반항’이라며 합리화시켜준 책을 만나 무척 기뻤다. 그 내용이 클래식음악에 대한 내 견해와 어찌나 비슷한지 흥분될 정도였다. [굿바이 클래식], 조우석, 동아시아. ) 클래식음악이 이 영화에 중심 소재이다.

내가 클래식음악을 즐기지도 못하거니와 아는 바도 별로 없어서, 이 이야기에 끌어들일 능력이 없다. 단지 그 음악들이 갖는 이미지를 다양한 영상기법으로 적절하게 잘 그려냈다.

이 영화는 실화소설을 각색해서 만들었단다. 주인공은, 줄리아드 음악원에 입학했다가 정신질환 때문에 도중하차하여 지금은 노숙자로 구질구질하게 살아가는 천재적인 만능연주자 흑인 그리고 'LA타임즈'에서 인기칼럼을 쓰고 있는 중견기자 백인이다.

그 백인을 [아이언 맨]에서 매력적인 카리스마를 보여준 로버트 다우니가 연기하였고, 그 흑인을 [레이 찰스]에서 완벽해 보일 정도로 대단했던 제이미 폭스가 연기했다. 이 영화에서도 그들의 연기는 훌륭하다. 제이미 폭스는 더욱 그러하다.

상당히 어려운 역할임에도 온 몸으로 그 표정과 몸짓을 생생하게 살려낸다. 존경스러울 정도이다.

▲ 영화<솔로이스트>스틸컷.

원작 소설의 내용을 그대로 인정하고 보자면, 잘 만든 영화이다. 그러나 일반대중이 즐기기엔 어려운 점이 있다. 두 남자의 우정을 다이내믹하게 밀고 가는 게 아니라 은근하게 조금씩 조금씩 이끌어간다. 더구나 그걸 미묘한 표정과 미세한 말투의 변화 속에 깊이 숨겨서 말하고 있으니, 두 남자의 표정과 말투를 세심하게 음미하지 않으면 영화가 지루해지기 십상이다.

스토리나 사건을 중심으로 보는 사람들은 놓치기 쉽다. 그 소재마저도 사람들에게 감정전달이 잘 안 되는 클래식음악이니 더욱 지루하겠다. 그래서 사람들은 ‘너무 뻔한 천재이야기’로 별 감흥을 갖지 못하고 밋밋하게 여길 것 같다. 잘 만든 영화인데, 안타깝다.( 대중재미 C0 · 영화기술 A0 )

<예고편-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47710&videoId=25170 >

잘 만든 영화인데, 가슴 뭉클하진 않다. 감동을 간질거리다가 뭔가 허전했다. 왜 그럴까? 머리와 가슴을 더듬더듬 뒤져보았다. 이 영화는 백인 엘리트와 흑인 노숙자라는 ‘선택받은 사람과 버림받은 사람’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는 인종차별과 빈부격차라는 쓰라리고 시린 사회문제가 그 밑바탕에 엄연하게 깔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는 이 쓰리고 시린 문제의식을 전혀 담아내지 않고 백인 엘리트의 개인적인 동정심과 선행으로만 이끌어 간다.

마지막 즈음 10여 년 전 LA에 일어난 지진이야기를 꺼내어서, “그 지진을 우리가 어쩔 수 없잖아? . . . 그걸(흑인 주인공의 정신병을) 고치려고 하지 말고, 그걸 그대로 두고서 그냥 친구려니 여기고 살아가면 어때?”라는 말로 둘 사이에 꼬여든 매듭을 풀어낸다.

그건 그렇다. 자연재해로 일어난 지진을 어느 개인이 어찌할 수 없듯이, 흑인 주인공의 오랜 정신병은 싹 지워 없애보려해도 없앨 수 없는 병이다. 그 어찌할 수 없는 걸 억지로 되돌릴 순 없으니, 주어진 상황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냥 친구’로 타협점을 찾는 게 낫겠다.

그리해서 "이제 우리 이대로 '따뜻한 우정'을 나누자!"며, 흑인과 백인 그리고 부자와 빈자 사이에 벌어진 틈새를 이렇게 따뜻한 악수로 채워넣어 '새로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보자는 희망의 메세지를 암시하며 마무리짓는다.

▲ 영화<솔로이스트>스틸컷.

많은 사람들이 '각박하고 냉혹한 세상 인심'을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면서, 갖가지 바램과 희망을 말한다. 티끌모아 태산이요 한 알의 밀알이 드넓은 밀밭으로 풍성해지듯이, 그런 따뜻한 마음새가 모이고 모이다 보면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어질 수 있지 않겠나? 착한 마음이요,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과연 그런 세상이 이루어질 수 있올까?"를 생각해 돌이켜 보노라면, 너무나 막연하고 아무 것도 잡혀들지 않는다. 그런 바램이나 희망은, 진정일 수도 있고, 이뻐 보이고 싶은 악세서리일 수도 있다.

그야 어떠하든 그 착한 마음와 그 아름다운 모습이 전혀 없는 것보단 낫다. 그러나 문제는, 그 착한 마음과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티끌과 밀알'이 과연 실제로 그런 '태산과 밀밭'을 이룬 적이 있느냐에 있다.

"두드리면 열린다!"고 했는데, 개인적으로야 두드리면 열리는 경우를 굳이 찾아보면 없지 않겠지만,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경우가 99%이고, 사회구조적인 모습을 살펴서 찾아보면 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 북유럽나라들이 그런 '아름다운 나라'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그것도 꼼꼼이 따져보면 그 밑바탕엔 '버림받은 사람들의 부당한 희생'이 쫘악 깔려 있다.

이 영화는 그 개인적인 우정을 과대포장해서, 백인과 흑인 그리고 빈자와 부자 사이에 얽힌 쓰라리고 시린 사회문제를 완전히 눈감은 채 그저 ‘아름답기만 한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들이 떵떵거릴 땐 그리도 매정하고 혹독하더니, 자기들이 구석지에 몰릴 땐 화해하고 상생하잔다.

과거에 지은 죄가 많은 사람은, ‘지난 과거’를 지나치게 푸대접하고 ‘다가올 미래’를 지나치게 미화한다. “그 쓰리고 시린 상처를 굳이 드러내면, 그나마 이런 화해마저도 이룰 수 없지 않느냐? 지난 과거는 그냥 덮어두고, 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 그럴 듯한 말이다.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자기들이 누린 ‘부당한 특권과 특혜’를 전혀 양보하지 않고 그 ‘알량하게 아름다운 구호’만 외친다. 버림받은 사람들은 아직도 맨발로 자갈길을 달리고, 선택받은 사람들은 아직도 자동차로 아스팔트를 달리는데, 어떻게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밝은 미래가 오겠나?

주인공 흑인과 주인공 백인, 그 둘은 클래식음악으로 서로 통한 바가 있으니 그토록 '아름다운 우정'을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영화<솔로이스트>스틸컷.

그러나 나머지 흑인과 빈자 그리고 백인과 부자는? 무엇보다도 그 차별과 격차를 변함없이 굳건하게 지켜나가도록 짜여진 사회구조는?

인종차별과 빈부격차라는 카드를 아예 꺼내들지를 말든지, 이렇게 꺼내들었으면 이 근본적인 문제를 어떻게든 눈꼽만큼이라도 보여주었어야 했다.

이 근본적인 문제를, [디스트릭트 9]은 비유적 상징으로 신랄하게 암시하고 있기 때문에 '삶의 숙성'에 A0학점을 주었고, 이 영화는 완전히 눈감아 버리고 개인적인 감상주의로 자기 자신을 미화하거나 위장하고 있기 때문에 '삶의 숙성'에 F학점을 준다.

그 착한 마음새를 배려해서 B0학점을 줄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썸머 워즈]가 잘 만든 영화이기에 오히려 더욱 나쁜 영화라고 하였듯이, 그의 영화기술이 A0학점인 능력을 위선적으로 자기를 미화하는 나쁜 쪽으로 이용하였다고 보아서 F학점으로 깍아내렸다.

이렇게 모질게 F학점까지 깍아내린 게, 그의 착하게 여린 마음씨를 생각하노라면 인간적으로 미안하다. Joe Wright 감독은 영화기술에 상당한 재능을 가진 기능인(Wright)이다.

그런 재능만 갖추었지 삶의 깊은 안목을 갖지 못한 기능인(Wright)은, 애당초 인종차별과 빈부격차라는 어두운 사회문제를 꼬장꼬장 따져야 할 '칙칙한(Dark) 동네'에서 놀지 말았어야 했다.

그는 [오만과 편견]이나 [어톤먼트]처럼 키이라 나이틀리와 함께 '소녀적 감성의 우아함 미감'으로 아름다운 영상미에 젖어들어 춤추는 로코코Rococo의 '해맑은(Light) 동네'에서 노는 게, 그의 기능인(Wright) 면모를 그나마 돋보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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