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월E]기계문명의 멸망에서 싹트는 새로운 희망?
[나인]&[월E]기계문명의 멸망에서 싹트는 새로운 희망?
  • 김영주
  • 승인 2009.09.11 0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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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월E]

[나인]은 헝겊인형처럼 생긴 9개의 한 뼘만한 로봇이야기이다. 인류가 이룩한 기계문명이 탐욕의 수렁에 빠져들어 끝내는 멸망하게 된다. 어떤 과학자가 그 절망에 새로운 희망의 씨앗으로 남겨 놓은 게, 그 9개의 로봇이다.

그 캐릭터가 낱낱이 다르다. 엄격하고 딱딱한 독재자 · 사려깊고 조심스런 현자 · 깜찍 발랄 반짝 분방한 쌍둥이 · 성실하고 꼼꼼하며 소심한 기술자 · 환상 속을 헤매는 예술가 · 냉철하고 민첩한 무술고수 여전사 · 하마처럼 막무가내로 힘만 쓰는 뚱보 그리고 희망을 잃지 않고 앞장서서 헤쳐가는 주인공.

이들이 서로 티격태격 이렇게 저렇게 얽히고 설키며, 기계문명의 잔재로 남은 거대악당과 맞서 싸우면서 새로운 세상을 향한 희망의 싹을 틔워간다.

▲ 영화 <나인> 스틸 사진.

<예고편>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47511&videoId=25030

2005년 풋내기 셰인 액커 감독의 11분짜리 애니메이션에 홀딱 반한 팀 버튼이 적극 앞장서서, 그에게 새로이 80분짜리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게 하였단다. 헝겊인형 로봇이 무척 참신했고 깜찍 귀여웠다. 생김새가 그러하기도 했지만, 헝겊 쪼가리들의 다양한 질감 그리고 지퍼 단추 실밥 그리고 갖가지 생활 잡동사니들을 기발하게 맞추어서 만들었다는 게 더욱 그러하다. 그 캐릭터와 생김새를 꼼꼼히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본전을 건지고도 남겠다싶다.

앙증맞고 기발한 아이디어에 절로 빙그레 웃음 짓는다. 게다가 그 캐릭터들에 꼭 걸맞은 생김새와 표정뿐만 아니라 걸음걸이나 액션동작까지 감탄스러울 정도로 세심하고 적절하다. 세심한 정성에 갸륵한 심성까지 담겨 있기에, 헝겊인형 로봇에 魂魄을 불어넣은 듯하다. 만장에 기립박수!!!

이에 그치지 않는다. 스토리도 탄탄하다. 기계군단과 악당 괴물들도 대단하다. 그 캐릭터들의 모양새도 특이하려니와 그 악마적 위압감도 괴기스럽다.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 [유령신부]의 냄새가 물씬 진했다. 그 액션들의 박진감과 속도감은 눈과 귀로 확인해야지 어떻게 글로 표현하겠나!

초반에 이빨공룡 로봇과 싸우는 장면 · 중반에 날개공룡이나 코브라뱀과 싸우는 장면 · 마지막에 왕초 괴물과 다리에서 싸우는 장면은 압권이다. 그리고 그 수많은 장면들을 뒤에서 받쳐주는 배경의 황폐해진 황량함도 음산하게 장대하다. 애니메이션을 또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시켰다.

굳이 서운하다면, 스토리에 2% 부족함이 있어 보이고, 이 영화의 주제가 너무 상투적이라는 것이다. 영화관 잘못이지만, 이렇게 훌륭하고 압도적인 비주얼을 손바닥만한 화면으로 보았다는 게, 안타깝다 못해 신경질 났다. 대중재미 A0 · 영화기술 A+ · 삶의 숙성 B+.( 대중재미를 A+로 주고 싶었지만, 대중들은 왠지 애니메이션을 얕보거나 어쭙잖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서 할 수 없이 A0로 주었다. ) 

[월-E]도 같은 주제이다. 단지 그 주제를 요리하는 방식이 좀 다를 따름이다. 내가 그 동안 보았던 Disney&Pixar작품 [토이 스토리] [벅스 라이프] [니모] [인크레더블] [카] [라따뚜이] [월-E] [업]중에서, [월-E]가 가장 좋고 [업]이 가장 후지다.

주인공 월-E의 캐릭터의 몸짓과 표정이 너무 좋았고 액션도 매우 훌륭했다. 정성스럽게 섬세했다. 그러나 [월-E]를 대중재미 A0 · 영화기술 A0 · 삶의 숙성 B0로 보기 때문에, [나인]이 [월-E]보다 더 낫다고 본다. [월-E]는 더 보수적이고, [나인]은 더 진보적이다.

▲ 영화 <월-E> 스틸 사진.

<예고편>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43188&videoId=14849

그야 어떠하든, 기계문명이 어째서 그렇게 ‘자멸의 수렁’에 빠지게 되었는지, 그 뿌리를 파고들어 성찰해보려는 낌새나 노력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그 뿌리는 근대 시장주의에서 비롯된 변질된 시장주의이다.
근대 시장주의는 ‘합리적 이기심’으로 ‘자아의 발견에 의한 民主정치’라는 이상향을 꿈꾸었지만, 변질된 시장주의는 ‘끝없는 탐욕’으로 ‘돈독에 시뻘겋게 충혈된 金權정치’라는 철옹성을 드높였다. 그것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학문은 ‘근대 수리계량학에 의한 기계론적 理神論’에서 ‘기능적 전문지식에 의한 기생적 나팔수’로 변모하였다. 그렇게 금권정치로 드높이 빛나는 철옹성에서, 그 안쪽은 야멸찬 탐욕과 껍데기 허영으로 요란뻑적지근하고, 그 바깥쪽은 스산한 신음과 한 맺힌 절규로 가득 차 간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풍요로움은, 결코 지구촌의 모든 사람이 함께 누릴 수 없는 풍요로움이요, 이 눈부시게 푸른 지구에겐 생명의 축복이 아니라 생명의 저주일 것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게 아니라, 인간이 독사보다 독살스럽다. “인간의 손길이 닿는 것, 그것은 모두 다 돌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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