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무 한그루
나는 나무 한그루
  • 범현이
  • 승인 2009.06.26 1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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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향해가는 도도공방 금속공예가 조수진(42)

▲ 금속공예가 조수진.
작년 이맘때쯤부터 대인동의 대인시장은 북적거렸다. 평소에도 잘 가지 않은 시장 안 깊숙이 사람들을 한없이 흡인했다. 이구동성, 사람들은 말한다. ‘시장이 시장이 아니다...’ 맞다. 대인시장은 시장이기 보다는 여럿이 함께 어울리며 소통하는 소통의 공간이다.

서로가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열과 성의를 다해 온몸으로 살아내는 세상. 부대끼며 살아가다 정말 지치면 수산물 시장을 찾아 퍼덕거리는 생선들 사이에서 삶의 문제를 다시 고민하는 곳. 한 번 지나치면 알 수 없는 인간의 마음들을 그 안에서 느끼며 다시 한 번 받아들이며 고민하는 곳.

작가들은 대인 시장 안으로 스스로 걸어들어 갔다. 장황한 설명이 필요한 무엇인가가 있어서가 아니라 사람 속으로 겸손을 배우기 위해 스스로 둥지를 튼 것이다. 그 시장 속, 가장 끝자락에 금속공예가인 조수진이 있다.

작고 적당히 닳아진 나무의자 하나 공방 입구에 앉혀두고 사람들의 마음을 앉힌다.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공방 안의 작가는 다시 작품으로 마음을 표현해낸다. 그의 조형은 사람과 닮았다. 마음도 사랑도 작품에 녹아있다.

실험정신으로 금속공예의 모든 분야를 섭렵해

“금속공예가 정말 하고 싶었다. 대학원에서 금속을 공부하면서 늘 즐겁고 행복했다. 대학에서 올라온 전공자들은 작품을 하고 있는데 난 대학원에서도 실험을 줄곧 했다. 금속의 성질을 알기 위해, 혹은 재료의 차이점과 익숙함을 알고 느끼기 위해  지금도 실험적인 작품들을 계속하고 있다”

자기 세계를 다져가는 것보다 작가는 아직도 세상에 대한 궁금 점이 많다. “지금 이 나이에도 아직도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고 작가는 웃으며 말한다. 재료는 구애받지 않는다. 생활 속에서 사용할 수 있는, 사용할 수 없는 모든 것이 재료가 된다. 그의 손을 거쳐 새로운 조형으로 태어나 생명을 얻는다.

혼합재료라 할 수 있다. 은이나 동인 비철금속을 즐겨 사용하지만 그 중에서도 적동이나 순은으로 작업하며 생활 속에서 얻어낸 재료들을 함께 버무린다. 주변재료라고 이름 붙인다.

오래된 것들, 시간이 중첩된 공간성 위로 현재의 작가가 가진 이미지들을 녹이고 녹여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이야기가 완성되면 비로소 작가만의 작품이 완성되는 것이다.

세월의 흐름에 다시 시간을 중첩

공방에는 오래된 작은 물건들이 곳곳에서 눈길을 붙잡는다. 아주 오래 된 옛날, 허름한 대청에서나 보았음직한 물건들이다. 적당히 나무 프레임이 낡은 거울, 그 위로 조그마한 나무 한그루 솟아있다. 순간 눈길을 붙잡는 마력을 가졌다. 오랫동안 눈빛이 작품 앞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거린다.

바늘이 되어야 마땅할 아주 가는 철사가 작가의 손을 거쳐 목걸이가 되었다. 작은 금속하나, 바늘보다 더 두꺼운 철 핀 하나가 만들어낸 오브제다. 사람들은 목걸이를 보며 감탄한다.


누구나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 바로 그것이 작가의 몫이다. 만들어진 반지도 화려하다. 금박, 은박을 붙여 형상을 만들어 낸 반지는 은을 사용해 피부 트러블을 최소화했고 은으로 지지대를 세우고 동그란 나무를 앉혔다. 동물 뼈나 목 조형 위로 형형색색의 금박을 입힌 것이 이채롭다.

벽에 기대거나 걸려있는 혹은 바닥에 누워있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이 하나의 서사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들어있다. 배경도 있고 한 권의 소설을 읽은 것처럼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회화가 은유와 비유의 상징이라면 작가가 하고 있는 조형 작업 역시 한 편의 소설과 같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해가 둥실 떠 있는, 시간이 흐르고 흘러 어머니와 할머니 그 이전의 할머니까지 역사를 들여다보는 흐름의 깊이가 작가의 조형 안에서는 가능하다. 얼마나 깊은 눈을 가지고 심연을 찾아가느냐의 문제일 뿐.


대인시장에서 새로운 세상과 만나다


작가의 표정은 생기가 넘친다. 자신이 살아있는 것을 확연히 깨닫고 잇을 때 가능한 표정이다. 실제로 작가는 “오픈 멤버다. 결혼 후 작업을 놓고 있는 나를 세상 밖으로 다시 걸어 나오게 힘을 실어 준 대인시장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너무 감사하다. 하고 싶었던 모든 것들을 망설이지 않고 실험해보고 있다. 매주 토요일이면 열리는 오픈 마켓에 소품을 만들어 판매도 한다”고 말한다.

대인시장 안 풍경 모든 것에 작가는 익숙하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더 늦기 전에 겸손과 관용을 배울 수 있어 너무나 감사해 한다. 시장 안 사람이 되지 않았다면 배우고 느낄 수 없었던 사람과의 연속성, 겸손함 등을 알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요즘 작가는 족제비로 바쁘다. 대인시장 안에 족제비가 살고 있다. 밤이면 감쪽같이 나타나 순간 사라져버리는 족제비를 작가는 시장 안에 자리를 잡은 자신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동질감에서 비롯된 족제비가 이제는 작가의 조형 안으로 스며들어와 앞으로 하고 싶은 명제가 되었다. 족제비와 더불어 살고 싶어 한다. 이제 걸음마를 한 발 내디뎠을 뿐이다.

문의 : 010-9636-8913

에필로그

남도의 섬에 며칠 다녀왔다. 머릿속에서만 갈까말까를 수십 번 고민하다 결국 나선 길이었다. 결국은 잘 다녀왔다. 바람이 좋았다. 내 온 몸을 햇빛에 널어두고 바람에 말렸다. 미워하는 마음도 말리고,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사람들과의 관계도 흔적 없이 보송하게 말렸다. 그리고 다시, 소금 땀을 흘리며 바닥에 나를 새기듯 무료할 만큼 천천히 걸었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 죄 짓는 일이 되지 않게 하소서 / 나로 하여 그이가 눈물 짖지 않게 하소서 / 사랑으로 하여 못 견딜 두려움으로 / 스스로 가슴을 쥐어뜯지 않게 하소서 / 사랑으로 하여 내가 쓰러져 죽는 날에도 / 그이를 진정 사랑했었노라 말하지 않게 하소서 / 내 무덤에는 그리움만 / 소금처럼 하얗게 남게 하소서 - 사랑. 안도현 시

가방 안에 넣어가지고 간 체게바라 어록, 책 한 권이 날 슬프게도 우울하게도 만들었다. 체 게바라는 말한다. ‘여행을 하면서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보지 말자.

보이는 것들 안에서 정작 보고 싶은 것들을 찾아가는 것이 진정한 여행일 것이다. 길을 거닐면서 만나는 행인의 삶과 그들 속에 들어 찬 고통을 보자. 그래야만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내면에 찬 그 무엇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나이에도 찾아야 할 길이 있을까. 다른 이들에게는 익숙해 보이는 길들이 왜 매번 낯설어만 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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