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노력·지원이 일궈낸 자립의 꿈
대화·노력·지원이 일궈낸 자립의 꿈
  • 노해경 기자
  • 승인 2008.06.30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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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동신자활센터 ‘자미도시락’


전처리·세척·조리·포장으로 구분된 작업실, 에어컨 공조시스템, 각 실 마다 비치된 온도계·습도계·벌레잡는 유인포충기·발판 및 손소독기…. 심지어 각 실에 비치된 고무장갑과 앞치마의 색깔도 달랐다.

생산·유통·소비 전 과정에 걸쳐 안전한 먹거리를 요구하는 HACCP(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을 채우고도 넘치는 ‘자미도시락’의 작업실은 정결했다. 일급호텔의 레스토랑 주방이 이만할까? 깔끔하게 정돈된 삶의 터전에서 열다섯 사람들은 자활을 넘어 보람을 나누고 있었다.

광주북구동신지역자활센터(센터장 박홍주. 북구 양산동 소재. 이하 북구자활센터) 자활공동체 ‘자미도시락’이 누리는 보람은 구성원들의 노력, 공동체와 북구자활센터의 격 없는 대화, 정부와 대기업의 지원이 어우러져 맺은 결실이다.

자활공동체의 역사는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제정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생활보호대상자에게 생계비를 지급하는 복지에서 벗어나 ‘생산적 복지’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됐다.

‘고기 보다는 고기 낚는 법 전수’를 목표로 당시 김대중 정부는 18~65세의 근로가능한 생활보호대상자를 ‘조건부 수급권자’(이하 수급권자)로 전환했다. 기존에 일정자격만 되면 일률적으로 지급했던 생계비를 일정조건을 이행해야 보전해주는 것으로 제도를 바꾼 것이다.

▲ 자미도시락의 경쟁력은 위생·정성·사회적 떳떳함이다. 사진은 한창 도시락 준비에 분주한 조리실 모습 ⓒ북구자활센터

독거노인 70명 급식에서 출발


현재 전국 각지 242개의 자활센터는 이런 일정조건을 이행하는 장소로 총 63만 명(2006년 기준)의 수급권자 중 약 8만 명(2007년 기준)이 몸담고 있다.

지난 97년 5곳에서 시범 사업하는 것을 계기로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전국 각지에 생겼다. 일정조건이란 수급권자들이 이런 자활센터에서 지원을 받아 사업단을 만들고, 이를 통해 자립을 모색하는 것을 말한다.

사업단은 수익 창출에 노력하고, 국가는 수익으로 충당하기 어려운 생계비의 부족분을 채워주는 방식이다. 단 사업단은 3년 후 공동체로 자립해야 한다. 2004년부터는 차상위계층에도 참여의 폭이 넓어졌다.

2002년 7월 도시락·밑반찬·출장뷔페 사업 공동체로 전환한 자미도시락도 이런 자활공동체 중 하나다. 현재 8명의 공동체 정회원이 월 평균 약 170만 원 정도를 벌고, 2억 원의 공동기금도 모금한 상태다.

광주를 넘어 전국 5백여 공동체의 희망으로 우뚝 선 자미도시락은 독거노인 70명의 급식을 책임지는 것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 자미도시락 반장 송은옥(50)씨.
나아가 2003년 사회연대은행의 지원을 받아 국내 최고급 수준의 뷔페기물을 갖추고 출장뷔페업에 뛰어들어 매출급신장이라는 쾌거를 이뤄냈지만 회원 월급 150만원의 한계는 쉽사리 넘을 수 없었다. 주로 50대 초반 편모가정의 가장인 회원들에게는 빠듯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꾸준한 노력으로 자활의지를 이어가던 공동체는 2005년 새로운 활로를 확보하게 된다. 기업의 사회공헌사업 일환으로 SK그룹 산하 행복나눔재단이 지원하고, 노동부가 가세하고, 북구 결식아동 무료급식 지원사업으로 판로가 확대되자 매출도 오르면서 자립의 근간인 ‘경쟁력’까지 갖추게 된 것이다.

공동체의 노력과 자활센터의 헌신이 정부·기업의 지원과 결합되어 상승효과를 발생시킨 것. 

자활공동체 자미도시락은 더 이상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정부의 지원에 기대 근근이 살아가는 보살핌의 공간이 아니다.

품질·가격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공동체 회원들이 당당하게 완전 자립을 목표로 희망을 일궈가는 터전이 됐다.

“요리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는 자미도시락의 송은옥 반장(50)은 하루 일과를 마친 오후 3시경 힘든 내색없이 연신 웃는 얼굴로 방문객을 대한다.

고등학생 딸·중학생 아들, 두 아이의 가장이자 엄마인 그녀는 공동체에 대한 사랑과 일에 대한 보람으로 인터뷰를 풍요롭게 했다. 자아실현의 노동이 얼마나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지 송반장의 미소는 가르쳐 주었다.  

▲ 각 작업실에 비치된 손소독기 등 위생시설을 설명하는 김수미 영양사.
“열심히 노력하기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송반장은 평일 새벽근무에, 주말도 놀 순 없지만 불만은 없다. “수능공부를 해도 그렇게는 못하겠다”는 고등학생 딸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밥상머리에 요리책을 붙이고 산지도 오래됐다.

밥·국·찬(5가지) 등 공동체가 만드는 먹거리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수학공식 외우듯 시작한 요리는 이제 그녀의 삶이자 낙이 됐다.

조심스레 공동체 성공요인을 묻자 손사래를 치면서도 “회원들의 노력과 북구자활센터의 헌신”을 들었다. 특히 “‘안돼요’ 보다는 ‘생각해 보게요’라고 말하는 북구자활센터의 긍정적인 대화 자세는 무엇보다도 커다란 힘이 되었다”고 말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을 열심히 하니 경제적인 것이 따라 오더라”고 말하는 그녀와 공동체 회원들은 성수기 때 하루 700~800여 명의 독거노인·결식아동·유치원생의 점심을 책임진다. 오전 5시에 출근하여 오후 3시경에 끝나는 고단한 일정이지만 수요자들에 대한 배려도 남다르다.

위생은 기본. 화학조미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식용유도 최대한 깨끗한 것을 사용하려 노력하는 공동체 사람들은 자미도시락은 ‘한 끼를 때우는 대체물이 아니라 정성을 담은 감동’이라고 소개한다.

자미도시락이 갖는 경쟁력은 시설뿐만 아니라 이런 마음으로 먹거리를 빚는 마음에 있었다. 남김없이 깨끗하게 돌아오는 빈 도시락 그릇은 공동체의 노력에 대한 최고의 보상이다.

희망의 밥과 꿈의 반찬 배달하는 도시락

물론 자미도시락 공동체 사람들에게도 바람은 있다. 진정한 자립으로 나아가려면 현재 결식아동 급식에 의존하는 매출 패턴에서 점차 벗어나야 한다. 북구자활센터와 공동체 구성원들은 학교·병원 등 단체급식소 납품 등을 통해 한 단계 도약하려 하지만 녹록치 않다.

민간업체와 경쟁에는 자신 있지만, 적당한 로비를 필요로 하는 현실에 타협할 수는 없어서다. 바른 먹거리의 올바른 공급을 주장하는 사회적 떳떳함도 앞으로 자미도시락의 훌륭한 경쟁력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 오후 4시경 빈도시락 용기는 수거된다. 가벼울수록 보람도 크다고...

하지만 이런 공동체의 앞길이 탄탄한 것만은 아니다. 예산 10% 절감을 주장하는 이명박 정부의 기조는 복지부문에서도 예외가 아니고, 자미도시락 공동체처럼 적지만 하나씩 희망의 뿌리를 내려가고 있는 자활프로그램의 더딘 속도는 정부 당국자들의 실용노선에는 마뜩찮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활은 수급권자들이 신분상승하는 구조적 장치고, 빈곤이 계급으로 고착하는 것을 방지하는 최소한의 사회적 배려다”고 말하는 박홍주 자활센터장은 공동체 성공률 6.4%라는 수치에 정책입안자들이 매몰되지 말 것을 주문한다.

그는 “자활이란 스스로의 일을 사랑하고, 보람을 느끼며 자립하는 기반을 만들어가는 것이지 단순히 수치적 실적의 상승으로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고 말했다.

현재 북구자활센터의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180여 명의 사람들에게 자미도시락 공동체는 꿈의 길을 열어주는 등대 역할을 하고, 사람들은 자미도시락을 보며 스스로의 길을 다그치고 있다.

아니 자미도시락 공동체는 도시락이 아니라 우리사회에 희망의 밥과 꿈의 반찬을 직접 배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공동체들이 더욱 많이 우리사회를 밝히길 바란다면 정말 꿈일 뿐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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