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와 정도령
미네르바와 정도령
  • 이상걸
  • 승인 2009.01.09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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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걸 시민의소리 이사

미네르바가 결국 검찰에 구속되었다. 경제대통령으로까지 불리던 그의 경제정책비판에 세간의 관심이 고조되자, 정부당국은 지난해 11월부터 구속수사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는 얼굴도 나이도 직업도 모두 베일 속에 가려진 인물이었다.
  
막상 밝혀진 그의 신상은 30대 무직자이다. 그는 독학으로 경제공부를 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경제학교수들도 그가 30대 무 경력자의 신분으로 그런 고급정보력과 경제이론을 구사할 수 없다고 믿기지 않는 표정이다.
  
조선시대에 정감록이라는 책이 있었다. 저자와 저술연대는 정확치 않으나 조선 이래 민간에 널리 유포되어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예언서로 불린다.

내용은 정감(鄭鑑)과 이심(李沁)이라는 인물의 대화로 전개되고 있다. 대화 내용은 난세에 정씨의 성을 지닌 진인(眞人)이 출현하여 이씨왕조가 멸망하고 새로운 세계가 도래한다는 것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말세 구할 초인 바라는 민중
  
정감록과 함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계룡산 밑에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된다는 ‘정도령’이다. 정도령은 실체가 애매한 인물이다. 그저 민중 속에 새로운 사회에 대한 간절한 희망이 담겨있는 상상속의 인물이었을 것이다. 왜 하필 정씨 성을 가진 인물을 묘사했을까?   

민중은 조선태조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반대하다 비명횡사한 정몽주 이야기를 잊지 못했다. 또한 조선왕조 건설의 주역이었으나 태종 이방원에게 제거된 정도전이나 선조 임금 때 역적으로 몰려 죽은 정여립, 영조 때 일어난 반란사건에 연루된 정희랑의 이름을 들먹이기도 했다. 여기서 정도령은 말세를 구할 위인의 출현을 갈망하는 민중의 바람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민중 속의 구세주 정도령이 난세마다 끊임없이 대두되었듯이 경제난국과 정부의 무능이 계속되는 한, 제2, 제3의 ‘미네르바의 출현은 피할 수 없을지 모른다. 수많은 네티즌의 열광적인 추앙을 받았던 미네르바를 30대 백수로 폄하한다고 해서 네티즌이 이를 수긍하기 힘들다. 그러면 현 경제내각은 30대 백수만도 못한 내각 아니냐는 힐난이 빗발친다.
  
언제나 그렇듯이 문제가 비롯될 수밖에 없는 본질은 외면하고, 한 네티즌 논객에 대해 도덕적 상처를 가하고 유치한 학벌타령으로 수습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임을 곧 알게 될 것이다. 소통에 대한 이해가 결핍되어 있고 경제정책에 대한 근본적 반성이 없이는 문제의 확대재생산만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곰곰 생각해보면, 우리시대가 실존의 위인을 만들어내지 못하니 얼굴도 이름도 없는 정도령이나 미네르바가 나타나는 것일 듯싶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 위기의 시대에는 위기를 구할 초인이 등장해야 마땅하다. 미국에는 오바마라는 영웅이 탄생하였다. 그는 미국 최초의 흑인대통령이고, 인종과 빈부의 차별을 철폐할 전 세계 인류의 지도자로 기대를 받고 있다.
  
난세 지도자 그리워지는 때
  
최근 우리 사회는 인물기근에 시달리고 있다. 3김의 지도력이 퇴장하고, 개혁세대를 열광시켰던 노무현이 무대를 떠난 후의 후계 지도자 군이 너무 빈약하다. 차기 대통령감을 묻는 설문을 보면 한명을 빼놓곤 변변한 지도자가 없다.
  
일찍이 아우렐리우스는 지도자의 네 가지 자질을 들었다. 지혜·정의감·강인성·절제력이다. 그중에서도 미래를 기획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과정에서 지적인 능력, 즉 ‘지혜’를 우선시 했고, 옳고 그름을 가려서 옳은 것을 택하고 그른 것을 잘라낼 수 있는 도덕적 판단력과 실천력인 ‘정의감’을 두 번째로 내세웠다.

세 번째 ‘강인성’은 어려움, 역경, 위험 등을 극복하기 위한 정서적인 힘인데 우리 역사에서 백제의 계백장군은 자기 가족 모두의 목을 친 후 나당 연합군을 맞으러 나갔다. 그의 강인한 정신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절제력은 자기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여 균형을 지킬 수 있는 능력으로 지도자가 도덕적 정신적 차원에서 자기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면 통솔력을 잃고 말 것이라는 경고다.

위와 같은 네 가지 덕목을 겸비한 난세의 위인은 언제쯤 우리 앞에 모습을 보일까? 새해 벽두 미네르바의 구속을 보며 초인적 지도자가 그리워지는 것이 하수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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