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 장여옥 수필가
  • 승인 2009.11.06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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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상호 옮김, 보리 펴냄

▲책표지.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지구는 하나, 세계는 하나”라는 모토아래 21세기를 공존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다. 정보의 홍수를 이루는 매스미디어의 역할이 아닐지라도 세계는 하나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구의 한 지점에서 발병되었던 바이러스 또한 전 세계로 확산되는 파장 또한 일파만파요, 초고속인 것이다.  근대적 물결과 교통수단의 변화는 세계가 ‘일일생활권’이라 하여도 큰 무리수가 없을 것이다.

지난여름 나는 문학기행으로 1780년에 연암 박지원과 그 외 사행단이 약 3개월 동안 갔었던 길을 몇 일만에 다녀왔다. 『열하일기』의 연암은 삼종형 박명원이 건륭황제의 만수절 축하 사절로 중국을 가게 되면서 동반하게 되었다. 

연암은 중국기행을 통하여 온갖 기이함을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그의 기록에는 유리창, 불가마, 벽돌, 굴뚝 등 작은 것에서 정치, 경제, 문화 등 민속까지 총 망라하여 상세하게 적고 있다. 그는 옥갑에서 여러 비장들과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을 중심으로 허생전 및 옥갑의 벽에 기록된 호질 이야기 등을 잔잔한 수필로 남겼다. 그가 생애 남긴 시는 45편뿐이다. 율격과 격식에 억매는 것을 싫어하였던 그의 문학정신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것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실용정신에 입각한 이용후생으로서 패사소품체의 글을 즐겼는지 알 수가 있다. 

여행을 즐겨하는 한사람으로서 바라본 『열하일기』는 참으로 경이롭고 18세기의 자랑이요, 우리 문학의 꽃이라 명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여행지에서 그곳을 세심하게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암은 8월15일자 기록에서 “우리나라 선비 중에 멀리 중국 한복판에서 노닐어 본 사람으로 신라의 최치원이나 고려의 이제현 같은 분들이 있기는 하다…앞으로 천년 동안 몇 사람이나 다시 이곳을 밟을지는 모르겠다.”라고 열하에서 연경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기고 있다.

나는 앞으로의 천년 속에 한사람으로 그곳을 다녀왔으며, 사행단 일행이 괴롭고 힘들게 갔던 그 길(경승고속도로)을 버스로 4시간 만에 갔었다. 교통의 편리함으로 3개월에 걸쳐서 갔던 중국행을 이제는 이웃집처럼 드나들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의 기록은 이러한 변화의 격랑 속에서도 21세기를 리더해가며, 현대인의 정신적 소산이 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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