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보운전으로 쌓아올린 29년 무사고
양보운전으로 쌓아올린 29년 무사고
  • 노해경 기자
  • 승인 2009.08.10 11: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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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리의 노하우]이화진 금호고속 운전원

“노하우가 있간디요. 서둘지 않고 양보운전하는 것이 노하우제.”

▲ 31년 근속에 29년을 무사고운전으로 보낸 이화진 금호고속 운전원. 특유의 성실함을 바탕으로 평범함에서 위대함을 끌어낸 그는 얼마 남지 않는 퇴직 후에도 ‘영원히 금호맨’으로 남고 싶다는 바람이다.

급한 법이 없다. 모든 것이 귀에 거슬릴 것이 없다는 이순(耳順)을 한해 앞두고 있어서일까. 버스 배차 시간을 30여 분 남겨두고 이것저것 묻는 기자만 바쁠 뿐이다. 이번에는 목포를 거쳐 전남도청이 있는 남악까지 가는 일정에도 ‘느긋’하기만 하다. 한 세대를 훌쩍 넘겨 고속버스와 함께 도로 위를 누비던 삶에서 이 정도의 여유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사내서 전무후무, 매일매일 역사 써

29세 때 나이 하한선에 턱걸이로 입사해 31년간 근속한 이화진 금호고속 운전원(남구 봉선동). 철든 후 삶은 고스란히 회사와 함께 했다. 결혼도, 1녀1남의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것도.

그렇게 매일이 차곡차곡 쌓여 이제는 역사가 되고 있다. 29년 무사고 운전의 영예는 운전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겐 쉽게 넘볼 수 없는 업적이다. 어깨에 내려앉은 세 개의 금빛 무궁화 견장도 10년 근속에 하나씩이니까 엄밀히 말하면 4개여야 맞다. 회사에서도 선례가 없는 일에 “우리들 말로 총경 달아야 한디”라며 그는 웃었다. 
 
광천동 시외버스 종합버스터미널에서 만난 그는 누구나 아는, 그러나 좀처럼 실천하지 않는 무사고 운전의 노하우를 별것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치다가도, 몇 번의 독촉에 담담히 전한다.

“요즘 들어 차사고가 많지라. 전 좁은 길에서 나오든, 큰 길에서 나오는 차든 먼저 보내놓고 가요. 또 도로에서도 추월하라믄 깜빡이를 한번 넣고 상황을 살핀 뒤 차선을 바꾼단 말이요. 뒷 차가 속도를 줄이는가 확인하고.”

그간 아찔한 순간도 숱하게 많았지만 승객들의 안전과 쾌적한 여행이 최상을 서비스라는 지론이기에 위기 상황에도 급브레이크를 최대한 자재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지금도 차가 급 끼어들기를 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 안지라”는 이 운전원은 양보는 안전운전에 있어서 처음이자 끝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장기근속과 무사고 운전으로 해마다 포상을 받고, 지난 2001년에는 ‘초일류 금호아시아나인’으로 선정된 그의 정년은 이미 지났다. 만 56세를 넘겨 현재는 한해씩 연장 근무를 하고 있지만 그 최대한도 내년 9월이면 끝이어서 아쉽다.

퇴직 후도 영원히 금호맨으로 남고파

그렇지만 그는 퇴직 후에도 ‘영원한 금호맨’으로 남기를 원하며 회사가 잘되기를 바란다. 이 운전원에게 회사는 단순한 밥벌이의 수단을 넘어 함께해야할 공동운명체였다.

결근계 한번 제출하지 않고, 그 흔한 연차도 세 손가락에 꼽을 정도. 평생을 같이 살아온 아내마저도 성실성을 인정하는 그. 튼튼한 몸을 물려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며 자식들이 평안하게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바람이라고 말하는 그의 말에서 우리네 가정의 울타리인 아버지의 모습이 오롯했다.

배차 시간에 맞춰 출구에 차를 댄 그는 무거운 짐을 든 승객들을 일일이 찾아가 돕고, 목포로 떠나며 이제 생각났다는 듯 마지막 말을 이었다. “참 전조등 켜는 것도 중하요. 특히 흐린 날은 사고 예방에 좋거든.”

광주·전남 동서남북을 오늘도 승객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아 누비고 있는 이 운전원. 그는 ‘평범한 것이 가장 위대한 것’이라는 진리의 산증인이다. 휴가철 고속버스 안에서 그를 만나면 인사한번 건네 보라. 성실하고 상냥한 미소로 언제나 화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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