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부재가 빚은 도청 별관 갈등
소통 부재가 빚은 도청 별관 갈등
  • 김경대 기자
  • 승인 2008.08.15 2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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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 한 장도…” vs “광주의 미래 생각해야”
지역사회 중재 노력 시급…사업 차질 우려도

▲ 6월 10일 아시아문화전당 기공식이 열렸지만 옛 전남도청 별관 철거문제로 5월단체와 아시아문화전당추진단이 마찰을 빚으면서 전당 건립공사가 차질을 빚고 있다.
1993년 5월 13일 김영삼 전 대통령은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특별담화’에서 전남도청을 전남도내 적당한 지역으로 이전할 뜻을 밝히고 “이곳에 5월단체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5·18기념관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그로부터 꼭 10년 후인 2003년 5월 18일. 취임 후 처음으로 광주를 방문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전남대 강연에서 “전남도청 부지에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 같은 것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5·18기념관이 아닌 난데없는 문화도시 계획은 그렇게 시작됐고 도청 건물의 운명도 하루아침에 달라졌다.
  
다시 말해, 원래 계획대로 5·18기념관이 들어섰다면 당연히 도청과 별관, 경찰청 건물 등 항쟁 당시 사적들은 고스란히 살아남았을 테지만 아시아문화전당이 들어서게 되면서 일부 존치, 일부 철거의 운명을 맞게 되면서 오늘의 사태를 맞은 것이다.
  
어찌 보면 이번 옛 도청 별관 철거 논란은 전당 설계 지침이 논의되던 2005년 상반기를 넘어 훨씬 그 이전부터 잠복해 있었던 것으로 봐야한다. 또 상무대 영창 이전 때와 비슷한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5월단체의 의지가 도드라지면서 사태는 더욱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역사적인 현장의 벽돌 한 장도 훼손돼선 안된다”며 설계 변경을 요구하고 있는 오월단체는 전당부지로 옛 도청이 거론될 때 반대 입장을 표명할 만큼 5·18기념관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당시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이 5월단체 대표자들에게 전당건립 과정에서 “가능한 한 도청 일대를 원형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다소 애매한 입장표명을 하면서 5월단체는 단체대로, 추진단은 추진단대로 각각 유리한 해석을 내리고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계획은 탄력을 받게 된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문광부와 문화중심추진단(이하 추진단)은 전당 건립을 위한 국제설계경기 공모를 통해 당선작을 발표하고 기공식을 마쳤으나 보존하기로 한 옛 전남도청 본관과 민원실(등록문화재), 옛 경찰청 본관과 민원실, 상무관 등 5개 건물에 별관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5월단체가 다시 발끈하고 나섰다.
  
여기서 드러나는 쟁점은 단순하다. 5월단체는 여러 차례의 당선 설계작 설명회와 지난한 랜드마크 논쟁에서도 잠잠하더니 왜 이제서야 문제제기를 하는가, 또 추진단은 협의과정을 3년여에 걸쳐 왔으면서도 논란의 불씨를 남겼느냐는 두 가지 문제로 집약할 수 있다.
  
5조원이 넘는 대규모 국책사업의 첫 단추를 끼우는 전당건립 사업이 ‘소통의 부재’ 때문에 삐그덕거리는 한심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기가 쉽지 않겠지만 지역사회가 대화를 통해 접점을 찾아보려는 노력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가 밥과 일자리를 만들어 줄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던 지역언론과 시민사회, 광주시는 왜 모두 이 문제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을까. 자칫 별관 보존 주장에 동조했다간 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을 받을 것이고, 추진단 계획대로 철거를 주장할 경우 5·18의 정통성을 훼손한다는 오명을 뒤집어쓸 판이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이번 일이 참여정부 때 확정된 문화중심도시 사업 전체가 축소되거나 연기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조성위원장이 6개월째 공석으로 비어있는 것도 이 같은 우려를 뒷받침하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되면 될수록 시민들의 불안감과 무관심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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