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포크라테스 선서가 무색한 병원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무색한 병원
  • 노해경 기자
  • 승인 2008.11.17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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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병원]구조 틀 속에서 사람품는 따뜻함 잃어
합의서 이행해 해고노동자 복직시켜야

▲ 환자를 치료하고, 생명을 살려내는 전대병원이 유독 병원내 도급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에는 차갑다. 지역 공공의료기관으로써 공익을 위해 따뜻한 마음을 열 날은 언제쯤일까.
매년 의대 졸업생들은 졸업식에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다.
  
의사자신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환자에게 도움되는 치료만하고, 해나 상처주는 일은 하지 않으며 개인·전문인으로 모범되는 삶을 살아가겠다는 내용이다.
  
전대병원에는 내과·외과·정신과 등의 치료를 요하는 환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어렵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상처받은 사람들도 있다. 전대병원(화순전대병원 포함)의 지시를 받고, 일하면서도 소속은 15개 도급업체로 나뉘어있는 4백여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병상의 환자들에게는 유효한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유독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미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안병강 전국보건의료노조 광주전남지역본부장은 그 원인을 구조적인 곳에서 찾았다.
  
전대병원의 모든 의사결정권을 지닌 이사회가 정부의 정책을 이행하는 형식적인 기구로 전락했다는 주장이다. “예산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획재정부 이사가 구조조정·경영혁신 등 핵심 키를 쥐고서 정부방침을 제시하면 이사회는 따를 수밖에 없다”고 안본부장은 말했다. 그 결과 의료행위에 필요한 필수 인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도급업체의 비정규직으로 채워져 가고 있는 것이 전대병원의 현실.
  
97년 IMF 이후부터 가시화된 흐름은 지역 공공의료기관은 전대병원이 선두에서는 모양새를 띠며 더욱 빈축을 사고 있다. 현재 전대병원의 시설관리는 대부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맡고 있고, 직원·환자 식당 일부도 외주를 통해 경영되는 실태다. 화순병원의 경우는 더 심각해 원무과·병동·외래직 간호사 업무보조까지 도급 비정규직이 맡고 있다. 지역 의료기관들이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시설관리·식당 업무를 대부분 정규직 노동자에게 맡기는 것과 비교된다.
  
전대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역사는 길다. 87년 노동조합을 결성했고, 2002년에는 민주노총 산하로 조직전환했다. 현재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에는 140여명의 전대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입해 있는 상태다.   
  
최근 전대병원에 가면 조선시대 형구(形具)인 칼을 쓴 4명과 화순병원 식당 8명의 해고노동자들을 볼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전대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로 복직 등을 주장하며 시위중이다.
  
노동자 4명은 2004년 해고시 병원장이 고용보장을 약속한 합의서 이행을 촉구하고 있고, 병원 측은 도급업체의 노사분규라며 책임없다고 주장하는 한편 노조의 요구에 최선을 다했다는 입장이다. 화순병원 식당의 경우도 대동소이하다.
  
87년을 시작으로 전대병원은 각종 병원업무에 대해 도급을 줬고, 도급업체는 도급비의 일부를 업체의 이익으로 떼는 방식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고용해 병원에 인력을 제공해왔다.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근무하던 노동자들이 권리를 주장하면 도급업체 사용자는 폐업으로 맞서고, 새로운 도급업체가 들어오는 과정이 지금껏 반복돼왔다. 이 반복된 사태의 피해자는 당연 전대병원과 비정규직 노동자들 뿐. 도급업체는 사업에서 손을 떼면 그만이었다.
  
해고노동자이자, 4인 시위에 참여중인 전대병원 하청지부 강신원 지부장은 “노조가 있어도 근로기준법을 안 지키는데, 없다면 어떻겠는가”라고 반문하며, 비인간적인 처우를 강요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례를 열거했다.

저임금, 열악한 근무환경은 제외하더라도 임신하면 그만둔다는 계약서를 작성하고, 초상·휴가 시 사람을 사서 빈자리를 메꿔야 하고, 정규직이나 환자가 불만을 토로하면 이유없이 경위서를 작성하게 하고, 징계를 남발하는 등 근로기준법에 명백히 위반되는 불법행위가 쏟아졌다. “이런 상태에서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을 안고, 노동자들은 무조건 감내해야 하는가”라고 강지부장은 반문했다.
 
끝으로 안본부장은 병원이 의무를 다할 것을 촉구했다. “의사는 사람을 일단 살리고 봐야하고, 그것이 인지상정이다”며 해고노동자 문제를 도급계약으로만 바라보는 병원 측의 무성의한 태도를 꼬집는 한편 “지역에서 모범을 보여야 할 공공의료기관인 전대병원이 하루빨리 공익적 결단을 내리고, 공공기관 본연의 임무를 다하는 방식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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