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생존위해 국적 선택”
“재일동포 생존위해 국적 선택”
  • 정영대 기자
  • 승인 2009.08.10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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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김종진 아이치 조선중고급학교 전 교장
“조선학교 졸업해도 검정시험 치러야 대입 자격”

▲ 김종진 아이찌 조선중고급학교 전 교장이 김선호 효광중 교장에게 글씨와 사진을 전달받은 뒤 기뻐하고 있다.
김종진(73)씨는 아이치 조선중고급학교 교장으로 10년 동안 재직하다 퇴직했다. 그 자신은 경북안동 출신의 부모 밑에서 태어난 조선인 2세다. 아이찌 조선중고급학교를 졸업한 뒤 평생을 민족교육에 헌신했다.

“왜정시기 부친이 일본에 공부하러 왔는데 소학교 3학년 밖에 다니지 못했다.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열아홉 살 때 고향에 돌아간 부친은 결혼을 한 뒤 다시 일본에 들어와 방직공장에서 일하다 할머니와 어머니를 나고야로 불러들였다. 나는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난 조선인 2세다.”

김씨는 해방이전까지 조선말을 몰랐다. 해방이 되자 부모님들이 귀국을 위해 조선말을 배울 것을 권유했다. 이전까지는 일본학교에 다니며 일본사람 행세를 했다. 조선말은 주로 할머니와 부모님께 배웠다. 하지만 고대하던 한국행은 좌절됐다. 국내형편도 어렵고 생활기반도 없어 차일피일 귀국을 미루던 차에 한국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현재 김씨 부부의 국적은 조선이다. 하지만 큰아들은 한국국적, 둘째는 조선국적, 셋째는 일본국적이다. 이른바 ‘다국적 가족’인 셈이다.

“일본사회에서는 장사하고 먹고살기 위해 국적을 선택할 뿐이다. 생각이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 며느리들은 서울을, 손자들은 평양을 방문했다.”

그도 여러 번 평양을 방문했다. 평양 남포에서 살고 있는 동생 때문이다. 동생은 1960년대 북송운동이 한창일 때 귀국선을 탔다. 당시 김씨도 귀국신청을 했는데 교사로서 직분을 다하느라 북송선에 오르지 못했다.

“지금 한국국적을 가지고 조선학교에 다니는 학생들도 많다. 조선학교에는 한국, 일본, 조선 국적이 다 있다. 일본 국적이어도 문제될 것이 없다. 일본정부는 조선학교를 정식학교로 인가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조선학교를 졸업해도 일본대학의 입학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진학할 수 있는 대학은 도쿄에 있는 조선대학이 유일하다. 그나마 졸업을 해도 취업과정에서 엄청난 차별을 받고 있다. 일본대학에 가기위해서는 대학검정시험에 합격해야 입시자격을 얻을 수 있다.

“해방 이후까지만 해도 거의 모든 동포들이 조선 국적이었다. 남한 출신도 대부분 북한을 지지했다. 하지만 1965년 한일협정을 맺은 이후 일본정부가 조선국적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지금은 빨갱이 나라라고 차별이 더욱 심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한국국적을 취득하고 있다. 국적은 한국국적이지만 민단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도 많다.”

현재 재일동포 60만여 명 가운데 55만여 명 가량이 한국국적으로 추정되고 있다. 나머지 5만여 명만 조선국적을 고수하고 있다.

“해방이후 우리 동포들은 일본의 민주화를 위해 싸웠다. 그러나 일본정치 개입을 두고 내부에서 찬반의견이 팽팽했다. 외국인인 우리가 왜 일본정치에 개입하느냐는 것이었다. 1955년 ‘조선 사람답게 살자’를 표방하며 총련을 결성했다. 조선의 평화통일을 위해 노력하자고 하면서 동포들의 지지를 다시 회복했다.”

그 때문에 국적을 바꿨을 때 조선인 1세들은 매우 서운해 했다. 2세들 사이에서는 극심한 갈등과 감정대립으로 깊은 상처까지 남겼다.

“특히 한번쯤은 고향 산소를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이 국적을 많이 바꿨다. 통일이 될때까지 미뤘다가 점차 나이가 들고 죽음이 가까워지면서 마음이 약해진 것이다.”

하지만 김씨는 끝까지 조선국적을 지켰다. 해방이후 어려울 때 북쪽이 보여준 관심과 지원에 대한 ‘의리’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다보니 부모님들은 고향에 가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셨다. 김씨도 2002년 월드컵 때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남쪽이 80년 이후 올림픽과 경제건설로 경제우위에 서면서 교포들도 분화되기 시작했다. 북도 남도 아닌 일본 땅에서 살아가기 위한 고민의 산물이었다. 일본사회에 편입하기 위해서는 일본교육도 받아야 한다는 의식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남쪽 경제가 우위에 서고 사회주의가 붕괴되면서 일본 언론의 북에 대한 파상공세도 점차 심해졌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일본인 납치문제를 인정하면서 일본 극우보수파들의 백색테러는 극에 달했다.

“전국적으로 욕설과 테러, 여학생 치마칼질 등이 100여 차례 발생했다. 조선회관에 권총까지 발사했다. 조선인은 돌아가라, 테러국가 죽어라 등의 낙서도 곳곳에서 발견됐다. 21세기 법치국가에서 도저히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발생했다. 역사교육을 올바르게 하지 않아 조선사람을 멸시하는 잠재된 의식이 아직도 남아있다.”

이번 총선에서 자민당 일당독재가 종식되고 민주당으로 정권교체가 되면 극우일색의 분위기가 개선될 수 있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전망은 우울했다.

“일단 정권교체 자체로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자민당과 민주당의 대북정책은 똑같다. 민주당이 선명성 경쟁을 위해 더욱 강경한 자세로 나올 가능성도 있다. 대북 유화책을 주장했다간 당장 총선에서 낙선할 수도 있다. 다만 북일 대화의 가능성은 어느 정도 열려있다.”

우리 동포의 참정권 문제에 대해서도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현재 재일동포 참정권에 대해 자민당은 ‘결사반대’, 민주당은 ‘찬성’ 입장이다.

“기본적으로 총련의 입장은 반대다. 일본의 참정권 정책이 단지 국적을 바꾸는 일본동화 정책이기 때문이다. 일단 외국인의 권리부터 인정해야 한다. 참정권만을 인정하는 것은 귀화정책에 다름 아니다.”

일본전체 국민 중 조선인의 비율은 고작 0.5%에 불과하다. 참정권을 명분으로 일본정부가 귀화정책을 추진할 경우 민족 정체성을 상실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듯 싶었다.

최근 평화헌법 개정을 둘러싼 일본사회의 우경화에 대해서도 염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평화헌법과 관련, 민주당은 국론을 중심으로 해외에 파병하자는 입장이고 자민당은 미일동맹에 기초해 해외에 파병하자는 입장이다.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일본이 경제적으로는 대국이지만 군사적으로 뒤쳐져있다는 의식이 강하다. 군사대국화를 향한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다.”

김씨는 “당장 민주당으로 정권교체가 돼도 평화헌법 개정과 자위대의 해외파병 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며 “다만 위안부와 정신대 문제에 있어서는 민주당의 진보적 입장에 다소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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