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빚에 비추는 한줄기 빛
가계 빚에 비추는 한줄기 빛
  • 노해경 기자
  • 승인 2008.11.27 12:2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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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라!활동가]정봉희 참여자치21 시민권리센터 부소장

‘처음처럼’ 꾸준한 가난한 이들의 벗

▲ 정봉희 참여자치21 시민권리센터 부소장
50대 중반의 한 트레일러 기사가 천만 원 카드빚을 졌다. 허리띠 졸라매가며 세 식구 먹고 살기위해 열심히 일만 했다. 허투루 돈을 쓴 적도 없다. 가족 부양, 트레일러 운행·정비엔 돈이 들었고 카드를 긁었다.

철석같이 믿었던 화물주로부터 제때 돈이 나오지 않자 일은 꼬이기 시작했다. 카드돌려막기로 땜질하기도 잠시, 빚은 이천만 원이 훌쩍 넘어섰다. 빚 독촉 압박이 시작되자 이번엔 사채·대부업체로 눈을 돌렸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은 뒤늦게 받은 화주의 결재대금으론 감당이 안됐다.

분신과 같던 트레일러는 고스란히 빚 갚는데 들어가고, 가정은 풍비박산. 한창 사춘기인 중학생 아들을 매일 여관에서 등교시키는 아버지의 마음은 오늘도 갈기갈기 찢어진다. 

절망의 한숨 속에서 허덕이던 이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정봉희 참여자치21 시민권리센터 부소장(48)을 찾는다. 매주 수요일 오후 2~5시 그는 가슴에 상처를 안은 사람들을 북동신협 2층 참여자치21 사무실에서 따뜻하게 맞는다.   

가계부채로 끙끙 앓는 빈민층을 상담하고, 현실적인 해결방법을 함께 찾는 것이 그의 일이다. “채무해결도 중하지만, 어떻게 앞으로 살아가야 할지 설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정부소장은 자신을 찾는 빈민층의 상황을 말한다. 카드빚-돌려막기-사채-대부업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이라고. 

지난 30년간 지역에서 노동운동을 해오다, 2001년 민노당 경제민주화 운동본부에 참여한 것이 상담의 계기가 됐다. 서민들의 경제생활에 관한 문제를 연구하고, 입법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된 본부는 2002년 카드 대란이 발생하자 그 해법을 찾고자 부심했다.

문제에 관심있는 이들을 전국에서 모집했고, 1달에 한 번씩 변호사 등 법률전문가를 초빙해 교육을 시켰다. 당시 민노당 당원이었던 정부소장도 교육에 참가했고, 2004년 광주시당에 ‘가계부채 SOS 상담실’이 설치되자 책임자로 일한 것이 상담의 시작이었다.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면서도, 사회에 도움되는 활동을 원하던 정부소장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던 셈. 

3년 남짓 상담하던 정부소장은 불편을 몸으로 느꼈다. 정당 내에서 벌어지는 상담은 일반인들에겐 벽이었다. 좀 더 편하게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고심하던 중 기회가 닿아 작년 6월부터 시민단체인 이곳으로 장소도 옮겼다.

요즘은 지역 케이블방송에 자막도 나가고, 법률구조공단에서도 가계채무에 관해서는 그를 추천해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빠듯한 하루 일정이 버겁지만 시내 한 백화점 용역업체 노동자로 일하는 처지에서 일주일 한번인 상담일을 늘릴 수도 없는 한계도 있다.  

구조적인 해결이 아님을 전제하면서도, 정부소장은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 빈민층에게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 선택의 탓으로만 돌릴게 아니라 사회안전망 측면으로 보자는 말이다. “빈민들이 갚지 못해 채권추심기관에 넘겨지는 채권을 국가에서 사들여, 비용만 분할해 청구하는 식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껏 그를 찾아온 6천~7천여 명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정부소장은 유일한 빛이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파산면책, 신용회복, 개인회생 등의 길도 제시하며 앞으로 살 방도를 전했다. “그간 상담했던 사람들이 연락이 없는 것을 보니 대부분 문제를 잘 해결한 것 같다”는 그는 술집에서 우연히 만나는 상담자들이 고맙다며 권하는 한잔이 보람이다. 

카드 돌려막지 말고 상담부터 하길

유신시대 학창시절을 보낸 정부소장은 지금까지의 변화를 언급하며 “세상은 진보해가는 것이고, 후퇴는 일시적인 현상이다”며 “좋은 생각을 갖고, 주민의 생활부문에 깊이 파고들어 있는 이름없는 활동가들이 우리사회의 희망이다”고 말한다.

반면 진보진영에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진보정당은 국민의 삶에 뿌리내리 못하고 보수정당의 길만 답습하고 있고, 광주시민사회는 5·18에만 갇혀 변화가 없다고. 변화된 21세기에 20세기의 패러다임에 머물러있는 진보진영 반성을 촉구했다.     

▲ 가계부채로 고민하는 빈민층에게 한줄기 빛인 정봉희 부소장은 “카드 돌려막지 말고, 빚 갚을 능력없으면 일단 상담부터 받으라”고 말한다.
전문적인 상담으로 초심을 유지하며 ‘처음처럼’ 꾸준히 빈민층과 함께해 온 정부소장은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당부했다. “갚을 능력이 없으면 카드 돌려막지 말고, 일단 상담하러 오시라”고. 독립된 사무실에서 몇몇 실무자와 함께 매일 상담하는 시스템을 갖춰 보다 많은 이들과 함께하고 싶은 게 꿈인 그는 우리지역에서의 관심이 이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며 이야기를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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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복 2009-07-15 23:12:19
소장님 감사합니다 무거운마음으로 방문했는데 친절히상담받고나니 희망이보이네요
상담만으로도 마음이편해 잠이잘올것같습니다 많은사람에희망이되주시길빌면서 조은일하시는소장님 복마니받으시고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