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트릭트9]톡 쏘는 재미, 그러나 씁쓸한 그 뒷맛
[디스트릭트9]톡 쏘는 재미, 그러나 씁쓸한 그 뒷맛
  • 김영주
  • 승인 2009.10.16 2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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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트릭트9]

▲ 영화<호우시절>스틸컷.

허진호 감독의 [好雨시절]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외출]에서, 허진호감독이 그려내는 섬세하고 잔잔한 사랑의 미학에 점점 깊이 빠져들었다.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는 삶의 숙성이 A0이면서도 대중재미가 B0쯤은 되어주어서, 흥행에 성공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실패했다고 볼 수도 없다. 그의 작품에 열렬 팬을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외출]은 삶의 숙성이 A0임에도 대중재미가 C0밖에 되지 않아 흥행에 실패했고, [행복]은 삶의 숙성이 B0임에도 대중재미가 C0밖에 되지 않아 흥행에 실패했고, 이번 [호우시절]은 삶의 숙성이 B+임에도 대중재미가 C+밖에 되지 않아 흥행에 실패할 것 같다.

<예고편>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52565&videoId=25398

관객님들께 바라옵건대, 비록 그의 섬세한 미감이 너무 잔잔하고 은은해서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관객의 눈으로 보기엔 맹물처럼 싱거워 보이겠지만, 그래도 허진호 감독의 잔잔하고 은은한 미감을 성원해 주길 바랍니다. 좋은 감독이 말라 죽지 않도록 우리가 돌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진호 감독님께 바라옵건대, 님의 절제되고 그윽한 미감이 참 훌륭하지만, 설사 작품성이 좀 떨어지는 걸 감수하더라도 대중재미에 신경을 많이 써주길 바랍니다. 대중성이란 게 대체로 천박하고 때론 역겹기까지 하지만, 때때로 무시할 수 없는 생명력과 먹물에 젖은 사람들이 잃어버린 진솔함을 간직하고 있으니, 대중성에 관심을 주지 않는 건 궁극적으론 잘못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최근 [행복]과 [호우시절]은 앞의 세 작품보다 삶의 숙성이 좀 떨어지더라구요. 그래도 님의 격조 높은 미감을 깊이 존경합니다. 이번 [호우시절]에 음악 차암 좋았습니다.

[디스트릭트9] 톡 쏘는 재미, 그러나 침울한 어둠이 깔린 씁쓸한 뒷맛
 

▲ 영화<디스트릭트9>스틸컷
“신이 인간을 만들었을까? 인간이 신을 만들었을까?” [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해진 리처드 도킨스가 새로 쓴 책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에서 내세우는 도발적인 캐치프레이즈이다. 난 “인간이 만들었다.”는 쪽이다. 그렇다면 UFO와 외계인은, 신이 만들었을까? 인간이 만들었을까? 난 이것도 “인간이 만들었다.”는 쪽이다. 인간이 ‘지나친 자기 집착’으로 오바-페이스를 주체하지 못하고 만들어낸 ‘또 하나의 空想’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긴다.

[ET] [에어리언] [인디펜던스 데이] [스피씨즈] [우주전쟁] [맨 인 블랙] 그리고 최근의 [스타트랙]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익숙해진 SF영화려니 하는데, 홍보물이나 예고편에서 자꾸 ‘새로운 SF’라고 강조했다. 도대체 뭐가 어떻다고 ‘새로운 SF’라는 거야? 귓등으로 흘려 넘기려는데, 슬그머니 궁금증이 돋아 올라서 믿을만해 보이는 글을 몇 개 찾아보았다. 그 글들이 뻥치는 품새가 심상치 않았다. [반지제왕]과 [킹콩]의 피터 잭슨 감독이 제작자로 발 벗고 나선 ‘신예 감독 닐 아무개’의 독특하고 색다른 작품이라는 말이 호기심을 잔뜩 불러 일으켰다.

그런데 뻥친 게 아니었다. 진짜로 독특하고 색달랐다. 팀 버튼이 [Nine]의 그 신예 감독을 욕심냈듯이, 피터 잭슨이 [Alive in Johannesburg]의 이 신예 감독을 욕심낼 만 했다. [트랜스 포머]의 엄청난 로봇들과 그 전투장면 스케일엔 못 미치고, [터미네이터4]의 장대한 액션과 크리스찬 베일의 강렬한 연기엔 못 미치지만, 이 영화의 다른 장점이 [트랜스 포머]나 [터미네이터4]보다 많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전체 총점으론 이 영화가 더 높다.

마지막 10여 분 동안 전투장면, 그 파워풀한 액션이 강렬하게 리얼하다. 보기 드물게 볼만하다. 주인공이 생전 처음 해 본 연기라는데, 이 이상 적절할 수 없고 더 이상 좋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이 쫀쫀하게 평범한 사람을 그토록 적절한 주인공으로 만들어낸 감독의 안목과 능력이 참 대단하다. 게다가 새파랗게 젊은 신출내기 감독이라니 너무나 놀랍다.

지난 10년 사이에, 열 손가락 안에 꼽힐 만한 영화이겠다. 강력 추천합니다.( 달콤새콤한 재미가 없어서, 여자들에겐 별로 일 것 같네요. ) 글고 이런 영화는 꼭 영화관에서 보시길 ... . 대중재미 A0(여자들에겐 B0) · 영화기술 A+ · 삶의 숙성 A+.

<예고편>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50236&videoId=25420

▲ 영화<디스트릭트9>스틸컷

District-9, 무슨 빈민촌인가? [슬럼독 퀴즈쑈]에서 보았던 인도의 빈민촌이나 TV뉴스에서나 보았던 팔레스타인 난민촌처럼, 녹슨 양철지붕이 따닥따닥 연이어져 붙어서 어지러이 황량하고 누추한 쓰레기장 같은 곳이다. ‘외계인 집단거주구역’이란다.

“20여 년 전에 UFO가 연료가 바닥나서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외곽의 하늘 위에 그대로 멈춰서 버렸고, 그 안의 100만 명쯤의 외계인을 어찌하지 못해서, District-9이라는 구역에 집단으로 거주시켜서 관리해 왔단다. 그런데 인간들의 불만과 원성이 높아서, 새로이 집단거주지역을 마련하여 강제로 이주시키려고 한단다.” 기발하다기보다는 너무나 무리한 설정이다.

외계인이 바퀴벌레와 메뚜기를 뒤섞어 놓은 듯이 괴상망측하지만, 기본골격구조가 인간과 비슷하다. 실망했고 김빠졌다. 시작한지 10분 만에, 볼까 말까 망설였다. 그런데 인간이 그 외계인들을 다루는 장면에서, 지금 현실의 뒤틀린 세상을 비아냥대며 시니컬하게 꼬집는 사회문제의식이 엿보였다. 개발지역 철거반이 주민을 강제로 이주시키는 모습과 무지 흡사했다. 문득 팔레스타인 난민촌 · 나치의 게토 구역 · 용산 참사가 떠올랐고, 영화[1번가의 기적] [홀리데이]가 떠올랐다. [열외인종 잔혹사]라는 책이름도 떠올랐다.
 
외계인의 괴상망측한 모습이야 외계인이니까 그러려니 하지만, 그들의 생활모습마저도 구질구질하고 야만스러워서 혐오스럽다. 그들을, 당장이라도 살충제로 죽여서 묻어버리거나 화염방사기로 불태워서 없애버리고 싶었다. 마냥 징그럽고 혐오스러워 역겹기만 했다. 어느 창고 같은 곳에선, 외계인의 알들이 이제 막 깨어나려고 바글거리고 있었는데, 화염방사기로 불질러버리니까 속이 시원했다.

역겨운 벌레나 뱀 또는 쥐, 너무 너무 싫다. 그러나 그 역겨움을 진정시키고 조금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역겨움도 인간의 지나친 자기 집착에서 비롯된 ‘자기중심적 오바-페이스’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색다른 그 무엇을 가지고 있다는 걸로 ‘만물의 영장’이라고 떵떵거리고 으스댄다. 학문 · 예술 · 종교 · 과학 · 문명에 따른 지혜 · 양심 · 철학 · 신앙 · 예절 · 품격, 이 모든 게 그 ‘다른 동물과는 색다른 그 무엇’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수많은 다른 생명체들은, ‘그 알량하게 색다른 무엇’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 하나로 인간에게 참말로 ㅈ~나게 당하고 밟히고 죽어간다. 그 뭇 생명들이 인간을 향해 퍼붓는 저주는 아마 온 세상에 넘치고 넘치리라! 인간처럼 잔악한 동물이 그 어디에 또 있으랴!

이 영화의 겉모습은 외계인을 소재로 한 SF영화이다. 그러나 그 속모습은 전혀 다르다. 지금 현실의 인간 세상에서 개인이나 집단이 보여주는 ‘자기 집착의 광기’를 고발하는 영화이다. 그래서 피터 잭슨이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지금 현실’을 말하고 있는 영화이다.”고 말한 것이다. ‘선택받은 인간과 버림받은 인간’의 개인과 집단 사이에 벌어지는 폭행 모욕 멸시, 더구나 그게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일상생활처럼 젖어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외계인은 ‘버림받은 인간’을 상징한다. 연료가 바닥나서 하늘에 멈춰선 UFO는, 버림받은 인간들의 희망봉이요 이상향이다. 지구에서 그런 이상향을 꿈꾼다는 걸 포기하고, 선택받은 인간이 가까이 다가오지 못할 어느 Never-Land로 떠나고 싶은 탈출구인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잔악한 자기 집착과 외계인의 간절한 탈출 희망 사이에 깊이 패인 골을, 거룩하고 성스러운 현자가 큰 깨달음을 얻어 교화하고 인도하는 게 아니라, 평범하게 아옹다옹 살아가는 찌질남이 우연히 말려들어 얼렁뚱땅 풀어간다는 것도, 인간 세상에 대한 또 다른 절망을 상징하고 있다.     

▲ 영화<디스트릭트9>스틸컷

SF 공상영화의 소재를 이렇게 ‘지금 현실’의 사회문제에 접목시킴에 ‘假想적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그 현실적 리얼러티를 치밀하게 살려낸다. 대단한 솜씨이다. 처음 5~10분엔 이런저런 의아함이 있었다. “외계인이 지구에서 인간과 뒤섞여서 저토록 버젓이 살 수 있을까? 게다가 의사소통도 별문제 없고 심지어는 매매춘까지 하다니? 에이, 억지가 너무 심하네~. 몰입이 식어버린다. 더 볼까 말까? 엄청난 UFO를 만들어낸 문명을 가졌으면서도, 어떻게 저리 짐승처럼 살아가는 거야? 인간은 하늘에 떠 있는 UFO를 왜 저대로 내버려 두는 걸까? 뒤지고 파고 난리법석을 해야 되지 않나?”

이런저런 의아함은,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풀리지 않았다. 이 영화의 리얼러티와 완성도를 갉아먹는 맹점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걸, 현실적 리얼러티를 잃지 않으면서도 ‘선택받은 인간과 버림받은 인간’이라는 극렬한 대비를 상징적으로 암시하면서, 영화에 대중재미와 삶의 숙성을 함께 아우르는 ‘假想적 다큐멘터리’ 기법의 한 모습이라고 이해하니, 그 의아한 억지스러움이 오히려 더욱 돋보였다. 그래서 삶의 숙성을, B+에서 A+로 화악 끌어올려 잡았다.( 꿈보다 해몽이라더니, 내 해몽이 좀 심했나 싶기도 하지만. )

아파르트-헤이트 · 팔레스타인 난민학살 · 쿠르드족 학살 같은 사건들을 전혀 거론하지 않으면서도, 아직도 인간 세상에 그런 악몽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지구촌의 현실에 절망으로 ‘강렬한 경고’를 보내고 있는 영화이다. 말초적인 대중재미가 상당하지만, 그 밑바닥에 깔린 침울한 어둠이 그리 편치 않다. 외계인이 말했다. “Three years, I promise.” 많은 기대를 안고 기다리겠다.

* 假想적 다큐멘터리 기법 : mockumentary = fake documentary
mock(가장하다 · 조롱하다)와 documentary를 합쳐서 만든 단어. 다큐멘터리에서 감독의 개입 및 연출이 없을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다큐멘터리는 허구가 아닌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다큐멘터리의 사실성을 역이용하여, 그 역이용을 공표하거나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영화 이야기 방식으로서, 얼핏 다큐멘터리로 보이지만 실은 허구의 인물로 허구를 이야기하는 기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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