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루베리 나이츠]에 비쳐든 '스타일리쉬 감각제국'
[ 블루베리 나이츠]에 비쳐든 '스타일리쉬 감각제국'
  • 김영주
  • 승인 2008.03.14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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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영화로 보는 세상]

▲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영화 스틸사진.
60시절 왕우의 [외팔이]와 70시절 이소룡의 [정무문]에 뿌리를 둔 홍콩 액션영화는 80시절에도 넘쳐흘렀다. 몇 백 개쯤은 되는 것 같다. 대표되는 몇 개만 말해보자면, 성룡의 [용형호제] [프로젝트A] · 주윤발의 [영웅본색] · 왕조현의 [천녀유혼] · 홍금보의 [귀타귀] · 원표의 [공작왕] · 양자경의 [예스마담] · 이연걸의 [소림사] [황비홍] · 임청하의 [동방불패] ··· . 성룡영화는 추석때마다 빠짐없이 보았다. 나의 한 시절을 장식했고, 세상사의 한 구석을 흔든 신드롬이었다.

 90시절에 들어서면서 홍콩 액션영화가 맛도 없거니와 볼품도 없어져갔다. 그렇게 시들어가는 분위기에서, 이안의 [음식남녀] · 진가신의 [첨밀밀] · 주성치의 [소림축구] [쿵후허슬]을 놓쳤다. 하마터면 유위강의 [무간도]도 놓칠 뻔 했다. 그 시들어가는 흐름에서 만난 왕가위 감독의 [동사서독]에 무협영화로 별 똥폼을 다 잡는다며 비웃었다. 그의 [아비정전] [중경삼림] [타락천사]를 그 흔해빠진 싸구려 홍콩 액션영화인 줄로 오해하고 전혀 관심두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나서야 [화양연화]와 함께 그 자자한 뒷소문이 들려왔지만 미처 만날 기회를 갖지 못했는데, 이번에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라는 영화를 계기로 광주극장에서 ‘왕가위 특별전’ [중경삼림] [타락천사] [화양연화]를 뒤늦게 만났다.

Stylish, 이 말이 쓰이는 분위기로 보면, “자기만의 개성을 독특하게 살려서 멋을 부리다.”는 어감에, 몽유병처럼 떠도는 젊은이들의 탄산소다수 같은 돌발적 파격이 있다. 좋게 말하면 아무 거리낌이 없이 개성을 맘껏 발산하여 Cool하게 자기의 존재감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겠고, 나쁘게 말하면 숙성되지 않은 잔재주를 경박하게 티내면서 잘난 체하며 껍데기만 요란스럽게 꾸며대는 개멋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결코 소박하거나 편안하지 않다. 때론 TV드라마 [쾌걸 춘향]처럼 산뜻 경쾌하게 무거운 허울을 훌훌 벗어버린 듯하거나, 롯데아이스크림 옥메와까CF '엉짝 댄스'처럼 언발란스한 파격이 소용돌이치는 몽환적 일탈로 잠깐 날 잃어버린 듯하기도 하지만, 이명세 감독의 [형사]처럼 어줍쟎게 뭔가 있어 보이도록 똥폼잡는 개멋이 오히려 유치하기도 하고, [M]처럼 지적 허영으로 삐딱하게 뒤틀어 괜히 복잡하게 어지럽히는 작위적 위선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뜻에서 왕가위 영화는 ‘Stylish하게 톡 쏘는 맛’이다. [타락천사]는 나쁜 쪽으로 보였고, [중경삼림]은 좋은 쪽이지만 똥폼이 너무 들어가 있어 보였고, [화양연화]는 좋은 쪽이지만 똥폼 잡고 싶은 욕망은 여전했고, 이번의 [ 블루베리 ]는 나쁜 쪽은 아니지만 똥폼 잡고 싶은 욕망은 여전했다. 그러니까 [화양연화]보다는 많이 못하고, [중경삼림]보단 조금 못하지만, [타락천사]보다는 더 나아 보였다. 스토리 배경과 출연배우가 미국이어서, 왕가위의 독특한 맛이 제대로 다가오지 않은 듯하여, 왕가위 매니아들에게는 많이 서운했겠다. 대중 재미 B0 · 영화기술 B+ · 삶의 숙성 C+.

여명 금성무 양조위처럼 밤톨 같이 단정한 꽃미남과 이가흔 왕비 장만옥처럼 깔끔하고 도도한 꽃선녀를 그리고 여기선 주드 로와 노라 존스 나탈리 포트만을, 도시의 초라한 까페나 어두운 뒤골목 같은 진흙탕에 뒹굴게 하여 극렬하게 대비시키면서, 깊은 어둠의 골목길에 깔려드는 희미한 전등빛 · 자그마한 까페에 쓸쓸하고 차갑게 선명한 네온빛 · 어두운 도시그늘을 덜컹거리며 빠앙 내달리는 전동차 · 짙은 실루엣 사이로 흐드러져 피어오르는 담배연기 · 장맛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빗속을 마냥 거니는 남녀 · 클로즈 업으로 잡아낸 표정과 자태 사이로 소녀처럼 애잔하게 잔잔히 흘러드는 주옥같은 째즈&블루스 ··· . 이것들을 Stylish하게 뒤섞어 넣어서 서로 더욱 두드러지도록 돋을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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