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는 도자기의 처음과 끝
옹기는 도자기의 처음과 끝
  • 범현이
  • 승인 2009.10.23 1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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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었던 자리마다 옹기에게 발목 잡힌 도예가 오향종(47)

▲오향종 작가.
프롤로그

전화 너머 작가의 손사래 치는 모습이 환히 보인다. 취재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니까요… 와서 보는 것은 마음대로이지만 정말로 취재 같은 것은 할 것이 없다니까요… 작업을 해놓은 것도 없고… 아직 해야 할 단계도 아니고… 와서 그냥 구경이나 하고 가면 모를까…

끝까지 으득으득 우기며 작가를 찾아간다.

이번 길은 헤매지 않고 쉬이 찾아갔다. 어르신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던 정자에는 이제 푸른색의 루핑이 둘러져 있고 인적이 드물다. 바라다 보이는 넓은 들판에는 벼들이 제 무게를 못 이겨 금색을 토해 빛나고, 작가가 거주하는 폐교의 은행잎들도 여린 노란 색을 한 잎, 두 잎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여름이 채 오기 전,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습하고 무더운 날씨였던 것을 기억한다. 이마 위로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떨어지는 동안에도 쉬지 않고 옹기를 만들기 위해 수레질을 하고 있었던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

전통방식을 구현하는 옹기는 도자기의 모든 것

작가는 물레질이 아닌 판장기법을 사용해 옹기를 성형한다. 판장기법이란 서남쪽 지방에서만 사용하는 성형이다. 동남쪽 지방에서 주로 사용하는 코일링 기법은 옹기가 커지면 성형과정에서, 혹은 가마 안에서 제 스스로의 무게를 못 이겨 내려앉기 때문이다.

서남쪽으로 내려올수록 기온이 따뜻해져서 저장할 음식물이 많아지고 젓갈 사용량이 늘어나면서 옹기의 용량은 점점 커지고, 그 옹기를 만들어 내기 위한 역사 속의 도예가들은 나름의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판장기법이며 이 기법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도 없다. 오직 우리나라 안에서만 발견되는 기법이다.

적당한 크기의 판을 떠서 두드려 서로 맞붙여 말려가며 옹기를 만들어낸다. 수 천 번을 두드려야 비로소 하나의 옹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안과 밖을 균일한 두께로 인식해가며 정성을 쏟고 집중해야만 작가의 옹기가 완성된다.


흙은 자연 그대로에서 가공이 안 됀 순수한 점토를 사용하며 가장 가까운 곳에서 구한다. 흙은 밟아 공기층을 없앤 다음 2시간 정도의 판장기법을 사용해 두드리며 이어붙이고 나면 하나의 옹기가 완성된다. 이 옹기는 열흘에서 삼십일 정도의 건조기간을 거친 후 비로소 가마 안에서 불을 타고 놀 수 있다.

▲작가는 가스를 태우는 가마에서 최근에는 우리 고유의 전통 방식의 가마를 만들어 사용한다.

작가는 가스를 태우는 가마에서 최근에는 우리 고유의 전통방식의 가마를 만들어 사용한다. 나무와 짚을 사용해 불을 지피는 옛날 우리 조상들의 기법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예전, 우리가 아직 어렸을 때 늘 상 보았던 옹기의 색을 구현해보고 싶었다. 게다가 옹기의 특징상 생활과 밀접해 저장용기로 사용되어 왔던 것을 돌이켜보면 가장 자연에 가까운 재료인 흙과 불을 함께하면 우리의 몸을 밀어내는 해악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아마도 더, 옛날 방식을 고수하게 한 이유일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수작업으로 정통방식을 고집

“도자기를 전공했다. 무엇인가를 내 손으로 조형할 수 있다는 매력에 도자기는 내 마음을 온통 가져갔다. 정신이 혼미하도록 재미있기만 하던 도자기가 어느 날부터 의문이 들면서 점점 어려워졌다. 남들과는 다른 것, 다른 사람이 아닌 나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을 생각하는데 불현듯 우리 옹기가 눈에 들어왔다. 옹기는 어쩌면 다음의 작업을 하기 위한 과정일 지도 모른다. 옹기를 하면서 다섯 분의 선생님을 모시고 배웠지만 지금껏 나는 헤매고만 있다. 한마디로 아직 멀었다는 얘기다. 하면 할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 그것이 바로 옹기다.”

작가는 말한다. 옹기작업을 하려면 가장 먼저 흙의 성질과 특성을 알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 흙과 한 몸처럼 서로 녹아들어 섞여져야 한다는 것.

옹기를 만드는 일은 흙을 알아가는 작업과정이다. 옹기는 도자기의 처음 역사를 알려주며 도자기가 발전해 온 역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옹기 안에서 우리의 현대 도예가 나올 수 있었으며 옹기를 알아감으로서 더불어 미래의 도예를 미루어 짐작할 수도 있다.

옹기는 가장 일반적이고 서민적인 생활용구이다. 우리네 조산들이 사용하지 않은 곳이 거의 없다. 굴뚝에서부터, 와당 기와, 부엌에서 사용하는 조리용품, 벽돌, 물장군, 심지어는 화장실에서 사용하는 용구까지 옹기가 아니면 대체품목이 없을 정도이다. 현대로 넘어오면서 가벼운 플라스틱과 스테인리스 제품들로 대체되긴 했지만 웰빙을 타고 다시 생활용구들이 예전으로 돌아가고 있는 추세이다.

작가는 “옹기는 도예를 배우는 사람이면 당연히 해야 할 과정인 공부이다. 나 역시 정말 하고 싶은 도예를 창작하기 위해 옹기를 공부한다”고 덧붙인다.

멀리 가기 위한 작은 몸짓

장독대가 놓여있는 담 장 안은 담장 밖의 풍경들과 하나가 된다. 어디가 인공이고 어디가 자연인 지 분간이 어렵다.

자연에서 만들어 낸 옹기들은 조형이 가미된 형태를 달리한 자연물 그 자체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장독 뚜껑을 바라보면 잊혀져버린 기억들이 아련하고, 어머니의 정화수도 두 손과 함께 떠오른다. 높은 온도에서 세련된 유약을 발라 구워 낸 도자기와는 또 다른 맛을 지닌 옹기다. 작가가 바라는 옹기 세상이다.

▲장독대가 놓여있는 담장 안은 담장 밖의 풍경들과 하나가 된다. 어디가 인공이고 어디가 자연인 지 분간이 어렵다.

“한 마디로 말하면 옹기가 발목을 잡았다. 도자기를 알아가기 위해, 나만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거쳐 가는 과정으로 옹기를 공부하려 했는데 잡은 발목을 도무지 놓아주지 않는다.  옹기를 통해 역사를 알아간다. 처음, 도자기를 만들어 낸, 수 천 년의 기술이 옹기 안에는 압축되어 있다. 우리 민족만의 선을 느끼고 우리 민족의 흙에 대한 애경심을 배운다. 흙을 다루는 기술의 우수성과 조형성뿐 아니라 흙을 다루는 사람의 자세도 배운다”

작가는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빼내려 하던 발목을 스스로 옹기 안에 가둔다. 이제는 옹기에게 발목을 잡힐 것이 아니라 옹기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일이다.

문의 : 011-625-3011

에필로그

그대여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 문이 안으로 잠겨있고 / 신발도 그대로인데 내가 보이지 않는다면 / 책상 위로 사뿐히 내려앉은 한 점 먼지 쓸어내지 말아주게 / 먼지 속으로 출타 했으니 행여 애타지 말아주게 // 마당에선 뒹굴던 새의 깃털이 점점 자라나 / 다시 온전한 새가 되어 날아가고 / 해질녘에 떨어진 햇빛은 들꽃으로 진화 한다네 / 거긴 좀 어떤가 /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 창 밖 세상은 벌써 일 만년 후라네 / 전 날 깎아 버린 손톱은 열 개의 달이 되고 / 어딘가 떨어진 눈썹은 숲이 된다네 // 그대여 바람을 일으켜 먼지 흩날리게 / 그대 기억보다 더 생생한 잊혀짐이게  -  詩 수암 가는 길. 윤의섭作

따뜻함이 그리워 품에 그득 안았는데도 그리움은 메워지지 않는다. 아마도 겹쳐지지 않은 심장 때문일 게다. 뒤에서 겹쳐지는 심장으로 안으면 얼굴이 안보여 그리워지고 앞에서 안으면 겹쳐지지 않은 심장으로 인해 더 간절한 그리움 되어 목이 멘다. 스스로 병을 얻어 헤어 나올 길이 없다. 이마에 찬 수건을 올려둔다.

햇빛 혼자 놀다가 가는 방. 혼자서 자다 깨다 펼쳐놓은 신문지처럼 하루를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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