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따리장사(시간강사)의 비애
보따리장사(시간강사)의 비애
  • 노해경 기자
  • 승인 2008.11.24 10:1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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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우리지역 비정규직 실태점검(비정규교수)
겉은 학자·교수, 속은 비정규 노예

▲ 지난 10월 13일 전남대를 대상으로 벌어진 2008년도 국회 국정감사장 앞에서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전남대 분회 조합원들이 ‘교원지위 보장’, ‘연구공간 제공’ 등을 요구하며 집회를 개최하고 있다. ⓒ <시민의 소리> 자료사진.
1년 중 5개월은 월급없이 버텨야

진리의 상아탑, 대학엔 보따리장사가 많다. 인터넷 쇼핑시대에 무슨 조선시대 보부상 이야기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그들은 이 대학에서 보따리를 풀어 학생들에게 지식을 판다. 수업이 끝나면 다시 보따리를 싸들고, 저 대학으로 이동해 펼쳐 놓는 것이 일상이다.
  
흔히 대학 시간강사라 불리는 그들을 보따리장사로 부르는 것은 우스갯소리나 비하가 아니다. 그들이 처한 상황을 어느 정도 반영한 사실적인 말이다. 초빙·겸임·외래 교수 등 20여개가 넘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이들은 스스로를 법적으로 교원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비정규교수’라 칭한다.
  
지난 4월말 교육과학기술부는 전국에 7만여 명의 비정규 교수가 있고, 그들의 평균연봉은 4백5십만~6백만 원 선이라고 민노당 권영길 의원에게 보고한 바 있다. 현재 우리지역엔 약 3천명의 비정규교수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정규교수들이 처한 현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일반적인 상황보다 훨씬 열악하다. 일단 강의수당으로 받는 시급 1만7천~5만 원이 그들 수입의 전부다. 그나마 강의를 할 수 없는 방학기간 5개월은 월급 한 푼 받지 못하고 버텨야 한다. 일반적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인 상시적인 고용불안에 정기적인 고용단절의 짐까지 얹혀 있는 셈이다.
  
대학에서 교육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고도 연구나 강의 준비할 공간도 없이 떠돌고, 대학운영에서는 고려의 대상도 안 되고, 학사일정 참여는 언감생심이다. 학과에 얽매인 신분으로 교수들에게 밉보이지 않도록 눈치도 봐야한다. 일부 대학에서 4대보험 중 산재보험만 들어주고 있는 것이 그나마 나은 처우다. 비정규직법도 전문인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빗겨가 2년 이상 일해도 정규직의 길은 요원하다. 
  
이렇듯 겉으론 학자·교수로 불릴지 모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노예나 다름없는 게 비정규교수의 현실이다.
  
유신시절 지식인 내부의 분열을 목적으로 대학사회 교원을 전임과 시간강사로 분리하기 시작한 것이 현 사태의 발단이었다. 최근엔 저임금으로 교육인력을 채용하기 위한 변형적인 수법으로 시간강사 제도가 악용되고 있다. 교과부에선 겸임 3명이면 전임 1명으로 갈음해 법정교원충원률 수치에 반영하는 등 비정규 교수 양산을 부추기고 있다.   
  
교원지위 보장, 처우개선 등 요구

그래도 옛날엔 전임으로 갈 수 있는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10~20년 가까이 비정규교수로 일하고 있는 이들이 많은 현실을 감안하면 이제는 하나의 직업군으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다.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은 지난 450일이 넘은 기간 동안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을 진행 중이다. 청와대·교과부 등에서 주기적으로 1인 시위도 병행했다. 비정규교수들의 교원지위 보장·처우개선 등을 요구하며, 이를 위해 2조원의 예산을 확보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전남대 조선대 등 우리지역 비정규교수노조 분회들은 현재 각 학교 당국과 단체교섭 중이다. 국회 앞 농성에서 주장하는 요구사항과 더불어 임금인상 등 현실적인 문제들도 거론하고 있다. 특히 전남대 비정규교수들은 BTL 기숙사 건립으로 남아있는 공간을 연구공간으로 달라는 요구도 포함시켰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전망은 낙관적이지 않다. 
  
비정규교수노조 전국위원장이며, 4년 전 처우개선을 주장하며 파업을 주도해 전남대에서 파면당한 하우영 교수는 “가방끈이 길어 슬프다”는 말로 비정규교수들의 비애를 표현했다. “전남대 강의 40~45%를 책임지면서도 대학 내 연구·강의 준비할 공간조차 없는 것이 우리들의 처지다”며 “교수들과 동일한 일을 하면서도 1/15~1/20의 임금수준에 머무르며, 연구·강의 준비 공간도 없는 것은 경쟁력 있는 대학사회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또 전국주요대학에서 비정규 교수 처우에 대한 릴레이 토론을 민교협, 전교협 등 교수 단체들과 계획하고 있음을 알렸다. 이달 말 부산대를 시작으로 우리지역에선 다음 달에 전남대서 토론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다가오는 겨울을 또다시 무급으로 고통스럽게 감내해야 하는 비정규교수들. 학생들의 수업권과 대학 내 예속에 묶여 파업조차도 쉽지 않은 그들에게 생존권을 찾고, 교육에만 전념할 수 있는 날은 언제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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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2008-11-30 10:30:50
경남에서 강의전담 후 시간강사로..
시간강사로 살아간다는 것은 서글프다
시간 겸임 강의전담 학생이 없어 다시 시간강사로
그나마 다니는 학교를 그만두고 다른 학교로 시간강사를
시간강사때는(전문대) 18000원 겸임때는 1년에 600만원 강의전담때는
월130만원 이제 4년 사립대학 시간당 28000원 이젠 가족도 생겼는데
나 스스로 자괴감과 불안감 현실의 안타까움.. 마음이 무겁네.
의료보험도 지역의료보험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