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좌도에서 만난 두 개의 숲
안좌도에서 만난 두 개의 숲
  • 전고필
  • 승인 2008.10.07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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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신안군 안좌도

▲ 노을이 밀려오자 이물질은 그만 섬을 떠나라 한다. 아직 더 많은 고샅이 있음에도 어쩌지 못할 때, 노을은 더 밝게 빛나며 흙속의 씨앗들을 솟아 올릴 태세였다.

섬에 가는 것은 꼭 잠입한다는 느낌이 든다. 육지 사람인 탓에 배를 타기 전 매표를 하면서부터 이물감을 느끼는 탓이다. 그곳에 뿌리를 둔 사람들은 주민등록증을 제시하고 도서민 할인이라는 제도를 통해 표를 구입하는데 반해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
  
그러고서 배에 오르면 또 차이가 드러난다. 나와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은 카메라를 메고 선수로 후미로 배회를 한다. 그러다 갈매기 하나라도 가까이 다가오거나 민둥한 바위섬에 소나무 한그루라도 있으면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하지만 삶의 터전이 그곳인 분들은 바로 선실로 들어서 몸을 눕히기 바쁘다.
  
여튼 언제나처럼 또 그렇게 카메라를 메고 어슬렁거리며 압해도의 송공항에서 안좌도에 가기 위해 팔금도의 고산 선착장으로 가는 배에 있었다.

목포항이나 북항이라 칭하는 뒷개에서 안좌로 바로 가는 배는 1시간 20분 정도가 소요되는데 반해 최근 연륙이 된 압해도에서 들어가는 배는 25분 정도면 4개 섬이 연결된 그곳에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안좌, 팔금, 암태, 자은 등 4개의 섬이 다리 3개가 놓이며 한 형제가 되었다. 그중 안좌도는 두 개의 섬이 하나로 묶어진 터였다. 기좌도와 안창도였던 것을 제방을 쌓고 간척을 하며 안좌도로 명명하며 아예 하나의 섬으로 만든 것. 그런 탓인지 지도를 보면 아직도 기좌도 안창도라 표기된 것들이 드문드문 보이기도 한다.
  
웹 2.0시대에 국토의 면모는 일신함에도 문자가 따라잡지 못하는 것이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안좌의 오늘은 마늘을 파종 하느라 모두들 바쁜 모습들이었다. 일찍 가을걷이를 끝낸 논과 밭은 수십여 명의 늙은 어머니들이 허리를 구부리며 씨마늘을 심고 있는 모습이 이어졌다.
  
올 여름 장마다운 장마도 없는데다 가뭄이 심한 탓인지 섬의 생명창고인 수로는 연신 빨아올리는 모터의 더운 기운에 밑바닥까지 말라 있었다.

▲ 우실이 지닌 바람을 막고 마을을 보호하는 기능에 이 성스러운 돌이 쐐기를 박았다. 음한 기운을 견제하기 위해 마을 숲 앞에 떡 하니 버티고 서 있는 남근석.

안좌의 중심 읍동 마을에 이르니 수화 김환기 화백의 생가 표지판이 나를 반긴다. 백두산의 소나무를 가져다 지었다는 집은 사람의 자취는 없었음에도 돌올하게 지붕과 하늘을 이고 있었다. 백두산의 송림이 여기 숲을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지 모르는 나는 연신 그 집 이곳저곳을 배회해 보았다. 저 집이 그 아름다웠던 화가를 키워낸 것인지 저기 군집해 있는 섬으로 인해 목포 사이에 갇혀 있는 바다의 잔잔함과 하늘을 담아낸 맑은 기운이 그를 길러낸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문득 산천이 사람을 키운다는 말에 나도 한 표를 던져 본다.
  
비록 사람은 살지 않았지만 수화의 어릴 적 모습을 닮은 안좌도의 해맑은 아이들이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수행했던 작품들이 살가운 표정으로 부엌과 마루에 대롱거리고 있었다.
  
안내도 하나 없지만 다음은 어디로 갈까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냥 가다 끌리면 주저앉으면 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 나를 주저앉힌 것은 대리라는 마을이었다.
  
마을을 감싸고 한일자의 대형으로 진을 형성하고 있는 마을 숲이 나를 호출했다.이 곳에서는 우실이라고 불린다. 본디 울이 되는 숲이었던 것이 우실로 바뀐 것이라 한데 대리마을은 350살 정도 먹은 팽나무 60여 그루가 마을로 들어오는 바람과 액을 막으며 버티고 있었다. 섬사람들의 지혜로운 삶을 다시 되새겨 보는 시간이 되었다.
  
우실 앞에는 간격을 두고 두기의 남근석이 있었다. 마을 뒷산에 있는 음바위를 쪼개며 음바위의 기운을 누르기 위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것이다. 당연히 숲이 있으니 이야기들이 따라다니기 마련인데 아직 섬이기에 건재한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저 마늘밭을 지고 있는 할머니들이 어딘가로 돌아가시면 이제 저 숲과 돌들이 과연 풍찬노숙에 견디어 줄 것인지 불안한 마음이 울컥 치밀어 오르는 것을 저어하지 못했다. 어둠이 오자 떨어지는 노을에 수화생가의 숲과 대리마을의 우실을 오버랩하며 울렁이는 배에 이물질을 들여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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