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진도가족간첩단 사건’ 재심 결정
법원 ‘진도가족간첩단 사건’ 재심 결정
  • 강성관 기자
  • 승인 2009.06.2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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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운씨 “법적인 명예회복의 길이 열려 기쁘지만…”

“법적으로도 명예회복이 이뤄질 것으로 보여 기쁘다. 국가권력 때문에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됐는데 국가 어떻게 책임을 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22일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조병현)는 이른바 ‘진도 가족간첩단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박동운(64)씨 등 일가족 5명이 낸 재심 청구를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수사관들이 박씨 등을 임의동행 형식으로 영장 없이 불법 연행한 뒤 2개월 넘게 외부와 연락을 차단하고 감금한 채 수사했고, 가혹행위를 한 사실이 인정되므로 재심 사유가 있다”고 밝혔다.

재심 결정 소식을 접한 박동운씨는 “무죄판결 받을 것 같아서 기쁘다”면서 “옛날에는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써 화도 나고 분노했지만 이제는 세월이 너무 흘러서인지 담담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서울고등법원의 재심 결정으로 박동운씨와 그의 일가족들은 28년만에 자신들에게 무기징역 등을 선고했던 서울고법 재판정에서 명예회복을 위한 재판을 받게 됐다.

‘진도 가족간첩단’ 사건은 박동운씨가 1963년 목포에서 한국전쟁 때 행방불명됐다 남파된 아버지를 만나 포섭돼 1965년 월북해 지령을 받고 고정 간첩 활동을 벌였다는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사건이다. 1981년 7월 안전기획부는 “24년 동안 전남 진도지역을 중심으로 암약해온 고정간첩 7명을 검거했다”고 밝혔고, 이 사건에 박동운씨의 가족 7명이 연루되었고 이 중 5명이 실형을 선고 받았다.

박씨, 박씨 어머니, 고모부, 숙부 등은 전두환 군사 독재정권 시절인 1981년 3월 안기부에 의해 영장도 없이 불법 연행을 당한 뒤 고문과 구타 등 가혹행위 때문에 허위자백을 하게 됐고 이들은 ‘고정간첩’으로 조작됐다.

당시 36살이던 박씨는 법원에 재판에서 “구타에 의한 허위자백이었다”며 “가혹행위를 증명하기 위해” 신체검사 요구했지만, 서울고등법원은 이를 무시한 채 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박씨는 “나는 전두환 군사 독재정권의 공안 정국 때문에 억울하게 간첩 누명을 썼다”며 진실 규명을 위해 노력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박씨는 “안기부에 붙잡혀가 지하실에서 고문당하면서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자살을 하려고 했다”면서 “그 때는 누구에게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이어 박씨는 “당시에는 공안정국을 만들기 위해서 안기부가 조작한 간첩단 사건이 많았다”며 “한국전쟁 때 행방불명된 아버지가 남파되어서 가족들을 포섭했다고 조작하기 쉬운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안기부 발표대로라면 제가 18살 때부터 간첩활동을 했다는데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되물었다.

박씨는 18년 동안 복역하다 1998년 8·15특사로 가석방돼 고향에 내려가 살게 됐지만 당시에는 ‘간첩’과 ‘빨갱이’라는 주위의 시선이 넘지 못할 벽처럼 느껴졌다.

박씨는 “당시에도 사람들의 인식이 저를 간첩이라고 생각해서 따가운 시선을 보내면서 어떤 사람들은 집에 돌을 던지기도 하고 말도 썩지 않으려고 했다”면서 “국가가 얼마나 공안 선전을 했으면 그렇게 했겠느냐”고 말했다.

특히 그를 슬프고 어렵게 만든 것은 가족들의 피해의식에 따른 반응과 이혼이었다고 한다.

박씨는 “가장 어렸고 힘든 것은 처와 자식들이 나를 간첩이라고 의심해 거리감을 두었던 것이다”면서 “국가의 폭력이 제 자신 뿐 아니라 가족들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주었고 결국 가족을 망가뜨린 것이다”고 지적했다. 박씨는 “조작된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었던 분들 중 가족들과 헤어진 경우가 많다”면서 “당연히 국가가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지만 이제와서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했다.

박씨는 현재 진도읍에서 홀로 양봉을 하고 있다. 박씨는 “재심을 하면 무죄가 나올 것이다”며 “명예회복이 되고 나면 여생을 조용히 보내고 싶다, 짊어지고 갈 짊은 지고 가야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에 앞서 박씨 사건과는 다른 1980년 ‘진도 가족간첩단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던 18년 동안 복역했던 석달윤(75)씨 등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한편 ‘진실화해를위한 과거사진실위원회(위원장 안병욱)’는 박동운씨와 석달윤씨의 가족간첩단 조작 사건에 조사를 벌이고 지난해 1월과 8월 “불법연행과 불법감금 상태에서 구타와 물고문 등 가혹행위로 인해 간첩으로 조작한 것이다”며 “국가는 피해자 등에게 사과하고 재심 등 상응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권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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