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도 길고도 더운 여름을 보내며
유난히도 길고도 더운 여름을 보내며
  • 명등룡
  • 승인 2009.08.25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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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등 룡 (광주비정규직센터 소장)

8월 19일, 여느 때 같으면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있어 한 낮의 땡볕도 그저 그러려니 하고 보냈을 그런 늦여름인데...

어제 오후 소식을 듣고 이미 준비해둔 원고를 접었습니다. 우리 현대사에 있어서 그만큼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과 사랑과 미움과 존경을 동시에 받아 온 인물은 없었습니다.  그의 일생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민주주의와 분단극복의 역사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를 빨갱이로 몰기도하고,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목숨을 노리기까지 하였지만 그는 적어도 20세기 후반 대한민국과 한반도의 역사적 한계와 성과를 고스란히 반영한 가장 위대한 인물이자 정치가였습니다.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여 46%라는 득표를 한 그 순간부터 개표에서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그는 한 개인이 아니라  남한 땅 민중들의 설움과 눈물을 대변하는 나라와 민족의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마침내 97년 대통령선거에서 승리가 확인되던 그날은 그를 전적으로 지지했던 사람들도 비판적으로 대했던 사람들도, 심지어는 그를 비난했던 사람들도 우리나라 역사가 한 단계 높이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은 같았습니다. 대통령직선제의 도입과 지방차지시대의 개막은 그와 우리민중이 함께 일구어서 피어난 민주주의의 꽃이었습니다. 

2000년  6.15 공동선언은 그가 그동안 이룬 민주주의의 성과의 모든 것을 담아도 부족할 만큼 갈라진 민족사에 큰 선물이었습니다.

봄보다 먼저 찾아온 용산참사의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올 여름은 화물연대 비정규직노동자 박종태 열사의 유고 소식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천만 노동자와 광주시민들의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또다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소식이 온 국민을 슬픔과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장에서의 “내 몸의 절반이 무너졌다”라는 소회를 밝힌 그 순간부터 이미 그의 서거는 예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의 삶과 죽음은 결코  노무현, 박종태, 용산희생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민주열사들과 결코 별개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삶이 우리에게 마냥 슬퍼만 할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은 그의 신념이자 가장 최근의 정치적 메시지였습니다.  아울러 꺼져가는 6.15의 등불을  살리기 위해 아픈 몸으로 마지막까지 클린턴을 설득하여 방북에 일조한 것은 얼어붙은 민족사에 남긴 마지막 공헌입니다.  

이토록 더운 와중에 오늘은 마침 그가 기초를 닦았던 우주개발의 열매인 ‘나로호’ 가 발사되고, 대우자동차가 올해 임금협상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과 동등하게 대우하겠다는 소식은 한줄기 시원한 소나기 같습니다. 

유난히도 길고도 더운 2009년의 여름은 이렇게 끝이 나려나봅니다. 만물의 이치가 그렇듯이 이 여름도 결국 끝이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60여년 해방 이후 5년 동안 청산하지 못한 과거가 이 민족사에 얼마나 많은 고통과 슬픔을 남겼는지를 깨달았듯이, 이 여름이 지난 후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역사적 죗가에 대한 심판을 하나씩 하나씩 철저히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님! 모든 공과 허물은 우리가 대신할 것이니 부디 편히 잠드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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